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장: 균열

강무진은 오늘도 지하철 창밖을 무심하게 응시했다. 회색빛 도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빌딩 숲, 도로 위를 빼곡히 메운 차량들,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은 사람들.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지루한 풍경이었다. 그는 딱 이런 평범함을 원했다. 십 년 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산골짜기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지만, 이젠 그저 숨 쉬는 일상일 뿐이었다. 가슴 속에 끓어 넘치던 강호의 열정은 도시의 소음과 매연 속에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역에 내려 인파에 휩쓸려 회사 건물로 향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혔다. 15층, 찌꺼기 처리팀 사무실. 그의 직함은 세상의 모든 비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강 대리. 보고서를 검토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점심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것. 그것이 강무진의 일상이었다. 평화로웠고, 동시에 숨 막혔다.

오후 3시, 나른한 춘곤증이 찾아올 무렵,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액정에는 아무런 정보도 뜨지 않았다. 무진은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무진 씨 되십니까?”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딱딱하고 무감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네, 제가 강무진입니다만.”

“강무진 씨께 전달할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계신 곳으로 10분 내에 도착할 겁니다.”

그가 대꾸할 틈도 없이 전화는 뚝 끊겼다. 스팸인가? 보이스피싱? 하지만 어쩐지 섬뜩한 예감이 등골을 스쳤다. 평범한 세상의 잡음과는 다른, 익숙하면서도 잊고 싶었던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다.

정말 10분이 채 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는 흡사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걸음걸이에는 미동조차 없어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무진에게로 향했다. 그는 무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작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상자는 낡은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표면에 복잡하고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 도시의 사무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물건이었다.

남자는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다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동료들은 그저 택배 기사려니 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배달원이 들어와 물건을 놓고 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진은 알 수 있었다. 저 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느껴졌던 섬뜩한 기운. 그것은 수십 년 전,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의 냄새였다. 기척조차 감추고 움직이는 발걸음,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묘한 압력. 틀림없었다.

무진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낡은 나무 상자 안에는 한 장의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종이가 아닌, 얇게 가공된 비단 같은 것이었다. 수백 년 된 고서에서나 날 법한 묵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는 망설이다 두루마리를 펼쳤다.

펼치자마자, 비단에 적힌 고풍스러운 필체의 글자들이 무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강무진 군에게.`

`천 년의 맹약이 깨지고, 대륙의 균형이 흔들리니 혼돈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일곱 개의 문파, 세 개의 세가, 그리고 은거한 고수들이여.`
`오직 천하의 명운을 건 비무 대회만이 이 혼돈을 잠재울 유일한 길이다.`
`일곱 번째 해,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날.`
`밤하늘에 붉은 별이 뜨는 순간, 감춘 진실이 드러나리라.`
`결전의 장소: 북한산 봉우리가 숨겨진 옛 도량.`
`초대받은 자는 지체 없이 응하라. 응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의 운명을 저버리는 것과 같으리라.`

무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 년의 맹약’, ‘대륙의 균형’, ‘혼돈의 그림자’. 그리고 ‘비무 대회’.
잊으려 애썼던 단어들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젠 정말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겨우 얻어낸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두루마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비단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망할.”

낮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알 리 없었다. 이 도시 한복판에서, 수십,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비밀스러운 역사가 다시금 꿈틀대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삶에서 벗어나,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함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에게 허락된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천하의 운명을 건 비무 대회라니.
피 냄새 나는 싸움, 권력에 눈먼 탐욕, 기만과 배신이 난무하는 그 지긋지긋한 세계로 다시 발을 들여놓으라는 소리였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 초대가 그저 개인적인 불운이라면 무시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대륙의 균형’, ‘천 년의 맹약’ 같은 거창한 단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맹약의 일부로서, 그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는 이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무진은 두루마리를 다시 돌돌 말았다. 상자를 닫고,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것이 다시 평범해질까?
그는 피식 웃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평범함은 끝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더 이상 이 사무실에 앉아있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십 년간 덮어두었던 낡은 무복을 꺼내고, 녹슬었을지도 모를 검을 손질해야 했다.
도시의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깨어나고 있음을, 강무진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십 년 전, 그가 도망쳐 나오려 했던 바로 그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