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목: 균열 (Crack)**

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 에어컨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커튼만이 현실과 악몽의 경계에 놓인 듯 위태로웠다. 지난밤, 분명히 잠가두었던 현관문이 새벽 세 시에 ‘덜컹’하고 열렸던 일을, 그는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여전히 발작하듯 뛰었다.

“젠장…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였나.”

그는 애써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생긴 환각이거나, 이 오래된 아파트의 노후화된 문짝이 바람에 흔들린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잠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그는 천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회색빛 시멘트 천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그때였다.
벽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톡, 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우는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위층이나 옆집에서 들리는 일상적인 생활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는 일정했다. 규칙적인 박자를 가진 똑똑거림.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윗집이 망치질할 시간도 아닌데…”

그는 중얼거렸다. 시계는 새벽 3시 3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공사를 할 리는 만무했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지는 듯했다. 현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차가운 벽면에 피부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톡. 톡. 톡.
이번에는 훨씬 가깝게 들렸다. 바로 이 벽, 그의 침실 벽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그는 손바닥으로 벽을 짚었다. 콘크리트 너머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그 진동은, 마치 안에 갇힌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현우는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거실 벽에 귀를 대자 소리는 더욱 기이하게 변했다. ‘톡, 톡’ 하는 소리 위에 겹쳐지는 흐릿한 속삭임.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목소리 같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 그는 저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환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누구세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질문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웅얼거림은 대답처럼 잠시 멈추는 듯했다가, 이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했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는 언어. 낡은 방언처럼 들리기도 했고, 아예 다른 시대의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등골에 오한이 스몄다.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연결음은 한참을 이어지다 끊겼다. 이 시간에 전화를 받을 친구는 없었다. 그는 홀로 이 기괴한 소리들과 마주해야 했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웅얼거림은 흐느낌처럼 변했고, ‘톡, 톡’ 하는 소리는 무언가 긁어대는 듯한 ‘슥슥’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벽 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무언가에 갇혀 절규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오래된 가족사진 액자가 ‘쿵’ 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심장이 턱밑까지 치솟았다. 액자를 다시 바로 세우려는데,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충격으로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액자를 움켜쥐었다. 사진 속 젊은 부모님의 환한 미소가 기이하게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정확히 액자를 바로 세우는 순간, 그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익숙했던 거실의 풍경이 한순간 다른 이미지로 겹쳐 보였다.
지금의 흰색 벽지가 아닌, 누렇게 바랜 낡은 꽃무늬 벽지.
세련된 가죽 소파 대신, 투박한 나무 탁자와 낡은 장롱.
희미하게 느껴지는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
마치 눈앞의 공간이 통째로 뒤바뀐 것만 같았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고, 너무나도 실감 나는 변화였다. 시간의 틈새를 엿본 것 같은 섬뜩한 경험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흰 벽지와 가죽 소파, 그리고 은은한 디퓨저 향.
하지만 현우의 머릿속에는 방금 보았던 낡은 거실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였다. 손에 쥐고 있던 액자가 무릎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그때, 벽에서 들리던 긁어대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대신, 완전히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째깍, 째깍.’
벽시계 소리였다. 하지만 현우의 아파트에는 벽시계가 없었다.
소리는 벽 안에서 들려왔다. 마치 벽 속에 거대한 괘종시계라도 숨겨져 있는 것처럼.
‘째깍, 째깍.’
너무나도 규칙적이고, 너무나도 명료했다.
마치 시간이 그의 눈앞에서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현우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서 들리는 시계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시계 소리 위로, 이제는 속삭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돌아가….”
아주 작고, 오래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벽 안에서 울려 퍼지며 현우의 고막을 때렸다.

“돌아가야만 해….”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했다. 간절했고, 동시에 지독한 절망을 담고 있었다.
현우는 패닉에 빠졌다. 그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없었다.
벽 안에서 들리는 시계 소리는 점점 빨라졌고,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때로… 돌아가야 해….”

현우는 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애원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벽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벽에 닿는 순간, 벽 한가운데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처음엔 실금 같던 균열은 삽시간에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틈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시멘트가 아니었다.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리고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시간의 파편들이었다.
희미한 과거의 흔적들이 눈앞에서 부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틈새 너머에서, 무언가 현우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채는 섬뜩한 힘이 느껴졌다.
차가웠다. 얼음장 같았다.
동시에 그의 몸이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격렬한 이질감을 느꼈다.
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의 벽, 그 딱딱한 콘크리트가 마치 물처럼 그의 몸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의 시야는 암전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들은 것은, 끊임없이 울리는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와,
“이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야…”라는 섬뜩한 속삭임이었다.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현우는 의식을 잃었다.
그의 아파트 벽에는, 쩍 갈라진 균열만이 흉터처럼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는, 여전히 끊임없이 ‘째깍, 째깍’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것처럼.
혹은,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되돌리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