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279화: 강철혼의 비무, 천뢰와 아수라강

광활한 원형 경기장은 침묵과도 같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무사들이 격돌할 준비를 마치자, 수많은 시선들이 일제히 결전의 무대로 향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섬광을 흩뿌릴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이곳은, 천하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비무, ‘강철혼 비무대회’의 8강전이 벌어지는 전장이었다.

나는 조종석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조종간 위로 핏줄 선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내 몸과 혼이 되어버린 거대한 기체, ‘천뢰(天雷)’가 가벼운 진동과 함께 내 심장 박동에 맞춰 울렸다. 외장 곳곳에 박힌 상흔은 지난 격전의 흔적이었고, 그 상흔 위로 푸른 번개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오늘의 두 번째 경기는 천하제일문 소속의 류진 문주, 그리고 그의 기체 천뢰입니다! 맞서는 상대는… 무림의 이단아, 흑사혈교의 살혼랑! 그의 기체는 아수라강입니다!”

열기 어린 중계진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흑사혈교’. 이름만으로도 피 비린내가 풍기는 그들은, 무림의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오직 강함만을 추구하는 잔인한 집단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이번 강철혼 비무대회를 통해 천하의 판도를 뒤집는 것. 그리고 살혼랑은 그들의 첨병이었다.

내 시야에 상대의 기체가 들어왔다. ‘아수라강(阿修羅鋼)’. 붉고 검은 강철로 이루어진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귀 같았다. 등에 달린 네 개의 팔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무기가 들려 있었고, 앙상한 해골을 닮은 머리 부분에서는 섬뜩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내공으로 조종하는 꼭두각시처럼, 아수라강의 움직임은 기계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 숙련된 무인의 그것에 가까웠다.

“류진 문주… 살혼랑… 두 사람 모두 지난 경기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살혼랑의 아수라강은 ‘아수라파천무(阿修羅破天舞)’라는 독특한 무공으로 상대 기체를 문자 그대로 찢어발겼죠!”

중계진의 목소리에 경기장 전체가 술렁였다. 객석에서는 이미 일부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수라파천무는 조종사의 내공을 극대화하여 기체를 초고속 회전시키는 동시에 사방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기술이었다. 그 맹렬한 회전은 강철 방패마저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젠장….’

나는 무심코 욕지기를 내뱉었다. 천뢰의 메인 검인 ‘벽력검(霹靂劍)’을 꽉 쥐었다. 상대는 보통 강적이 아니었다. 놈은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 아수라강의 붉은 눈빛으로 천뢰를 쏘아보고 있었다.

“자, 그럼 강철혼 비무대회 8강전, 두 번째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굉음과 함께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징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수라강이 먼저 움직였다.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놈은 마치 그림자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네 개의 팔에 들린 무기들, 거대한 검, 창, 도끼, 그리고 사슬낫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미친…!”

나는 이를 악물고 천뢰를 조종했다. 천뢰는 내 의지에 따라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아수라강의 맹공을 피했다. 벽력검을 들어 아수라강의 창날을 쳐냈다. 쨍그랑! 둔탁한 금속음이 온몸을 울렸다. 엄청난 힘이었다. 내공이 조종간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흐하하하!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었나, 천하제일문의 애송이!”

살혼랑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내 통신망을 뚫고 들어왔다. 목소리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의 내공이 담긴 목소리는 단순히 음파가 아니었다. 기체 내부의 미세한 부품들을 흔들고, 조종사의 정신을 교란하려는 악독한 무공이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돼!’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뢰의 코어에서 푸른빛이 더욱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내공이 사지를 타고 흐르는 감각, 마치 내 몸이 거대한 강철 무사가 된 듯한 생생함이 느껴졌다.

“번개구름에 몸을 숨기고, 벼락처럼 쏘아낸다… 천뢰검법 제1식, 은뢰구름(隱雷拘雲)!”

쉬이이익!

천뢰의 외장 곳곳에서 푸른색 잔상이 피어났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아수라강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아수라강의 거대한 몸체는 혼란에 빠진 듯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살혼랑의 조종 실력은 분명 뛰어났지만, 내 천뢰검법은 움직임 그 자체로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콰앙!

