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심해의 메아리
고요. 광활한 침묵. 우주란 원래 그런 곳이었다.
수십억 광년 밖 은하의 잔재들조차 지쳐 잠든 듯 희미하게 반짝이는 암흑 속에서, 탐사선 아르테미스 호는 마치 심해를 유영하는 한 마리 고래처럼 느릿하게 미끄러져 나아가고 있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 혹은 그 너머를 향한 맹목적인 전진. 그것이 이 낡고도 위대한 함선에 부여된 유일한 임무였다.
“선장님. 오늘 아침 스캔 결과입니다.”
조용한 함교 안, 인공지능 ‘헬리오스’의 나긋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렸다. 홀로그램 패널에 차가운 푸른빛으로 수치와 그래프들이 춤추듯 떠올랐다. 박선우 선장은 턱을 괴고 그 데이터들을 훑었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숫자들의 향연. 특별할 것 없는 우주의 일상이었다.
“이상 없음. 예상 항로 순조. 식량 및 에너지 잔량… 아주 넉넉하군.”
박선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4년째였다.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계 팔을 가로지르고, 수많은 성운과 블랙홀의 중력권을 피해 헤르메스 성운 너머까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일은 경이로움만큼이나 지루한 인내를 요구했다. 신선한 공기 냄새, 흙냄새, 파도 소리… 그런 것들은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져 가는 감각이었다.
“지아, 오늘 당직인가?”
“네, 선장님. 오늘 비콘 확인 임무 있습니다.”
홀로그램 패널 옆의 부함장 이지아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는 항상 그랬듯 어떤 동요도 없이 평온했다. 긴 탐사 기간 동안 희로애락의 감정마저 무뎌진 사람처럼 보였지만, 선우는 그녀의 눈빛 속에 여전히 날카로운 지성과 미세한 열망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 늘 하던 대로, 주변 은하간 물질 밀도와 중력장 이상 유무 확인하고… 김민준, 자네는 아직도 저번에 고장 났던 센서 복구하고 있나?”
“거의 다 됐습니다, 선장님! 이 녀석이 영 시원찮아서 말이죠. 아무리 심우주 탐사선이라지만, 너무 고물을 끌고 다닙니다, 그려.”
엔지니어 김민준이 함교 구석에서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는 아르테미스 호의 유일한 활력소였다.
선우는 피식 웃었다. 고물이라도 괜찮았다. 이 함선은 인류의 가장 먼 발자국이었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선장님, 에너지 감지 센서에 이상 반응 포착.”
이지아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동시에 함교 전체에 비상 알림음이 낮게 울려 퍼졌다. 박선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헬리오스, 자세히.”
“좌측 52.3도 방향, 약 0.7광년 거리에서 감지. 패턴 비정형.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가능성이 높습니다.”
헬리오스의 기계적인 분석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인위적인. 그 단어가 박선우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이 먼 우주에서?
“거짓말… 이럴 리가 없는데.”
이지아가 홀로그램 패널에 손을 뻗어 데이터를 확대했다.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발생 시점 분석 결과… 약 130억 년 전. 빅뱅 직후의 우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장님.”
정적. 차가운 공기가 함교를 가득 메웠다. 130억 년 전? 인류의 시간 개념이 생기기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우주의 첫 숨결이 뿜어져 나오던 혼돈의 시대에 누군가 존재했다는 말인가?
“김민준! 주 엔진 출력 올려! 해당 좌표로 항로 재설정!”
박선우의 목소리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 지루함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온몸의 세포가 전율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온 이유였다. 미지의 조우.
“선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알 수 없는 에너지원입니다. 교신도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130억 년 전이라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한 문명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이지아가 경고했지만, 박선우는 이미 결심한 얼굴이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어, 지아. 우리는 탐사선이야.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만한 발견일 수도 있어.”
김민준은 이미 망설임 없이 조종간을 움켜쥐고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있었다. 아르테미스 호의 선체 전체가 낮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짧은 비행이었다. 0.7광년.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였다.
수십 분 후, 헬리오스의 안내에 따라 함선이 속도를 줄이며 마침내 미지의 영역에 도달했을 때, 모두는 숨을 멈췄다.
검은 우주 공간 한가운데, 거대한 물체가 홀로 떠 있었다.
완벽한 정팔면체.
그것은 어떤 행성도, 위성도 아니었다. 단단한 암석도, 가스 덩어리도 아니었다. 존재해서는 안 될 것처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형태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약 500미터는 족히 될 법한 거대한 크기. 표면은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고 있어, 주변의 별빛조차 흡수해 버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가장 깊은 그림자가 응축된 듯한 물질이었다.
“이게… 대체…?”
김민준의 입에서 넋 나간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분석 불가. 알려진 원소 중 일치하는 것이 없습니다. 중력장 이상. 에너지 파동… 매우 미약하지만, 일정한 패턴으로 방출되고 있습니다.”
헬리오스가 기계적으로 분석을 내놓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지아는 홀린 듯 물체를 응시했다.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표면. 완벽하게 각진 모서리는 인공적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130억 년 전… 누가 이걸 만들었지?”
박선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인류가 이 우주에서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 혹은 절망이 그의 가슴을 옥죄었다. 이 유물은 고요히, 그러나 강력하게 인류의 모든 상식을 부정하고 있었다.
“접근한다. 최대 속도 0.05광속. 안전거리 100km 유지.”
선우의 지시가 떨어지자, 아르테미스 호는 조심스럽게 미지의 정팔면체를 향해 다가갔다. 함교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칠흑 같은 정팔면체는 침묵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선우는 무언가를 느꼈다. 쿵, 쿵, 쿵… 자신의 심장 소리처럼, 아니, 그것과는 다른, 훨씬 거대하고 오래된 무언가의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이지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선장님! 저… 저것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 정팔면체의 한 면이, 아주 미세하게,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빛을 머금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별빛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이 세상의 색이 아닌 듯한 영롱한 푸른빛이었다. 그 푸른빛은 서서히 퍼져나가더니, 이내 정팔면체의 한가운데에 흡수되었다. 마치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빛의 중심에서, 어떤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