밤늦도록 이어지던 빗줄기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희미한 달빛이 저택의 젖은 정원을 비출 때, 윤 회장의 고풍스러운 서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궁 속에 갇혀 있었다.
“은우 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김 경위는 이마를 짚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와 절망감이 묻어났다. 서재 안은 여전히 끔찍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류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엎어진 윤 회장의 등에는 날카로운 편지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피가 흥건하게 번져나간 갈색 서류들이 비극을 무겁게 증언하고 있었다.
“저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서재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요. 방범창까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죠. 비밀 통로 같은 건 아무리 뒤져도 없었습니다. 결국 문을 강제로 뜯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김 경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서재 열쇠는 보시는 바와 같이 저기, 문 바로 옆 벽에 걸린 황동 고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오래된 은빛 열쇠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기이함에 할 말을 잃었던 부분이었다.
“안에서 잠긴 밀실. 그런데 열쇠는 또 안에 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살인범은 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겁니까? 유령이라도 되는 건가요?”
김 경위의 얼굴에는 혼란이 역력했다. 옆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 서재의 고요는 그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은우는 아무런 말 없이 서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차분하고, 마치 모든 소음을 흡수하는 고요한 연못 같았다. 시체에서부터 책상, 창문, 그리고 마침내 문과 열쇠로 향했다. 한참을 그렇게 응시하던 그의 눈이 문득 열쇠가 걸린 고리 아래쪽, 문틈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 멈췄다. 그는 무릎을 굽혀 그곳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김 경위와 형사들은 그의 움직임에 숨을 죽였다.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은우 님?” 김 경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우는 대답 대신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문지방 근처, 묵직한 카펫 위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거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아주 가늘고 섬세한, 마치 머리카락 같은 실오라기였다.
“이게… 뭡니까?” 김 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입니다.” 은우는 실을 햇빛에 비춰 보였다. 아직 서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실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실이요? 그게 뭘 의미하죠? 혹시 범인의 옷에서 떨어져 나간 것일까요? 그런데 이 정도로 가늘면….”
은우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 그렇듯 온화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를 조용히 떠다니는 한 송이 꽃 같았다.
“이 실은 범인의 옷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서재의 모든 이들에게 또렷하게 들렸다. “이것은 트릭의 일부입니다.”
김 경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트릭이요? 그럼 밀실은… 거짓이었단 말입니까?”
“아뇨, 밀실은 진짜였습니다.” 은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밀실이 완성된 방식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랐을 뿐이죠. 김 경위님, 이 문을 자세히 보시겠어요?”
은우는 문지방을 가리켰다. 김 경위는 그제야 카펫 위에 희미하게 남은 긁힌 자국들을 발견했다. 굵은 문이 바닥을 스치며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이건… 문을 열고 닫으면서 생긴 자국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짙게 남을 정도면 상당히 많이 드나들었거나, 아니면….” 김 경위는 말을 흐렸다.
“아니면, 아주 조심스럽게, 미세한 조정을 가하며 열고 닫았다는 뜻이죠.” 은우는 열쇠가 걸린 고리와 문틈, 그리고 긁힌 자국을 번갈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범인은 이 서재 안에서 윤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문을 잠갔습니다.”
“잠갔다고요? 그럼 어떻게 밖으로 나간 겁니까? 열쇠는 여기 그대로 있는데요?” 김 경위가 다시 반문했다.
은우는 손에 든 가느다란 실을 보여주었다.
“범인은 이와 같은 아주 가늘지만 튼튼한 실을 이용했습니다. 살해 후, 그는 이 열쇠에 실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문을 안에서 완벽하게 잠그죠. 그런 다음….”
그는 서재 문에 가까이 다가가, 문틈과 바닥 사이의 미세한 틈을 가리켰다.
“이처럼 얇은 틈으로 실을 조심스럽게 빼낸 다음, 문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열기 시작한 겁니다. 바닥에 남은 긁힌 자국은 그 과정에서 문이 비정상적으로 힘을 받으며 열렸다는 증거죠.”
“문을 열었다고요? 그럼 그 틈으로 빠져나갔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엔 어떻게 다시…?” 김 경위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은우의 표정에서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문을 최대한 좁게 연 다음, 범인은 재빨리 몸을 밖으로 빼냈습니다. 그리고는 문틈으로 빼냈던 실을 당겨서… 열쇠를 다시 조작한 거죠.”
“실을 당겨서… 열쇠를 조작했다고요?”
“네. 문 안쪽에 걸려있던 열쇠를 실로 끌어당겨 열쇠 구멍에 다시 집어넣고, 밖에서 실을 조심스럽게 당겨 한 바퀴, 그리고 또 한 바퀴 돌렸던 겁니다. 문이 잠기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빗소리가 큰 밤을 택한 거겠죠.”
은우는 열쇠가 걸린 고리 쪽을 한 번 더 응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틈으로 빼냈던 실을 능숙하게 제거하고, 열쇠는 다시 제자리에 걸어 두었을 겁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요. 이 실은 그 트릭의 미세한 흔적, 그리고 범인이 미처 치우지 못했던 증거가 된 겁니다.”
김 경위는 은우의 말을 듣는 동안,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재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밀실의 불가사의한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범인은 이 방의 구조와 열쇠의 특징, 그리고 바닥 카펫의 상태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군요.” 김 경위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다시 예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해낼 수 있었던 자는… 윤 회장 저택의 구조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또 손재주까지 뛰어난 인물일 겁니다.”
그의 시선이 서재 한편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윤 회장의 비서실장과 집사를 향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마치 자신들의 비밀이 발가벗겨진 듯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은우 님. 만약 범인이 이 방법으로 밀실을 만들었다면… 왜 굳이 그 흔적, 그러니까 이 실을 남겨둔 걸까요?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걸까요?” 김 경위가 질문했다.
은우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의 웃음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아뇨, 김 경위님. 어쩌면…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두고 싶었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미궁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혹은…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하고 싶었던 범인의 마지막 ‘인사’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은우의 말이 끝나자, 서재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거대한 수수께끼의 핵심이 밝혀진 뒤의 긴장감 섞인 정적이었다. 김 경위는 수첩을 꺼내 들었고, 비서실장과 집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갔다.
밀실의 환상은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환상 뒤에 숨어 있던 진짜 범인의 얼굴을 찾아내는 일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