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지하실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습기 머금은 벽에 핀 검푸른 곰팡이 냄새, 그리고 촛농과 오래된 종이, 알 수 없는 향내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민준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촛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벽의 낡은 부적들과 춤을 추듯 일렁였다.
핏기 없는 그의 얼굴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움푹 들어간 눈은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을 담고 있었다. 증오.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웠지만, 동시에 심연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증오.
테이블 위에는 해골 몇 점과 말라붙은 풀뿌리들, 그리고 깨진 거울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붉고 끈적이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액체 속에는 가느다란 은빛 촉수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민준은 손가락으로 병을 천천히 쓸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닿자, 그의 입술이 희미하게 비틀렸다.
“우진….” 그의 목소리는 으스러지는 돌멩이처럼 거칠었다. “네가 빼앗아 간 모든 것들을, 이제 되찾을 시간이야. 네가 나에게서 앗아간 나의 삶, 나의 연구, 나의 영혼… 모두 다.”
3년 전의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진은 웃었다. 환하게, 순진하게 웃으며 민준의 손에서 그 낡은 책을 가져갔다. ‘민준아, 이거 정말 대단해! 우리 인생이 바뀔 거야!’ 그의 눈은 욕망으로 번뜩였지만, 그때의 민준은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랐기에 그 반짝임을 미처 읽지 못했다. 그 책 속에는 금기된 지식의 조각이, 차원을 뒤트는 힘의 비밀이 담겨 있었다. 민준은 그 책을 수년간 연구했고, 마지막 조각을 맞춰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그 지식을 가로챘고, 민준을 이용해 더 깊은 심연으로 발을 들였다. 민준은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 재산, 심지어는 정신까지. 우진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림자 속에 버려졌다.
민준은 깨진 거울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거울 표면에 비쳤다. 그는 그것을 들고 촛불에 비추었다. 거울 조각 너머로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 또 다른 형상이 보였다. 거대한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타오르며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준비는 끝났다.” 민준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붉은 액체가 담긴 병으로 뻗었다. 마개를 열자, 비릿하고 알 수 없는 금속 냄새가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액체 속의 촉수들이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이세계의 피였다. 오래된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차원의 틈새를 열고 부정한 존재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물질. 민준은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테이블에 그려진 기묘한 문양 위로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붉은 액체가 검은 문양 위를 흐르자, 문양에서 희미한 빛이 일었다. 마치 살아있는 신경망처럼, 빛이 문양을 따라 퍼져나갔다. 지하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민준은 느꼈다. 촛불이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푸른색으로 변색되었다.
“첫 번째 서약.” 민준의 목소리는 주문처럼 낮게 울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 썩어가는 나뭇가지의 일부였지만, 그 끝에는 날카로운 송곳니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민준은 그것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는 그 피를 붉은 액체가 흐르는 문양 위에 덧발랐다.
그 순간, 지하실 전체가 울렸다. 벽의 부적들이 떨리고, 바닥의 흙먼지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촛불의 푸른 불꽃은 괴물처럼 춤을 추었고, 차가운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민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문양에서 솟아오른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빛 속에서 어렴풋한 형태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수백 개의 눈이 동시에 번쩍이는 듯한 섬광이 공간을 채웠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그림자였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응시하는 듯한 불길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우진…”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네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돌려줄 차례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서서히, 산산조각 낼 거야.”
그 그림자 같은 형태가 민준의 말에 응답하듯, 더욱 깊고 끈적이는 어둠을 토해냈다. 어둠은 지하실의 모든 빛을 삼키며 퍼져나갔다. 민준의 눈앞에서, 깨진 거울 조각들이 하나둘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울 조각들은 섬뜩한 속도로 회전하며, 우진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의 호화로운 사무실, 그가 앉아 있는 최고급 의자, 그의 웃는 얼굴. 그리고 그 거울 속 우진의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울 속 우진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그의 심장 부근에 희미한 그림자 같은 얼룩이 번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진은 아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균열은 너무나도 미세하고, 그 그림자는 너무나도 희미했기에. 하지만 민준은 알았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지하실 전체를 채운 어둠 속에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민준의 웃음소리였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의 울림이 섞여 있었다. 섬뜩하고, 광기 어린 웃음소리였다.
***
**동시에, 서울의 최고층 빌딩, 펜트하우스.**
우진은 여유롭게 와인 잔을 흔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도시의 야경은 그의 성공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방금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켰고, 그의 기업은 또다시 한 단계 도약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찮은 것들…” 우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민준의 마지막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초라하고,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얼굴. 그래, 그는 결국 그릇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감히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려 했다니.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서 퍼지는 진한 포도 향과 씁쓸한 여운이 좋았다. 그 순간, 이유 모를 한기가 그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가? 그러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우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저 피곤해서일 것이다. 너무 많은 성공을 거두다 보니, 가끔 이런 잡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와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펜트하우스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들이 한순간 일렁이는 것을 우진은 보았다. 마치 누군가 멀리서 도시의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모든 빛이 찰나의 순간 동안 흔들렸다. 착각인가?
그는 눈을 비볐다. 다시 창밖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도시의 불빛은 변함없이 반짝였고, 그의 심장은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해졌군.” 우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와인 잔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심장 부근에,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났다는 것을. 그 점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퍼져나갈 씨앗이었다. 그의 성공의 빛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깊고 선명하게 뿌리를 내릴 터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이제 막 시작된 심연의 첫 번째 울림에 불과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