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천장을 가로지르는 불쾌한 형광등 불빛과 코를 찌르던 소독약 냄새였다. 한때 명석했던 두뇌를 잠식하던 혼탁한 의식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겨우 이 정도였나? 복잡한 사건의 실타래를 기어이 풀어내고야 말았던 집념은, 결국 나 자신을 미로 속으로 밀어 넣은 꼴이 되었는가?
그리고 모든 것이 암전(暗轉)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훨씬 작고 여렸다. 부드러운 린넨 이불이 가슴께를 덮고 있었고, 퀴퀴한 병원 냄새 대신 은은한 풀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창밖으로는 낯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웅장하게 고요를 깨트렸다.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목재 가구, 벽에 걸린 낯선 문양의 태피스트리,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이세계의 풍경. 아, 나는 죽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이름은 이안. 영주의 병약한 막내아들이라는 기막힌 설정이었다. 전생의 강진우는 특수수사팀의 에이스였지만, 이 이안이라는 아이는 겨우 열다섯 살, 게다가 늘 창백한 얼굴로 책만 파고드는 괴짜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긴, 열다섯 살짜리 몸에 서른 살의 베테랑 형사의 영혼이 들어앉았으니 괴짜 취급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전생의 내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법이나 신의 기적 같은 허황된 이야기들이 민담처럼 떠돌았고, 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논리와 이성보다는 미신과 본능이 지배하는 곳.
“도련님, 괜찮으세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머리칼을 뒤로 곱게 땋아 올린 어린 시녀가 들어섰다. 루나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그녀는 내 새 삶에서 가장 먼저 나를 돌봐준 사람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루나.”
루나는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여전히 얼굴이 창백하세요.”
“원래 이렇잖아.” 나는 피식 웃었다. 이안의 몸은 늘 약골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이 세계의 온갖 서적을 읽으며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지도를 통해 지형을 익히고, 역사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파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률과 관습에 대해 파고들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나 범죄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날 저녁, 성 전체가 들썩였다. 평소에는 고요하기 그지없던 영주성이 마치 거대한 벌집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급박한 발소리와 웅성거림, 이따금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외침들. 루나는 서둘러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려다 말고 뛰쳐나가버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안의 몸은 약했지만, 강진우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이 소란은 단순한 불길함이 아니었다. 혼란과 공포,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건의 냄새가 났다.
복도를 따라 나선 내게 루나가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련님! 위험해요! 방으로 돌아가세요!”
“무슨 일이야, 루나?”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로웬 경이… 로웬 경이 돌아가셨어요! 밀실에서…!”
밀실. 그 단어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전생에서 수없이 듣고 풀어냈던, 탐정 소설의 단골 소재이자 동시에 실제 범죄 현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함정. 내 심장이 간만에 활기차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루나를 지나쳐 소란의 근원지로 향했다. 루나는 내 뒤를 따르다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안 도련님의 고집을 꺾을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로웬 경은 이 성의 재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의 방은 영주 집무실과도 가까운, 성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구역에 있었다.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기사들과 하인들이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문이 안 열립니다! 안에서 잠겼습니다!” 한 기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쳤다.
“망치로 부숴버려!” 다른 기사가 지시했다.
쾅! 쾅! 쾅!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낡은 목재 문이 안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입에서 경악과 공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현장을 보았다.
로웬 경은 방 중앙의 서재 의자에 앉은 채였다. 그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고,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목에는 뚜렷한 졸린 흔적이 선명했다. 그의 옆에는 깨진 찻잔과 쏟아진 차가 흥건했다. 그러나 방 안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창문은 안에서 굳게 닫혀 있었고, 빗장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벽난로도 막혀 있었다.
완벽한 밀실 살인.
사람들은 술렁였다.
“악마의 짓이 분명해!”
“마녀가 저주를 건 거야!”
“로웬 경은 평소에도 이교도 같은 책을 읽지 않았던가!”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거구의 남자가 탁자를 내리쳤다. “닥쳐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경비는 어떻게 섰던가! 대체 누가 감히 로웬 경을 죽인 것이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혼란과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안의 작은 몸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현장의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테이블 위에는 양피지 문서 몇 장이 흐트러져 있었고, 펜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찻잔이 깨진 파편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벽난로의 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창문 빗장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손으로 억지로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 문이 부서진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밀실이라…’
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전생에서 수없이 많은 밀실 살인 사건을 접했고, 그 모든 사건의 완벽해 보이는 트릭 뒤에는 반드시 인간적인 허점이 숨겨져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운운하며 두려워했지만, 내게는 그저 흥미로운 도전일 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로웬 경의 시신에 고정했다. 목에 남은 짙은 자국. 그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자, 아주 미세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손톱 자국이 아니라, 무언가 날카로운 실 같은 것으로 조인 듯한 흔적. 그리고 그의 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잡으려 애쓴 듯한 자세였다.
“기사단장님.”
내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기사단장의 귀에 또렷이 박혔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늘 병약하여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이안 도련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모두를 잠시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안 도련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속히 방으로…!”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살인 도구는 아직 찾지 못했나 보군요.”
기사단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련님, 지금 무슨 말씀을…!”
“이 방 안에는 살인 도구가 없어요. 적어도, 당신들이 찾는 칼이나 독약은요.” 나는 시신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살인 도구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살인 후, 증거를 인멸한 것이겠지요.”
모두가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아직은 내 정체를 알 때가 아니지. 하지만 이 지루하고 평화로웠던 이세계의 삶이, 이제 막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로웬 경의 시신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밀실. 과연 이 세계에서는 어떤 트릭이 등장할까? 전생에서와 같은 물리적 트릭일까,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가?’
내 머릿속은 이미 수십 개의 가설을 세우고, 수백 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다.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죽음. 이 모든 것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거대한 퍼즐 같았다. 나는 이 세계에서, 다시 한번 강진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안 도련님, 물러서십시오!” 기사단장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로웬 경의 손에 꽉 쥐어져 있던 팔걸이의 미세한 흠집을 가리켰다. “로웬 경은 죽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어요.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저항이었겠지요. 그리고 동시에, 범인이 남긴 유일한 흔적일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내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기사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팔걸이를 응시했다.
나는 확신했다. 이 세계는 전생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는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 반드시 벗겨질 수 있는 법이니까.
시작되었다. 나의 이세계 탐정 생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