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강민은 낡은 창고의 삐걱이는 철문 안으로 몸을 숙여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녹슨 금속의 비릿한 향이 코를 찔렀다. 바깥은 여전히 잿빛 하늘 아래 얼어붙은 시간처럼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섬뜩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의 잔해는 마치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앙상하게 솟아 있었다. 며칠째 이어진 수색은 빈손이었다. 식량도, 쓸만한 부품도, 심지어 고철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그와 그녀만의 은밀한 장소였다. 아무도 찾지 못할, 버려진 구역의 가장 깊은 곳.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는 불안한 심장박동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엘라.”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침묵만이 되돌아왔다. 혹시 오지 않은 걸까.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걸까.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약속을 지켰다. 맹렬한 야수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약속에 대한 경외심을 품은 존재.

그때였다. 창고의 가장 깊숙한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움직임과 함께 어둠이 갈라지듯 형체가 나타났다. 그녀였다. 엘라.

그녀의 몸은 매끄러운 짙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길고 유연한 팔다리는 인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특히 밤하늘처럼 깊은 푸른색을 띠는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강민을 응시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끔찍한 괴물이라며 비명을 지를 모습일 터였다. 하지만 강민에게는 그 어떤 인간의 미모보다도 매혹적이었다.

“늦었어, 강민.”

나지막하고 약간 거친 목소리였다. 언어가 달랐지만, 그녀의 종족인 ‘아레스족’ 특유의 염력(念力)을 통한 공명이 강민의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그는 그녀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했고, 그녀 또한 그를 통해 인간의 언어를 익히고 있었다.

“미안하다. 바깥이 좀… 평소보다 더 위험했어. 정찰조가 평소보다 깊게 들어왔더군.”

그의 말에 엘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푸른빛이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을 강민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 변화를 나타내는 미묘한 신호였다.

“인간들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다니는 건가.”

“늘 그랬지. 그들에겐 우리가 역병이자 재앙이니까.”

강민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이 열리고, 인류는 무너졌다. 그리고 땅 밑에서, 혹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듯한 아레스족이 나타났다. 그들은 뛰어난 지능과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지녔고, 인간의 생존 구역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인간과 아레스족은 공존할 수 없는 숙명적 적이었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그와 엘라는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강민은 부상당한 그녀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반격 대신 기묘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강민은 그녀를 살려주었다. 그 후로 몇 번의 우연한 만남과, 몇 번의 목숨을 건 위기를 함께 넘기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금지된 감정을 품게 되었다.

강민은 엘라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비늘 덮인 손을 잡자, 차갑지만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 찾았어.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어. 다음 주 정찰조는 더 멀리 나가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당분간은 못 볼 수도 있다.”

엘라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몸을 감싼 비늘의 무늬가 빠르게 깜빡였다. 그녀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안 돼. 혼자 가지 마. 인간들은… 너를 이용하려 할 거야. 우리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모두가 굶고 있어. 나라도 나서야 해.”

“내가…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내 힘으로….”

“안 돼, 엘라. 절대 안 돼. 네가 인간들에게 노출되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 그들은 널 죽이려 할 거야. 나도… 나도 너를 지킬 수 없을 거야.”

강민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너무나 강했지만, 인간들은 집요하고 잔혹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파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아레스족에 대한 증오는 이 폐허가 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고한 감정이었다.

엘라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과 함께 어떤 결의가 스치는 것을 강민은 보았다.

“그러면… 나도 혼자 가지 않을게.”

그녀의 말에 강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야? 너….”

그때였다. 창고 바깥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명. 낡은 철문 너머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누군가 손전등을 든 채 창고를 수색하고 있었다.

강민과 엘라는 동시에 몸을 굳혔다. 엘라의 비늘 무늬가 마치 경고처럼 맹렬하게 점멸했다.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강민은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적을 감지하는 아레스족 특유의 반응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내, 찢어진 철망 사이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은 아무것도 없나! 빌어먹을, 오늘은 또 꽝이냐고!”

“아니다! 저 안쪽이다! 뭔가 움직이는 걸 봤어!”

젠장. 들켰다.

강민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엘라와 함께 이곳에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들의 관계가 노출되는 건 곧 파멸을 의미했다. 그는 엘라의 손을 잡고 창고의 가장 깊숙한 곳, 무너진 벽 틈새를 향해 끌었다. 그곳은 좁고 어두웠지만, 잠시 숨을 곳은 될 수 있었다.

“조용히 해. 절대 소리 내지 마.”

강민은 속삭였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푸른 눈은 여전히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강민의 눈을 보며 겨우 진정하는 듯했다.

