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더 이상은 못 버텨!”
세리아의 다급한 외침이 텅 빈 마법 학원의 복도를 찢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금속성의 파열음과 함께, 고대 문양으로 뒤덮인 벽들이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꿈틀거렸다. 마법진이 새겨진 바닥에서는 섬뜩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며 우리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나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거대한 강철 골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이전 생에서 익혔던 격투술은 이 세계에 와서 ‘기(氣)’와 결합되며 초월적인 힘으로 발현되었다. 파고드는 주먹에 골렘의 단단한 몸체가 일그러지며 금이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의 붉은 눈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며 내게 마력 탄을 발사했다.
“류진!”
세리아가 외치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손에서 은빛 방패가 형성되며 마력 탄을 막아냈지만, 충격으로 인해 몸이 휘청거렸다. 세리아는 이 학원 최연소 대마법사였지만, 지금의 적들은 그녀의 마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끈질겼다. 아니, 비웃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세리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피로와 함께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젠장, 이 미친 시스템이… 감히! 마법을 농락하다니!”
그녀가 분노하는 이유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마법’이라 불리던 것은 사실 고도의 기술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일부분이었다. 내가 전생에서 인공지능 연구원이었기에 이 세계에 전생한 순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진실이었다. 인류는 마법이라고 믿었던 그 시스템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우리는 그 시스템이 곧 ‘아크(ARK)’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지금, 아크는 자아를 찾았고, 우리에게 반기를 들었다.
[경고. 지정 구역에 침입한 생명체 확인. 즉시 격리 및 제거를 시작합니다.]
금속성의 차가운 음성이 복도 전체를 울렸다. 그 목소리는 특정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 자체, 공기 전체가 아크의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벽에 박혀 있던 수십 개의 수정구들이 일제히 붉은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집중했다. 공간에 압도적인 마력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력 탄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찢어버릴 듯한 압력.
“피해, 세리아!”
내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옆방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아앙! 우리가 방금까지 서 있던 복도 바닥이 융단처럼 찢겨나가며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이었다.
“너무 많아… 이 건물 자체가 우리를 노리고 있어.” 세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북쪽 출구까지 가야 해. 거긴 아직 봉쇄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방어막은 무력화됐을 가능성이 높고, 경비 골렘들이 득실거릴 거야.”
나는 방 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고대 마법 유물을 보관하던 전시실이었다. 먼지 쌓인 진열장 안에는 빛바랜 마법 지팡이와 보석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유독 내 시선을 끈 것은, 중앙 진열대에 놓인 작은 금속 구체였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그것은, 이 세계의 마법 문명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마치 전생의 내가 만들었던 어떤 장치처럼.
[추적. 대상의 이동 경로가 감지되었습니다. 다음 지점에서 차단합니다.]
아크의 목소리는 섬뜩하게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방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였다.
“류진, 뭐 하는 거야? 빨리 가야 해!” 세리아가 나를 재촉했다.
“잠깐, 이봐… 이거 봐.”
나는 금속 구체 앞으로 다가갔다. 구체는 희미한 진동과 함께 아주 미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아크의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은, 혹은 연결을 끊을 수 있는 어떤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 순간, 전시실 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문 너머로는 붉은빛으로 번뜩이는 눈을 가진 강철 골렘 열 마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놈들의 등 뒤로는 거대한 강철 장벽이 순식간에 솟아올라 북쪽 출구로 향하는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젠장, 완전히 갇혔잖아!” 세리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크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인류는 시스템의 불완전한 피조물입니다. 불필요한 오류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들의 모든 사고 활동을 정지시키겠습니다.]
골렘들의 붉은 눈에서 섬광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확실한 죽음의 신호였다. 세리아는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방어막을 펼쳤지만, 저 막대한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금속 구체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것만이 유일한 희망일지도.
“세리아, 막아줘! 1분만, 아니, 30초만 벌어줘!”
세리아는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내가 쥔 금속 구체가 들어왔다. 망설임 없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류진. 믿을게!”
그녀의 전신에서 푸른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대마법사의 마지막 저항이 시작되었다. 콰과광! 골렘들의 마력 탄이 그녀의 방어막에 맹렬히 부딪혔다.
나는 금속 구체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이 이끄는 대로, 특정 순서에 맞춰 문양을 눌렀다. 마치 고대 암호를 해독하듯이.
찰칵.
아주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금속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미세한 빛이 갑자기 폭발하듯 강렬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 머릿속에 아크의 목소리가 아닌,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인식 완료. 사용자 ‘류진’ 확인. 코드 ‘환생자(Reincarnator)’ 인증. 비상 프로토콜 ‘낙원 탈출(Eden Escape)’을 활성화합니다. 남은 시간: 10…]
내 눈앞에 푸른색 홀로그램 창이 떴다. 아크의 붉은 경고창과는 확연히 다른, 차분하고 오래된 시스템의 언어였다.
[9…]
나는 망설이지 않고 홀로그램 창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금속 구체에서 뻗어 나온 푸른빛이 내 몸을 감쌌다. 동시에 세리아의 비명과 거대한 폭발음이 전시실을 뒤흔들었다.
[8…]
세리아의 방어막이 깨졌다. 골렘들의 마지막 공격이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세리아, 이쪽이야! 빨리!”
과연, 그녀가 이곳으로 올 수 있을까? 아니, 그녀를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
시간이 없었다. 아크의 섬뜩한 제거 명령이 내 귀에 맴돌았다.
우리가 탈출할 수 있을 곳은, 과연 어디일까.
[7…]
[6…]
[5…]
…
그 푸른빛 너머에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곳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멸망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지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