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색 탑 아래, 어둠의 심장
아르카나 마법 학원. 이 이름이 가진 무게는, 내 어깨를 짓누르는 평생의 짐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영광의 상징이겠지만, 나 강민에게는 지루한 실습과 끝없는 경쟁, 그리고 언제나 아슬아슬한 학점의 연속이었다. 오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고대 마법 유물 분류학’ 실습. 학부생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F학점을 면하기 위한 나로서는 이 낡은 금서고의 먼지 쌓인 책장들을 뒤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금서고 지하 3층. 금서고 중에서도 가장 음습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 빛 한 줄기 제대로 들지 않아 항상 어두웠고, 쾨쾨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미약한 광원] 마법으로 간신히 발밑을 비추며, 눅눅한 고서들 사이를 헤치고 있었다. ‘잃어버린 에테르 칼날의 기원’이라던가, ‘고대 샤먼 부족의 저주 의식’ 같은 따분한 제목의 책들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교수님은 ‘구석에 처박힌 아무거나 흥미로운 유물 기록을 찾아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셨지만, 흥미는커녕 잠만 쏟아질 지경이었다.
“젠장, 이런 걸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투덜거리며 손을 뻗어 책장 구석의 묵직한 마도서를 빼내려던 순간이었다. 낡은 마도서가 있던 자리에, 벽돌 하나가 삐걱이며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설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벽돌을 다시 한번 눌러보았다. 삐걱! 이내 벽돌이 완전히 안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그 뒤편의 벽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슬며시 열렸다.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눈앞에 드러난 것은 비좁고 어두운 통로였다. [미약한 광원]으로는 통로 끝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망설임도 잠시,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어쩌면 학점을 만회할 만한 특별한 발견일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이 나를 움직였다.
벽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리자, 주변은 완전히 암흑으로 변했다. 이내 마법으로 비춘 빛이 통로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끈적한 이끼가 벽을 뒤덮고 있었고,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묘한 금속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바닥에는 마른 나뭇잎 같은 것이 밟혔고, 저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은신]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내 발소리는 마치 어둠 속에 흡수되는 것처럼 울리지 않았다. 통로는 예상보다 훨씬 길었고, 점차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이상하게도 시스템 메시지조차 뜨지 않았다. 보통 이런 미개척 지역에 들어서면 위험 등급이나 지역 정보가 뜨기 마련인데, 마치 이곳이 시스템의 인지 범위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걸었을까,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낡은 철문 하나를 발견했다. 문틈으로는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삐걱이는 소리를 최소화하며 문을 열자, 시야 가득 알 수 없는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은 거대한 지하 연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마법 학교의 연구실’과는 달랐다. 낡고 녹슨 철제 테이블 위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고, 뼈대가 드러난 듯한 기이한 금속 구조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붉은색 마법진 형태로 새겨져 있었고, 주기적으로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푸른색 마나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공간의 압도적인 침묵에 흡수되어 버렸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유리관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호기심과 함께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리관 하나하나를 살펴보던 내 눈은, 이내 한 유리관 앞에서 멈춰 섰다. 끈적하고 탁한 액체로 가득 찬 유리관 안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형상과 짐승의 모습을 뒤섞어 놓은 듯했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사지, 비늘 같은 피부, 그리고 액체 속에서 흐릿하게 깜빡이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몬스터도, 마법 생명체도 아니었다.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변형되고, 실험된 ‘피조물’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역겨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때, 또 다른 유리관 옆에 놓인 낡은 기록물을 발견했다. 가죽으로 덮인 낡은 일지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일지를 펼쳤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피 비린내가 섞인 듯한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일지의 첫 페이지에 쓰여진 글씨는 격앙된 필체로 휘갈겨져 있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지하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실패는 없다. 오직 데이터와 개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뒷장을 넘길수록 글은 점점 광기로 물들어갔다.
*『피와 마나로 빚어낸 영원의 조각… 그들은 우리의 실패작이 아니다. 위대한 마법의 초석이자, 아르카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한 제물이다. 껍데기만 남은 자들의 비명조차 우리의 연구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대상: 피실험체-C, 전 아르카나 마법 학원 수석 마법사 루비오. 심장 정지 후 3일 경과. 영혼의 유지는 성공적. 육체 재구축 과정 70% 진행. 융합될 생명체의 마나 코어 주입 시도. 부작용: 자아 상실, 폭력성 증가, 마력 폭주. 그러나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는 마침내… 죽음을 지배할 것이다.』*
내 손에서 일지가 떨어졌다. 루비오? 전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수석 마법사? 게임 내 설정으로만 존재하던 인물이었다.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인해 그에 대한 기록은 모조리 삭제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는… 피실험체로 전락해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 유리관 속의 기형적인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마법으로 비추던 빛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엘리트 마법 학교의 지하에서, 죽은 자들을 되살리고, 생명체를 뒤틀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끔찍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그때였다.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던 기계음이 갑자기 커졌다. 푸른색 마나가 번쩍이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내 연구실 전체의 마법 광원 장치가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칙, 칙,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연구실 전체가 밝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저 멀리 복도 끝에서 불쾌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마치 녹슨 쇠붙이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발소리였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밝아진 시야 속에서, 유리관 속의 피조물들이 희미하게나마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탁한 액체 속에서 흐릿한 두 눈을 나를 향해 고정하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 숨겨졌던 끔찍한 진실이, 이제 빛 아래에서 나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다리는 이미 공포에 마비된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다가오는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