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7화. 굶주린 이빨들

어둠은 짙고, 밤은 깊었다. 제국 수도 ‘아퀼라’ 외곽의 거대한 군량창고는 웅장하면서도 위압적인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빗물이 두터운 석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창고를 둘러싼 높은 감시탑에서는 매시간 초병들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울렸지만, 그 외에는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 고요했다.

카인은 축축한 땅에 엎드린 채, 흙먼지가 뒤섞인 빗물을 삼켰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얼굴을 파고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거대하고 육중했다. 저 안에 제국을 지탱하는 수십만 병사들의 양식이, 그리고 폭정을 견디는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엄청난 양의 곡식이 잠들어 있었다.

“목표, 완벽히 시야에 들어왔다.”
귓가에 속삭임이 들렸다. 레아였다. 그녀는 카인의 옆에 엎드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레아의 검은 머리카락은 빗물에 젖어 뺨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경비병의 순찰 간격은?” 카인은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았지만, 옆에 있던 레아는 놓치지 않았다.

“예상대로 12분. 세 번째 감시탑의 초병은 3분 전 교대였다. 다음 교대까지는 최소 50분 여유.” 레아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녀는 제국군 출신이었다. 놈들의 규칙과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단순했다. 침투, 폭파, 탈출. 이 거대한 창고를 무너뜨려 제국군의 보급망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 단순했지만, 성공하면 제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은 파급력을 가질 작전이었다.
“좋아. 움직인다.”

그의 신호에 따라 어둠 속에 숨어있던 여섯 명의 그림자가 마치 물속으로 스며들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인이 이끄는 반란군, ‘새벽의 파수꾼’ 중에서도 가장 정예 부대였다. 제국의 억압 속에서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첫 번째 장애물은 창고 외벽을 둘러싼 철조망이었다. 레아가 미리 준비해 온 특수 절단기로 신속하게 처리했다. ‘차르륵’ 하는 작은 마찰음이 빗소리에 묻혔다. 이들은 모두 훈련된 전문가였다. 불과 몇 초 만에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통과.” 레아가 수신호를 보냈다.
대원들이 차례로 구멍을 통과했다. 카인은 마지막으로 구멍을 빠져나왔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정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생의 기억이 그에게 이 모든 상황을 게임처럼 분석하고 예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피 냄새, 땀 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뒤섞인 현실.

창고 건물까지는 불과 50미터. 개활지였다. 자칫하면 감시탑에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방패는 어둠과 빗줄기뿐이었다.
“세 명씩, 간격을 두고 움직여. 내가 먼저 간다.” 카인이 속삭였다.
그가 먼저 몸을 낮춰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유연하고 빨랐다. 빗방울이 그의 얼굴을 때렸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오직 목표만을 향해 나아갔다.

절반쯤 왔을 때, 갑자기 감시탑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멈춰!” 레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모두가 일제히 흙바닥에 엎드렸다. 카인의 심장이 순간 철렁했다. 벌써 발각된 건가?
“아니, 괜찮아. 그냥 번개야.” 레아가 다시 속삭였다.
실제로 잠시 후, 멀리서 천둥소리가 ‘쾅’ 하고 울렸다. 카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두 번의 휴식을 거쳐 마침내 창고 벽에 도달했다. 빗물에 젖은 거친 돌벽의 감촉이 느껴졌다.
“북쪽 출입구 봉쇄는 확인했나?” 카인이 물었다.
“예상대로 자물쇠는 걸려 있었지만, 안에서 잠긴 흔적이 없었어. 아마 놈들은 안에서 잠그는 것까지는 생각도 안 한 모양이야. 허점이지.” 레아가 비웃듯이 말했다.
“허점이라기보다 오만이지.” 카인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제국은 반란군을 무시했고, 그 오만이 곧 그들의 발목을 잡을 터였다.

레아는 창고 벽에 난 작은 환기구를 가리켰다. “저기가 가장 안전한 진입로야. 폭파 장치 설치를 위한 통로로는 최적이지.”
환기구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이미 특수 제작된 폭약을 설치하기 좋게 내부가 파악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카인이 말했다.
“아니, 내가 먼저.” 레아가 반박했다. “내부 경비병 배치에 대한 내 정보가 더 정확해. 선두는 내가 맡아야 해.”
카인은 잠시 망설였다. 레아는 전투에 특화된 요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알았다. 하지만 조심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신호 보내.” 카인이 결국 양보했다.

레아는 망설임 없이 환기구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거칠지 않고 유연했다. 잠시 후, 내부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였다. 소형 손전등을 켠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와.” 레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카인과 대원들이 차례로 환기구를 통과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가 섞인 곡물 냄새가 확 끼쳐왔다.