천뢰가 아수라강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벽력검이 번개처럼 작렬하며 아수라강의 거대한 도끼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쇠붙이가 부러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아수라강의 도끼날이 두 동강 났다.

“크윽…!”

살혼랑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그는 도끼를 놓치고 비틀거렸다. 경기장 전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살혼랑은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건방진…! 네놈의 번개 따위가 내 아수라를 막을 수 있을 줄 아느냐!”

그의 비명과 함께 아수라강의 붉은 눈빛이 광적으로 번뜩였다. 파괴된 도끼의 잔해가 떨어져 나가는가 싶더니, 아수라강의 등 뒤에 달린 또 다른 팔이 기이한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 같았다. 붉은 빛을 뿜어내는 그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경기장 바닥을 후려쳤다.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설마… 혈마촉수(血魔觸手)?!”

중계진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마촉수는 흑사혈교의 비장의 무공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조종사의 생명력을 촉수에 주입하여 물리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정신력을 빨아들여 상대를 무력화하는 무시무시한 기술이었다.

콰아아앙! 콰드득!

혈마촉수들이 맹렬하게 천뢰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벽력검을 휘둘러 촉수들을 잘라냈지만,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끈질기게 다시 뻗어 나왔다. 촉수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 천뢰의 외장 곳곳을 부식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 시야에 경고등이 번쩍였다. 촉수들이 천뢰의 다리를 휘감고 기체의 움직임을 봉쇄하려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내공을 더욱 끌어올려 기체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러나 촉수들은 마치 거대한 뱀처럼 끈질기게 천뢰를 조여 왔다.

“끝이다, 애송이! 내 아수라에게 먹혀 사라져라!”

살혼랑의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아수라강의 혈마촉수가 천뢰의 코어 부분으로 맹렬하게 쇄도해 들어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단순한 기계 싸움이 아니야. 이건 내공의 대결. 혼의 대결이다!’

나는 조종간을 놓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의 모든 내공을, 나의 모든 의지를 한곳으로 집중했다. 천뢰의 코어에서 푸른 번개 문양이 더욱 격렬하게 빛났다. 마치 잠들어 있던 고대의 신수가 깨어나는 듯한 압도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천뢰검법 제3식, 광룡승천(狂龍昇天)!”

내 외침과 함께 천뢰의 온몸에서 푸른 번개가 용솟음쳤다. 휘감고 있던 혈마촉수들이 맹렬한 전류에 타들어 가며 굉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뢰는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용처럼, 모든 촉수를 끊어내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경기장은 침묵했다. 그 거대한 강철 무사가 마치 중력을 거스른 듯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자, 관중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수라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천뢰의 벽력검이 푸른 번개로 휘감겼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의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꿈틀거렸다.

“이것이… 천뢰검법의 진수다!”

나는 모든 힘을 실어 벽력검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땅으로, 거대한 번개의 검이 아수라강을 향해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번개와 강철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굉음이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시야가 온통 푸른 섬광으로 뒤덮였다. 엄청난 충격파에 경기장 바닥이 갈라지고, 객석에 앉아 있던 관중들은 무심코 눈을 가리거나 비명을 질렀다.

섬광이 걷히자, 연기가 자욱한 경기장 중앙에 두 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뢰는 비록 외장 곳곳이 손상되었지만,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그러나 아수라강은…

가슴 부분에 거대한 번개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 채,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개의 팔은 모두 너덜너덜하게 부러져 있었고, 붉게 빛나던 눈동자에서는 빛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침묵. 길고도 긴 침묵이 경기장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중계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리… 승자는 천하제일문의 류진 문주입니다! 천뢰검법 광룡승천으로 흑사혈교의 아수라강을 격파했습니다!”

우우우우우!!!

경기장은 이내 거대한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수많은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나 나는 그 환호성 속에서도 살혼랑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조종석에 쓰러진 채, 흐릿해진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크크… 애송이… 겨우 이 정도에… 기뻐하지 마라… 진짜는… 진짜 괴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수라강의 코어에서 마지막 스파크가 튀었고, 기체는 완전히 침묵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살혼랑의 말은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비무대회. 8강에서조차 이토록 잔인하고 강력한 상대와 마주해야 했다.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천뢰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음 상대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진짜 괴물’이란 대체 무엇일까.

내 손가락이 조종간 위에서 다시 한번 가늘게 떨렸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