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노래호: 심연의 유산**
**제1화: 어둠 속의 맥박**
차가운 침묵이 아르카나 호를 감쌌다. 우주의 검은 벨벳은 무한했고, 그 속에서 별들은 차가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인류가 도달했던 가장 먼 지점을 훨씬 넘어, 아르카나 호는 이름 없는 심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선장 서진은 메인 모니터에 펼쳐진 광활한 허공을 응시했다. 몇 년째 이어지는 이 지루하고도 위험한 탐사 항해는, 때로는 그를 무한한 허무 속으로 밀어 넣곤 했다.
“선장님, 에너지 신호가 잡혔습니다.”
침묵을 깬 건 수석 과학자 이안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안은 언제나 그랬듯, 안경 너머의 눈빛에는 미묘한 흥분과 함께 냉철한 분석력이 깃들어 있었다.
“에너지 신호? 이 허공에서?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이안?”
서진이 농담조로 던졌지만, 이안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이전에 탐지된 적 없는 패턴입니다. 아주 약하지만, 명확해요. 그리고… 자연적인 현상 같지는 않습니다.”
서진은 몸을 일으켜 이안의 콘솔로 다가갔다. 콘솔 화면에는 희미한 곡선 그래프가 규칙적으로 파동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 한 귀퉁이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위치는?”
“현 위치에서 약 320만 킬로미터 전방. 워프 항해로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기관장, 워프 준비해.”
서진의 명령에 기관장 박준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중한 몸집의 박준은 아르카나 호의 심장과도 같은 기관실을 책임지는 인물이었다. 그는 언제나 효율성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미지의 신호 따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선장님, 안전 규정상 미확인 에너지 신호에 대한 직접적인 워프 접근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알아. 하지만… 이건 놓칠 수 없어, 박준. 이 수년간의 항해 동안, 이런 신호는 처음이야.”
서진의 눈빛에는 탐험가의 뜨거운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박준은 한숨을 쉬었지만,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아르카나 호의 선장은 서진이었고, 박준은 그의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
워프 점프 후, 아르카나 호는 약속된 좌표에 나타났다. 주 모니터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망한 어둠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안, 정확한 위치 맞아?”
“네, 선장님. 신호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습니다.”
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거대한 우주선에 설치된 최첨단 센서들이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정찰 드론 출격시켜. 근접 촬영 시작해.”
명령이 떨어지자, 아르카나 호의 격납고에서 소형 정찰 드론이 조용히 미끄러져 나갔다. 드론이 목표 지점에 접근하자, 이안의 콘솔 화면에 드디어 무언가가 잡혔다.
“이게… 뭐죠?”
이안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서진은 숨을 들이켰다. 드론이 보내온 영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정육면체였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주변의 별빛은 물론, 아르카나 호의 탐조등 불빛마저도 그 존재에게는 흡수되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검은 심연을 잘라내어 빚어놓은 듯한, 완전한 어둠의 덩어리였다. 그 크기는 아르카나 호와 맞먹거나 더 커 보였다.
“이게… 인공 구조물이라고?”
박준의 목소리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합니다. 형태가… 너무나 완벽해요. 자연적인 형성이 아닙니다.”
이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론이 더 근접하자, 그 정육면체의 표면에서 아주 희미하게, 하지만 규칙적으로 맥박 치는 듯한 빛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마치 어둠 자체가 심장처럼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봐, 드론이… 먹통이 되는 것 같아.”
오퍼레이터가 다급하게 외쳤다. 드론의 영상은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야?”
“알 수 없습니다. 주변 공간에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드론의 시스템에 간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후퇴시켜! 빨리!”
서진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드론은 마지막으로 일그러진 영상 한 조각을 전송하고는 통신이 끊겼다. 영상에는 정육면체의 표면에서 뻗어 나온 듯한, 끈적하고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드론을 집어삼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선교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젠장… 이안, 저 물체에서 나오는 에너지 패턴은 어떻게 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장님. 모든 물리 법칙을 거스릅니다. 마치… 에너지원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주변 공간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약하지만…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안의 음성은 불안정했다.
“흡수하고 있다고? 뭘?”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전자기파, 중력파… 아니, 어쩌면 우주선 자체의 에너지까지도.”
박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럼 우리가 저거 가까이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소리잖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진은 모니터를 응시했다.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고고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드론을 삼킨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압도적인 침묵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 침묵 너머에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현듯 아르카나 호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통신 장비에서 잡음이 섞였고, 선교의 불빛이 깜빡였다.
“무슨 일이야, 박준?!”
“젠장! 메인 동력 효율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비상 동력으로 전환 중인데, 그마저도 불안정합니다!”
모니터의 검은 정육면체에서 희미한 맥동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후퇴! 즉시 이탈해!” 서진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정육면체의 모든 면에서, 이제는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균열들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색을 포함하는 동시에 어떤 색도 아닌, 시야를 왜곡시키는 혼돈의 빛이었다.
“선장님! 저게… 저게 열리고 있습니다!” 이안이 기겁하며 외쳤다.
쾅!
아르카나 호의 함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중력 제어 장치가 오류를 일으키며 선교 안의 모든 것이 붕 뜨고 나뒹굴었다. 거대한 정육면체는 마치 꽃봉오리처럼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이제 아르카나 호의 보호막을 뚫고 들어와 선교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이게 뭐야…! 내 몸이…!”
오퍼레이터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피부 위로 정체불명의 빛이 스며들자, 마치 액체처럼 일렁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서진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육면체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있었다. 무한한 심연이 그대로 압축된 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블랙홀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공간은 아르카나 호를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다.
우주선 전체가,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승무원이 강력한 흡인력에 의해 정육면체 안의 공허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르카나 호의 선체는 비명을 지르듯 찢어지고 휘어졌다.
서진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이 빛으로 변하며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몸의 모든 세포가 분해되고, 의식이 끝없이 확장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차가운 우주의 심연 속에서 발견된 미지의 유물은, 그렇게 아르카나 호와 그 승무원들을 집어삼켰다. 그들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눈앞의 모든 것이 하얗게, 그리고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가 찾아왔다.
—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