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도시의 숨결
### 에피소드 1. 잊혀진 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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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패널 1]**
(와이드 앵글. 황량하게 무너져 내린 도시의 전경. 콘크리트와 철골의 잔해들이 거대한 무덤처럼 솟아 있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잿빛 구름에 덮여 있고, 멀리서 옅은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그 가운데, 낡은 방진 마스크를 쓴 인물이 홀로 서 있다. 등에는 크고 낡은 배낭이 메어져 있고, 한 손에는 투박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개조 소총을 들고 있다. 곁에는 작은 드론 한 대가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떠 있다.)
**재하 (내레이션):** 멸망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남은 건 부서진 건물과… 끝없이 이어지는 침묵뿐이었다.
**[패널 2]**
(클로즈업. 재하의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위로 마스크가 드리워져 있고, 눈은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고 있다. 눈동자에는 피로와 함께 지워지지 않는 경계심이 서려 있다. 드론 ‘삐삐’가 재하의 어깨 옆으로 날아와 깜빡이는 작은 LED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삐삐 (기계음):** 삐빅! 목표 지점, 200미터 전방입니다. 잔해 지형, 불안정.
**재하 (낮은 목소리):** 알고 있어. 조용히 해.
**[패널 3]**
(재하와 삐삐가 조심스럽게 무너진 건물 사이를 걷는 모습. 바닥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녹슨 철근, 이름 모를 잔해들이 널려 있다. 발걸음마다 으스러지는 파편 소리가 들린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위태롭게 서 있다.)
**재하 (내레이션):** 이번엔 좀 달랐다. ‘산 자’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곳. 그 놈들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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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패널 4]**
(어느새 다다른 폐허가 된 병원 건물 입구. 간판은 반쯤 떨어져 나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XXXX 종합 병원’이라는 글자 중 ‘종합’ 부분만 겨우 읽을 수 있다. 건물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다.)
**재하:** 삐삐, 내부 정찰. 최대한 조용히.
**삐삐 (기계음):** 삐빅! 알겠습니다, 마스터. (작은 추진음과 함께 어둠 속으로 스르륵 날아들어간다.)
**[패널 5]**
(삐삐의 시점. 깨지고 부서진 병원 내부의 모습. 복도는 무너져 내린 천장 잔해로 막혀 있고, 찢어진 환자복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녹슨 수술 도구들이 널려 있는 수술실, 유리창이 깨진 진료실들이 스쳐 지나간다. 삐삐의 카메라 렌즈가 먼지 쌓인 팻말 하나를 포착한다. ‘약품 보관실 – 지하 2층’)
**삐삐 (기계음, 재하의 귀에 연결된 이어폰으로):** 마스터, 지하 2층에서 약품 보관실 팻말 확인. 주변 생명 반응 없음.
**재하 (이어폰 너머로, 낮은 목소리):** 지하… 젠장. 쉽지 않겠군. 복도 통로 확보됐나?
**삐삐 (기계음):** 주 통로 완전 붕괴. 다른 진입 경로 탐색 중… 삐빅! 비상 계단 통로 발견. 상태 불량.
**[패널 6]**
(재하가 폐허가 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손전등 빛이 어둠을 가르고, 계단참마다 쌓인 먼지와 쓰레기가 보인다.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재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쥐새끼 굴 같군.
**삐삐 (재하의 옆에 떠서 주변을 비추며):** 삐빅! 지하 2층 진입 완료. 공기 질 저하. 산소 마스크 필요할 수 있습니다.
**[패널 7]**
(지하 2층 복도. 더욱 짙은 어둠과 습한 공기가 가득하다.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재하의 손전등 빛이 벽면에 그려진 찢어진 포스터들을 스쳐 지나간다. ‘건강한 미래, 함께 만들어요.’)
**재하 (씁쓸한 미소):** 건강한 미래… 웃기는군.
**[패널 8]**
(갑자기 삐삐의 LED 눈이 붉게 깜빡인다.)
**삐삐 (경고음, 급박한 기계음):** 삐빅! 미확인 생명 반응 감지! 빠르게 접근 중! 서쪽 통로!
**재하 (움찔하며 소총을 고쳐 잡는다):** 무슨 놈들이지? 그림자인가?
**삐삐 (기계음):** 불분명! 움직임 빠름!
**[패널 9]**
(재하의 시점. 복도 끝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비정상적으로 길고 앙상한 팔다리와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다. 빛을 받자마자 빠르게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움직임. ‘그림자’다.)
**재하 (이를 악물고):** 젠장! 이런 곳에까지…
**[패널 10]**
(재하가 빠르게 옆의 진료실 문을 열고 몸을 숨긴다. 낡은 금속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림자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재하 (낮은 목소리로):** 삐삐, 미끼. 이쪽으로 유인해.
