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깔린 굴 안은 습하고 차가웠다. 바깥 세상은 용비 제국의 혹독한 겨울이 벌써부터 기세를 떨치고 있었고, 그 한기만큼이나 백성들의 삶은 얼어붙어 있었다. 숨죽인 채 모인 이들의 헐거운 옷가지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황제 폐하께서 또다시 새로운 칙령을 내리셨다.”

현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깊게 패인 주름이 그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청년 못지않게 형형했다. 낡은 탁자에 놓인 촛불이 일렁이며,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흉작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귀족들의 겨울 연회를 위한 특별세라니. 피와 땀으로 일군 곡식을 뺏어가더니, 이제는 얼어 죽을 판국에 그마저도 모자라다는 거냐!”

서연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녀의 가는 손목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어떤 무쇠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그녀의 뒤에 선 청년들의 얼굴에도 울분이 가득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거나, 이를 악물고 천장을 노려봤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새벽별’이라 불리는 반란군의 핵심이었다. 거대한 용비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지만 그 돌멩이가 일으킬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었다.

“분노는 알겠으나,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서연아.”

강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무 살 초반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지쳐 보이는 현 노인마저도 의지하게 만드는 흔들림 없는 강직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반란군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과거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제국의 부패에 등을 돌리고 모든 것을 버린 채 평민들의 손을 잡았다.

“이성을 잃어? 강율 동지, 우리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오. 제국의 폭정이 우리의 목덜미를 조여 오는데, 이대로 보고만 있으라구요? 다음 달에는 우리 애들도, 부모님들도 굶주림에 쓰러질 겁니다!”

어느 젊은이가 울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강율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이대로 두면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많은 이들이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모하게 달려든다면, 그 죽음은 헛된 것이 될 뿐.”

강율은 탁자 위로 지도를 펼쳤다. 낡고 해진 종이에는 제국의 수도 ‘용화’를 중심으로 한 상세한 지형이 그려져 있었다. 촛불이 일렁이며 지도 위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용화 인근의 제1군 식량 창고다.”

그의 말에 굴 안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제1군 식량 창고는 용비 제국군의 최전선 부대와 수도를 잇는 핵심 보급 창고였다. 그곳을 노린다는 것은 곧 제국의 심장을 직접 노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강율 동지, 그곳은 제국의 눈과 귀가 집중된 곳입니다. 경비도 삼엄할 테고… 병력도 엄청날 텐데요.”

현 노인이 신중하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역력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이곳에 쌓인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반란군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백성들이 동사하거나 굶어 죽을 겁니다. 용비 제국의 군량미는 썩어 문드러지고 있지만, 그 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일부만이라도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이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지.”

강율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 한 지점을 가리켰다.

“창고 외곽은 제국군의 정예 병력이 지키고 있지만, 북쪽 방어선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최근 발생한 변방의 소요 사태 때문에 병력이 일부 차출되었어. 빈틈은 바로 이때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도 위를 꼼꼼히 살피며 활과 단검을 든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듯했다.

“침투는 가능하겠지만, 내부 구조가 문제입니다. 식량 창고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고, 각 구획마다 보관된 물품이 다릅니다. 혹시 보관병들의 배치가 특이하거나, 함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보가 필요하다. 내부에 첩자를 심어두었다. 내일 새벽, 정확한 배치도와 창고 수비 병력의 이동 경로를 전달받기로 했다.”

강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계산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기습을 통해 창고를 장악하고, 최대한 빠르게 식량을 외부로 반출해야 한다. 이후 제국군의 대규모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철수해야 해.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정오까지 모든 작전을 완료해야 한다.”

“그럼, 정면 돌파는 안 되겠네요. 적은 수의 정예 병력으로 침투해서 문을 열고, 외부 지원 병력이 합류해서 반출을 돕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일 겁니다.”

서연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녀는 이미 작전의 전체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맞다. 서연, 네가 선봉을 맡아주어야 한다. 너의 궁술과 은밀한 움직임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 노인께서는 외부 지원 병력을 이끌어 주십시오. 노인의 지휘 아래라면 혼란 없이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강율은 모두의 눈을 한 명 한 명 마주하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간절하면서도 결연했다.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곳에 모인 우리뿐 아니라, 우리를 믿고 기다리는 수많은 백성들의 희망마저도 산산조각 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굴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용비 제국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균열은 더 큰 균열을 만들고, 결국 이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리는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새벽별이 될 것이다!”

강율의 마지막 말에 굴 안의 모든 이들이 주먹을 쥐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결의가, 절망 대신 희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을 향해 던져질 그들의 작고도 거대한 돌멩이가, 이제 막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들은 알았다. 이번 겨울은 그들의 마지막 기회이거나, 혹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바깥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고, 하늘에는 희미한 별 하나가 흔들림 없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앞날을 비추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