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차가운 바람이 축축한 흙냄새와 멀리서 실려오는 소나무 향을 실어 달빛 계곡을 휘감았다. 카엘은 황혼 속에 하얗게 부서지는 자신의 숨결을 바라보며 두꺼운 망토를 더욱 바싹 여몄다. 마른 낙엽과 부러진 잔가지 위를 밟는 그의 군화 소리는 그들이 은밀히 만나는 장소, 맹세의 바위로 향하는 익숙한 길을 따라 타박타박 울렸다.

그의 머릿속은 최근의 전투로 인한 격렬한 폭풍이었다. 국경에서의 소규모 교전, 점점 더 대담해지는 어둠족의 침략 보고, 그리고 더 많은 보호를 요구하는 인간 정착민들의 아우성. 그의 지휘에 대한 무게, 그의 부하들의 생명, 그리고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듯한 취약한 평화 조약은 마치 육체적인 짐처럼 그를 짓눌렀다. 평소보다 늦었다. 죄책감이 치밀어 오르다 이내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바뀌어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때 그는 그녀를 발견했다. 솟아오르는 달을 배경으로 맹세의 바위의 거친 봉우리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실루엣. 가늘지만 강인한 그녀의 몸은 어둠족 특유의 흙빛 옷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검은 가죽, 짜 맞춘 이끼, 그리고 팔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생체 발광 이끼의 무늬. 달빛을 머금은 듯 은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머리칼은 등 뒤로 길게 흘러내렸다.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고, 별빛을 반사하는 듯한 두 개의 자수정 같은 그녀의 눈이 그를 찾아냈다.

“늦었어, 카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어우러진 부드러운 멜로디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는 질책 대신 걱정이 스며 있었다.

“미안하다, 리라.” 그가 다가가자마자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매끄럽고 차가운 돌 같은 그녀의 피부는 그에게 익숙한 온기를 전했다. “동쪽 감시탑 쪽에서 교전이 있었어. 예상보다 길어졌지.”

그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점점 더 심해지는군. 너희 인간들은 우리 어둠족의 땅을, 우리는 너희의 영토를 탐하고.”

그가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며 그녀에게서 나는 흙내음 섞인 야생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그것은 오직 그녀에게서만 나는 독특한 향이었다. “양쪽 모두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몰라.”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제복에 새겨진 묵직한 자수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소박한 복장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대와 나의 시간 말인가?”

그가 절박한 강렬함으로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의 시간이다, 리라. 금지된 시간. 하지만 내겐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한.”

희미한 미소가 그녀의 입술에 번졌다. 그의 거친 세상을 언제나 부드럽게 만들었던 드문 광경이었다. “어둠족은 맹세를 소중히 여겨. 그대가 나의 맹세라면, 나는 이 생이 다할 때까지 지킬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리라. 내 심장이 너를 기억하는 한, 이 맹세는 변치 않아.”

그들의 기억은 거의 1년 전의 밤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카엘은 정찰대와 헤어져 매복 공격을 받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죽음을 기다리며 골짜기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발견한 것은 홀로 사냥 또는 정찰을 나섰던 리라였다. 그녀의 부족 방식이라면 적군 병사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겠지만, 그녀는 고대의, 대지에 묶인 마법을 사용하여 그의 상처를 지혈했다. 그녀의 빛나는 손은 부드러운 치유 에너지로 빛났다. 호기심, 잠시 동안의 침묵적인 이해,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가장 불가능한 상황에서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뭇가지 하나가 아래쪽 어딘가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숲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카엘의 고개가 번쩍 들렸고, 그의 감각은 즉시 경계 태세로 바뀌었다. 그는 칼을 뽑았다. 금속성의 긁히는 소리는 방금 전의 고요한 친밀감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무슨 소리지?” 리라가 속삭였다. 그녀의 몸은 긴장했고, 그녀의 눈은 초자연적인 날카로움으로 그림자들을 훑었다.

“인간이다.” 카엘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경계 병력인 것 같아.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는 그녀를 맹세의 바위의 울퉁불퉁한 방패 뒤로 끌어당겨 차가운 표면에 밀착시킨 채,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 묵직한 군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며 점점 더 커졌고, 낮은 인간들의 웅얼거림이 뒤따랐다.

“이쪽으로 발자국이 이어져 있는데?”
“누군가 잠시 쉬었다 간 건가. 아니면… 어둠족 정찰병인가?”

목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카엘은 그들의 발걸음의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리라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안심과 경고를 담은 침묵의 메시지였다. 그녀의 크고 빛나는 눈이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공유된 위험을 반영했다. 그녀의 백성들은 적군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할 것이다. 그의 백성들… 만약 이 사실이 발각된다면 그의 지휘관들이 그의 목숨을 살려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배신, 적과의 친교 – 그 비난만으로도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발걸음이 주춤하더니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목소리는 사라지고, 멀리서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카엘은 긴 시간 동안 숨을 들이쉬지 않은 채 있다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긴장을 풀었다.

“갔나…?” 리라가 거의 속삭이듯 숨을 내쉬었다.

“응. 아무래도 발자국을 놓친 것 같아.” 카엘은 그동안 참았던 숨을 떨리는 목소리로 내쉬었다. 아드레날린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차가운 공허함을 남겼다.

하지만 그 순간은 산산조각 났다. 그들의 상황이 주는 냉혹한 현실이 무겁고 숨 막히게 다가왔다.

“이젠 가야만 해.” 카엘의 목소리는 후회로 거칠었다. “더 이상 머물면 위험하다. 양쪽 모두에게.”

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빛 같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알아.”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미간 위의 흉터를 가볍게 만졌다. 처음 만났을 때 얻었던 흔적이었다. “하지만… 다음 만남은 언제쯤이 될까?”

그 질문은 말 없는 두려움으로 무겁게 공중에 떠돌았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세계의 가장자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모르겠다.” 그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시인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꼭 안았다. 이별과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는 필사적인 포옹이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빛나는 눈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던진 후, 카엘은 몸을 돌려 길을 내려갔고, 그의 실루엣은 깊어지는 황혼 속으로 사라졌다.

리라는 맹세의 바위에 남아있었다. 차가운 돌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바람이 울부짖었다. 그녀의 마음속 울음을 닮은 비통한 만가(輓歌)였다. 이제 높이 뜬 달은 계곡 위로 길고 왜곡된 그림자를 드리웠고, 고대 숲은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몸부림치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름다운 만큼이나 위험한 사랑, 세상이 꺼뜨리려 하는 금지된 불꽃이 격렬하게 타오르는 가슴의 쓰라린 맛을 남긴 채. 경계의 속삭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조여드는 듯했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위협하는 것처럼. 과연 그들의 다음 만남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맹아기의 전쟁이 마침내 그들을 영원히 갈라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