“이쪽이야.” 레아가 앞장섰다.
그들은 거대한 창고 내부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 곡식 자루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곡식 자루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용은, 제국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카인의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치솟았다. 이 모든 것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것이었어야 했다. 제국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었다.

“폭약 설치는 B-3 구역, 중앙 지지대와 남서쪽 벽면에 집중한다.” 카인이 지시했다. “진동폭탄이니 과도한 소음은 내지 마라.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대원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낭에서 소형 폭약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훈련된 전문가들답게 말없이 움직였다.
카인은 망원경으로 내부를 살피며 혹시 모를 변수를 확인했다. 제국군의 감시망은 허술한 듯 보였지만, 늘 예상치 못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외침이 창고의 고요를 갈랐다.
카인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어디서 들린 거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이 아니었다. 최소 두 명 이상이었다.
“젠장, 발각됐다!” 레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단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뭐지? 뭔가 움직였다!”
경비병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들의 랜턴 불빛이 어둠 속을 헤집으며 카인 일행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폭약 설치를 서둘러! 놈들을 막아!” 카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등 뒤에서 소형 석궁을 뽑아 들었다. 전생의 지식으로 개량한 특수 석궁이었다. 조용하고 치명적이었다.

불빛이 가까워지면서, 투박한 제국군 갑옷을 입은 경비병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카인 일행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반란군이다! 침입자다!”
한 명이 외치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카인은 망설임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갔다.
‘퍽!’
도끼를 치켜들던 병사의 목에 정확히 박혔다. 그는 신음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런 개자식들이!” 남은 한 명의 병사가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는 숙련된 병사였다. 쓰러진 동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레아가 더 빨랐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움직여 병사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쉬익!’ ‘퍽!’
단검이 병사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병사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놈들이 지원군을 부를 거야! 서둘러!” 레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카인은 대원들을 돌아봤다. 두 명의 대원이 이미 마지막 폭약을 설치하고 있었다.
“젠장, 예상보다 빨랐다!”
창고 저편에서 무수히 많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랜턴 불빛이 창고 안을 마치 거대한 눈처럼 비추기 시작했다.

“돌격! 침입자를 섬멸하라!”
수십 명의 제국군 병사들이 창고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무장하고, 전투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이빨들이 먹이를 노리듯, 흉악한 기세를 뿜어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카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 내부 정보가 새어나갔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카인님! 폭약 설치 완료했습니다!” 한 대원이 외쳤다.
“좋아! 기폭 장치 가동 준비!”
“하지만…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탈출이…!” 레아가 절규하듯 외쳤다.
이미 창고 출구는 제국군으로 가득 막혀 있었다. 사방에서 칼날과 창이 번뜩였고, 석궁의 시위가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마치 덫에 걸린 쥐 신세였다.
“젠장… 함정인가!” 카인의 눈에 절망감이 스쳤다.

“카인님! 저쪽이에요! 벽에 작은 틈이 있어요!”
갑자기 한 대원이 다급하게 외치며 창고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빗물에 젖어 희미하게 보이는, 마치 부서진 벽돌 사이의 작은 구멍 같은 것이 보였다.
“레아! 폭파 장치 가동! 30초!” 카인이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레아가 기폭 장치에 손을 가져갔다.

“총공격!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제국군 지휘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수십 개의 화살이 카인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산개!” 카인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그들의 임무는 폭파였다. 살아서 나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탈칵!’
레아가 기폭 장치를 가동했다.
“카운트다운 시작! 모두 저쪽으로!”
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구멍을 향해 달려갔다. 뒤에서는 제국군 병사들이 칼을 휘두르며 쫓아왔다.

카인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창고는 이제 제국군으로 가득 찼다. 이대로 폭발하면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남은 시간 10초! 빨리!” 레아의 목소리가 터질 듯이 외쳤다.
카인이 구멍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쿠구구구구궁!’
창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돌벽에 균열이 가고, 천장에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빨리!”

카인은 구멍 밖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그의 뒤로 대원들이 하나둘씩 이어 나왔다.
그들이 빠져나오자마자, ‘콰아아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창고의 거대한 벽이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화염과 함께 엄청난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빗물과 흙먼지, 그리고 불꽃이 뒤섞여 혼돈의 아우성을 토해냈다.
제국의 심장부에 정확히 꽂힌 비수였다.
수많은 제국군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성공했다…!” 한 대원이 감격에 겨워 외쳤다.
카인은 헐떡이며 무너진 창고를 바라봤다.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런…!” 레아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카인의 시선이 레아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창고 건물 뒤편에서, 거대한 제국군 기마 부대가 어둠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고, 수십 개의 횃불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치 먹이를 찾아 나선 굶주린 이빨들처럼.
그들의 눈앞에는 이미 완벽하게 포위망을 형성한, 거대한 제국의 이빨들이 있었다.

“젠장… 이건…!” 카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의 고독한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