**삐삐 (기계음):** 삐빅! 알겠습니다. (작은 스피커에서 고주파음이 울리며, 삐삐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패널 11]**
(삐삐가 복도 반대편으로 날아가며 고주파음을 낸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들은 소리에 반응하여 삐삐 쪽으로 빠르게 몰려간다.)
**재하 (진료실 문틈으로 복도를 응시하며):** 그래… 그쪽으로 가라.
**[패널 12]**
(그림자들이 삐삐에게 몰려든 틈을 타, 재하가 조용히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와 약품 보관실 팻말이 있는 방향으로 전력 질주한다. 그의 발소리는 최대한 억제되어 있지만, 폐허 속에서는 크게 울린다.)
**재하 (내레이션):** 이런 놈들과 싸우는 건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소모전은 최대한 피해야 해.
**[패널 13]**
(재하가 ‘약품 보관실’이라고 적힌 굳게 닫힌 철문에 다다른다. 문은 두꺼운 자물쇠로 잠겨 있다. 그림자들의 괴성이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재하:** 젠장, 잠겨있잖아! 삐삐, 상태는?
**삐삐 (급박한 기계음):** 삐빅! 그림자들 마스터 쪽으로 방향 전환! 30미터 이내!
**[패널 14]**
(클로즈업. 재하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배낭에서 낡은 공구 세트를 꺼내 자물쇠를 만지작거린다. 손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재하 (중얼거리듯):** 빨리… 더 빨리…
**[패널 15]**
(뒤에서 그림자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끔찍하게 뒤틀린 팔다리가 복도 끝 어둠에서 번쩍인다. 재하는 마지막 한 번의 클릭과 함께 자물쇠를 부수는 데 성공한다.)
**철컥!**
**[패널 16]**
(재하가 철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뛰어든다. 내부에는 여러 층의 선반이 늘어서 있고, 약병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약품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섞여 있다. 뒤에서 그림자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재하 (숨을 헐떡이며, 문을 닫으려 하지만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패널 17]**
(철문 틈새로 앙상한 그림자의 팔이 삐져나와 문을 붙잡으려고 한다. 재하는 필사적으로 문을 밀어 닫으려 한다. 그림자의 힘이 생각보다 세다.)
**재하:** 삐삐! 지원!
**삐삐 (기계음):** 삐빅! 공격 모드 전환! (삐삐의 작은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하며, 작은 스턴 캐논이 충전되는 소리가 난다.)
**[패널 18]**
(삐삐가 틈새로 삐져나온 그림자의 팔을 향해 스턴 캐논을 발사한다.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푸른 빛이 터져 나온다. 그림자의 팔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다.)
**재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문을 완전히 닫고 잠금쇠를 내린다):** 후우…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는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다.)
**[패널 19]**
(재하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손전등을 들어 약품 보관실 내부를 비춘다. 선반 가득 쌓인 약병들. 오래된 것들이지만, 제대로 보관되어 있다면 유효할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 희망의 빛이 스친다.)
**재하:** 찾았다… 드디어.
**[패널 20]**
(클로즈업. 재하가 가장 안쪽에 있는 선반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든다. 약병의 라벨은 반쯤 훼손되어 있지만, ‘항생제’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진다.)
**재하 (내레이션):** 멸망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싸울 이유가 남아 있었다. 오늘, 나는 이 약병 하나로 또 하루를 살아갈 명분을 찾았다.
**[패널 21]**
(재하가 약병을 품에 넣고, 다른 유용한 약품들을 선별하기 시작한다. 그때, 벽 뒤편에서 ‘철컥’ 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재하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진다. 삐삐의 LED 눈도 다시 붉게 깜빡인다.)
**삐삐 (기계음):** 삐빅! 마스터! 후방 감지! 통로 외 다른 침입 경로 존재!
**재하 (소총을 다시 고쳐 잡으며, 벽 쪽을 노려본다):** 뭐라고…? 설마…
**[패널 22]**
(약품 보관실 한쪽 벽면, 거대한 환풍구 덮개가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틈새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한 실루엣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섬뜩한 눈동자 두 개가 재하를 응시한다.)
**재하 (내레이션):** 이 빌어먹을 세상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에필로그]**
**[패널 23]**
(와이드 앵글. 재하가 환풍구에서 기어 나오는 그림자를 향해 소총을 겨누고 있다. 약품 보관실 내부를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비추고, 그림자의 기괴한 형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삐삐는 재하의 어깨 위에서 경고음을 울린다.)
**재하 (굳은 표정):**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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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