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현 마법학원, 그곳은 언제나 고즈넉한 평화와 고풍스러운 마법의 향기로 가득했다. 적어도 낮에는 그랬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학원의 모든 건물은 검은 실루엣으로 변했고, 기숙사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이곳이 살아있는 공간임을 알렸다.
“이안,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야?”
수아의 목소리는 평소의 단호함과는 달리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손에 든 작은 마력등을 애써 가리고 있었다. 우리 둘은 학원 본관 깊숙한 곳,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는 오래된 도서관의 낡은 서가 뒤에 숨어 있었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괜찮을 리가 없지, 수아. 그래서 더 재밌는 거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우리가 들으려 하는 건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학원 설립 이래 내려오는 금기, 심지어는 교수님들조차 언급하길 꺼리는 ‘지하의 어둠’에 대한 이야기였다.
“재미? 이건 재미가 아니라 미친 짓이야. 우리가 이러는 거 들키면 최소 정학이야, 이안. 졸업이 코앞인데!”
수아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 호기심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마법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에 대한 강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발견한 낡은 기록은 이 도서관 서가 뒤에 숨겨진 비밀 통로에 대해 암시하고 있었다. ‘망각된 자들의 입구’라는 섬뜩한 이름과 함께.
나는 서가 맨 아래 칸의 낡은 책들을 하나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손끝에 거미줄이 엉겨 붙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내 손가락이 낡은 목판 뒤에 숨겨진 차가운 철제 손잡이에 닿았다.
“찾았어.”
나는 속삭였다. 수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녹슨 철제 손잡이를 비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가 뒷부분이 천천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어둠이 우리를 삼키려는 듯 입을 벌렸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뻗어 있었다. 우리는 마력등을 밝히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오래된 석재 계단은 습기를 머금어 미끄러웠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름 끼치는 물방울 소리가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점점 더 추워져, 이안.”
수아는 몸을 웅크렸다. 차가운 공기는 단순한 냉기가 아니라, 마치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불길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내려갔을까,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작은 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철문은 붉게 녹슬어 있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이 안에 갇힌 것을 영원히 봉인하려는 듯, 문자의 필획마다 강렬한 마력이 서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문에 대었다. 차가웠다. 마치 수백 년간 아무도 만지지 않은 듯한 서늘함. 문자의 마력을 분석하려는 찰나, 문틈 사이에서 미세한 틈이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톱으로 틈을 벌려보려 했다. 그때 수아가 내 팔을 잡았다.
“잠깐만, 이안. 저 문… 저 문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수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녀의 눈은 겁에 질린 채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문틈 사이,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둠 자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그냥 오래된 마법의 잔류 진동일 거야.”
나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문틈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때였다. 문틈 너머의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끔찍한 울림이 들려왔다. 그것은 비명이라기보다는… 절규와 고통, 그리고 무언가 억눌린 존재의 몸부림이 한데 섞인 불협화음이었다. 마치 수많은 영혼이 동시에 고통받는 듯한.
수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나 역시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한 소문이나 마법적 장치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저 안에 갇혀 있었다.
울림은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고,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사이, 아주 미세하게 마력의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마치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마력을 빼앗기며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이건… 사람이 아니야.” 수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었던 것이겠지.”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 소리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나는 수아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 발걸음을 서둘러 계단을 다시 오르려는데, 철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섬뜩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크고, 더욱 격렬했다. 그리고 그 울림과 함께, 문에 새겨진 고대 문자에서 붉은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봉인이 깨지려는 듯, 마력이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빨리! 이안, 빨리!”
수아가 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고, 우리의 심장을 조여왔다. 율현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것은 단순한 고대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아니, 고통받고 있는 존재였다.
우리가 서가 뒤 비밀 통로를 거의 다 올라왔을 때였다. 발밑에서,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쿠웅!’ 하고 울려 퍼졌다. 학원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진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연이어 ‘콰콰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진동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들었다.
무언가가, 거대한 존재가, 봉인된 문을 부수고 나오는 듯한, 철문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자유를 갈구하는* 듯한, 끔찍한 웃음소리를.
학원의 평화는 깨졌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소문의 목격자가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어둠이, 이제 지상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