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검은 맹세
그날, 천검문(天劍門)의 새벽은 피처럼 붉었다.
문파의 최고수들이 모여 비무를 겨루는 장인 연무대. 아직 해가 온전히 떠오르지 않은 어스름 속에서, 나는 현우와 마주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은빛 검신이 서늘하게 빛나는 천검문의 보검, ‘청월(靑月)’이 들려 있었다. 내 손에는 조금 더 묵직하고 거친, 수련생 시절부터 늘 함께했던 ‘흑철검’이 쥐어져 있었다.
“무강아, 네가 오늘 승리하면, 사부님께서 너를 대사형으로 공표하실 게다.”
현우의 목소리에는 미소가 스며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눈빛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현우는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검을 잡았고, 같은 사부 아래에서 피땀 흘려 수련했다. 수많은 강호의 풍파 속에서 서로의 등을 맡겼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함께 다녀온 사이였다.
“흥, 네가 그렇게 쉽게 져줄 리가 없지 않느냐.”
나는 웃으며 답했다. 현우는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듯 보였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언제나 내가 조금 더 강했다. 이것이 우리의 미묘한 관계이자, 균형이었다. 나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현우는 타고난 지략과 끈기가 있었다. 우리의 힘을 합치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현우가 청월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나직이 속삭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흑철검을 고쳐 잡았다. 주위의 고수들은 조용히 우리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기대와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파앗!**
현우의 움직임은 물처럼 유려했다. 청월검은 푸른 섬광을 그리며 내 목을 겨냥했다. 그야말로 ‘청월유수검(靑月流水劍)’의 정수였다. 물처럼 흐르다가도 얼음처럼 단단해지는 검술. 나는 그의 검로를 읽으며 흑철검을 들어 막아냈다.
**캉! 캉! 챙!**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연무대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현우의 검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나는 수세에 몰리는 듯 보였지만, 내 검은 물러서면서도 빈틈을 찾고 있었다. ‘무영검법(無影劍法)’.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나의 검법은, 단순한 방어처럼 보이다가도 순간적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휘이익!**
현우의 검이 내 턱 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나는 자세를 낮추며 그의 하체를 노려 검을 뻗었다. 현우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나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빛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무강아, 이것은 나의 진심이다!”
현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평소보다 더욱 기합이 실린 그의 검은 갑자기 궤도를 바꿔 내 심장을 향해 돌진했다. ‘역류청월(逆流靑月)’. 청월유수검의 마지막 초식, 모든 흐름을 거스르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콰앙!**
나는 온몸의 진기를 끌어모아 흑철검으로 그의 검을 막아냈다. 엄청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발밑의 연무대 바닥이 갈라졌다. 나의 ‘흡공신법(吸空身法)’으로 충격을 흡수하며 버텼지만, 현우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하압!”
현우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밀어붙였다. 그의 표정은 이미 미소가 사라지고, 굳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 현우는 이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늘 침착하고 냉정했다.
**파바바밧!**
나는 버티다 못해 뒤로 밀려났다. 현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추격해왔다. 그의 검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내 전신을 휘감았다. 나는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리려 애썼다.
“무강아, 천검문의 대사형 자리는, 나의 것이어야 했다!”
현우의 절규 섞인 외침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함께 문파를 이끌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번쩍!**
현우의 검이 내 시야를 가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촤악!**
예리한 통증이 왼쪽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왼쪽 눈이 감기면서 시야가 절반으로 줄었다. 나는 비틀거렸다.
“현우…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말을 잇기도 전에, 현우의 검이 내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푹!**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날이 살을 파고들었다. 내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흑철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챙그랑! 소리가 연무대에 퍼졌다.
“크… 윽…”
입에서 피가 울컥 솟아났다. 나는 고통에 신음하며 현우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이 없었다. 냉정하고 섬뜩한,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의 눈동자는 욕망과 뒤틀린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왜…?”
나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내 유일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가?
“미안하다, 무강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사형은 내가 되어야 했어. 너는 너무 강했고, 너무… 순진했다.”
현우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그는 내 몸에 박힌 청월검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내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네가… 날… 배신한 거냐…?”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물었다. 나의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배신? 아니, 무강아. 이건 나의 선택이다. 너는 그저 나를 위한 발판이었을 뿐.”
현우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그 순간, 연무대에 서 있던 다른 고수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놀란 듯 얼어붙어 있었다. 아무도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우의 배신은 나에게뿐 아니라, 천검문 전체에 충격이었다.
현우는 내 몸에 박힌 청월검을 비틀며 뽑아냈다. **철컥!** 피와 내장이 엉겨 붙은 검날이 뽑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야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며 차가운 연무대 바닥을 적셨다.
“사부님, 소제가 무강을 제압했습니다. 대사형의 자리는 이제 소제의 것이옵니다.”
현우는 나를 내려다보며 사부님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그 미소를 똑똑히 보았다. 내 심장을 찢어 놓은 그 미소를.
내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현우의 칼에 쓰러진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절망만이 아니었다.
‘배신… 배신자… 현우…’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피가 오른손 검지 끝에 맺혔다. 나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 피를 연무대 바닥에 끌어다 짧은 획을 그었다.
**―― 복수.**
나의 검은 복수의 칼날이 될 것이다.
지옥에서 돌아와, 너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현우.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악마가 될 것이다.
내 의식은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현우의 승리 선언과, 차가운 새벽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영혼은 맹세했다.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너는,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검은 맹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