밖에서는 철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창고에 뭘 숨겨뒀다는 거야! 분명 뭔가 움직였어!”

몇몇 발소리가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손전등 빛이 어둠을 가르며 주변을 탐색했다. 빛줄기가 그들이 숨어 있는 벽 틈새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강민은 엘라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최대한 가렸다. 혹시라도 그녀의 비늘이 반사되어 빛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 잡힌 엘라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었다. 그녀는 언제든 달려들어 저들을 갈가리 찢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민은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손을 더욱 꽉 붙들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쥐새끼라도 본 거냐?”

“아니! 확실히… 저기, 저 벽 뒤에…!”

한 남자가 그들이 숨어 있는 벽 틈새를 향해 손전등을 비추며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점점 더 커졌다. 강민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대로 들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엘라의 비늘 무늬가 다시 격렬하게 점멸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싸울 준비를 마친 맹수와 같았다. 하지만 강민의 눈빛이 ‘멈춰’라고 외치고 있었다.

남자가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 그의 부츠가 흙먼지 섞인 바닥을 짓밟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바로 그 순간, 창고 깊숙한 곳에서, 쥐가 무언가를 건드린 듯 ‘쨍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젠장, 저쪽인가! 이리 와봐!”

남자는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방향을 틀어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다른 동료들의 발소리도 그 뒤를 따랐다.

강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들키지 않았다. 간신히.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엘라가 갑자기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 저편, 그들이 들어왔던 철문 쪽을 응시했다.

“엘라, 무슨 일이야?”

강민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섞였다.

그녀의 온몸에서 비늘 무늬가 마치 경보처럼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엘라는 강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혼란과 함께 깊은 공포를 담고 있었다.

“무언가… 와.”

그녀의 목소리가 강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레스족… 동족의 기운이야. 그것도… 아주 많아.”

강민의 심장이 다시 쿵 떨어졌다. 아레스족. 그들의 정찰대가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것도 ‘아주 많이’?

이곳은 인간들의 영역이었다. 아레스족이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인간 정찰조와 엘라가 동시에 감지할 정도라면…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엘라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그녀는 창고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강렬하게 빛나는 비늘이 어둠 속에서 푸른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엘라! 안 돼! 위험해!”

강민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녀는 이미 창고의 입구, 찢어진 철문 앞으로 다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창고 바깥에서 또 다른 거대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이 울리는 듯한 진동. 인간 정찰조가 쫓던 쥐새끼 따위가 아니었다. 묵직하고, 위협적인, 거대한 존재의 발소리.

굉음과 함께 철문이 박살 났다.

강민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찢겨 나간 철문 너머로,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라의 비늘은 마치 경고등처럼 미친 듯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거대한, 비늘 덮인 존재. 엘라와 같은 아레스족이었지만, 훨씬 거대하고 맹렬해 보이는 육체. 그들의 눈은 핏빛으로 번뜩였고, 그들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무리 속에서, 한 명의 아레스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존재는 엘라와 거의 흡사한 체구를 지녔지만, 그의 비늘은 더욱 어둡고 깊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는, 아레스족의 지도자 계급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 빛을 띠는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검은 비늘의 아레스족은 엘라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짓은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잃어버린 것을 찾은 듯한 간절함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명령을 담고 있었다.

엘라의 푸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강민이 있는 어둠 속을 한 번, 그리고 검은 비늘의 아레스족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서 그녀의 비늘은 더욱 혼란스러운 빛을 발하며 요동쳤다.

강민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엘라가 그들에게 돌아가려 한다면… 아니, 저들이 그녀를 데려간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엘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 폐허의 적막 속에 파묻혔다.

하지만 엘라는 그 소리를 들은 듯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강민에게로 향했다. 그 푸른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비늘 무늬가 갑자기 맹렬한 붉은빛으로 변하며 폭발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강렬한 분노와 거부의 신호.

검은 비늘의 아레스족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의 손짓이 더욱 강압적으로 변했다.

‘선택해라, 엘라.’

강민의 머릿속에 그들의 음성이 공명하는 듯했다.

엘라는 서서히 몸을 돌려, 강민이 숨어 있는 어둠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녀의 붉은 비늘은 여전히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너무나 작고, 너무나 느렸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거대한 아레스족 무리 중 하나가 순식간에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맹렬한 기세로.

거대한 발소리가 창고 바깥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인간 정찰조의 비명과 함께였다. 두 종족의 전쟁이, 그들의 은밀한 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엘라는 붉게 타오르는 눈으로 강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강민.’

강민의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전신을 덮쳤다. 이 금지된 사랑은, 결국 파멸로 치닫는 것일까.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은 무력하게 허공을 더듬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