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잔별호의 낡은 선체 주위로 끝없이 부유하는 잔해와 죽은 행성들의 파편,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사능 먼지들이 가득했다. 푸른 별과 붉은 성운이 어우러지던 옛날의 화려한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지금은 그저 검은 먹물이 번진 듯한 어둠과 가끔 섬광처럼 터지는 죽어가는 별들의 비명만이 존재했다.
카이는 조종석에 기대어 눈을 가늘게 떴다. 낡은 계기판의 숫자들은 그의 시야에 익숙하게 박혀 있었다. 주 엔진 출력 55%, 보조 동력 10%, 생명 유지 장치 작동률 70%. 모든 수치가 위태로웠지만, 카이의 심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수치는 그에게 일상이었다. 대붕괴 이후, 인류의 9할이 사라진 황폐한 우주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일밤 이 악물고 버티는 일이었다.
“시그마, 현재 위치 및 목표까지의 거리 재확인.” 카이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거친 사막의 모래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조종석 한편에 박힌 낡은 AI 유닛에서 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현재 좌표, J17 섹터 미개척 구역 진입. 목표 ‘망자의 별’까지 잔여 거리 12.3 광년. 예정 소요 시간 42시간. 현재 속도 유지 시 연료 부족 확률 87%.”
“확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카이가 픽 웃었다. “그 확률이 지금 이 배를 움직이는 유일한 힘이야. 이 잔별호는 수십 년째 확률에 기대어 날아다니고 있다고.”
잔별호는 카이의 전부였다. 대붕괴 이전 시대의 화물선이었던 이 배는 수많은 패치를 덧대고 고쳐지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때는 무수히 많은 행성을 오갔을 이 강철 고래는 이제 희귀 광물이나 잊힌 문명의 유물을 찾아 헤매는 카이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감옥이었다.
이번 목표는 ‘에테르 광물’. 잔별호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자, 이 구역에서 가장 찾아내기 힘든 광물이었다. 소문으로는 ‘망자의 별’이라는 죽은 행성의 핵에 소량 남아있다고 했다. 그 별은 과거 치열했던 성계 전쟁의 마지막 전장이자, 강력한 핵융합 폭탄으로 모든 생명체가 소멸된 저주받은 곳이었다.
잔별호는 거대한 암석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소행성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낡은 센서가 잔해들의 움직임을 읽어내며 삐걱거렸지만, 카이의 손은 숙련된 사냥꾼처럼 능숙하게 조종간을 움직였다. 그의 신경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방의 광활한 어둠에 집중되어 있었다.
“경고. 미확인 비행체 접근 중.” 시그마의 목소리가 한층 더 딱딱해졌다. “속도 및 패턴 분석 결과, J17 섹터에서 활동하는 ‘그림자 손’ 집단의 가능성 92%.”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림자 손’. 우주에 떠도는 쓰레기들을 뒤져 살아가는 해적 집단. 그들은 잔인했고, 자비는 사치였다. 카이 같은 떠돌이들을 노리는 데 도가 틘 자들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카이는 조종간을 꽉 쥐었다. “잔별호 스텔스 모드 가동. 모든 전력 비상 회로로 돌려.”
“전력 부족. 스텔스 모드 완전 가동 시 엔진 출력 20%까지 하락 예상. 추격 시 탈출 불가능.” 시그마가 경고했다.
“그럼 일부만 가동해! 최소한의 은폐만 해보자고!” 카이가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망자의 별로 가는 가장 위험한 경로를 찾아.”
시그마는 아무런 질문 없이 명령을 따랐다. 잔별호의 선체에 부착된 낡은 스텔스 코팅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우주 배경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카이는 시야에 나타난 ‘그림자 손’의 함선을 보았다. 거대한 덩치에 덕지덕지 붙은 불법 무기들이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들은 카이의 잔별호보다 훨씬 크고 빠르며, 무장 또한 압도적이었다.
“감지 강도 증가. 조준 록온 시작.”
“피해! 지금 당장!”
카이는 조종간을 거칠게 꺾었다. 잔별호는 낡은 선체를 비틀며 소행성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날아든 에너지 포탄이 잔별호의 꼬리 부분을 스쳤다. 섬광과 함께 선체가 크게 흔들렸고,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체 외벽 손상 5%. 보조 동력 회로 일부 마비.” 시그마가 보고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잔별호의 낡은 엔진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소행성 사이를 곡예하듯 비행하며 추격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의 심장은 북처럼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도,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황폐한 우주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림자 손의 함선은 끈질겼다. 그들은 카이가 숨어든 소행성대 깊숙이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카이는 이곳의 지형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하며 머릿속에 각인시켜두었다. 그는 이 소행성대가 품은 치명적인 함정들을 알고 있었다.
“시그마, 세 번째 대형 암석 뒤편의 방사능 분출 지점까지 경로 예측. 10초 내에 도착할 수 있나?”
“간능. 그러나 잔별호 또한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 90%.”
“어차피 죽을 거, 한 방에 가야지. 속도를 더 높여!”
카이는 무모한 도박을 감행했다. 잔별호는 소행성 암석 사이를 뚫고 좁은 통로를 지났다. 그의 뒤를 바싹 쫓던 그림자 손의 함선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거대한 암석에 충돌할 뻔했다. 그 순간, 카이는 잔별호를 급격히 틀어 방사능 분출 지점으로 진입했다.
우주가 녹색 섬광으로 번뜩였다. 거대한 에테르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며 잔별호의 선체를 강타했다. 방사능 차폐막이 비명을 지르며 버텼지만, 내부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카이의 조종석에도 방사능 경보가 울렸다. 그의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림자 손 함선, 방사능 분출 지점 진입 거부. 후퇴 중. 재추격 가능성 30%.” 시그마의 보고에 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방사능에 무모하게 뛰어들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젠장, 죽을 뻔했네.” 카이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은 조종간을 쥐고 있던 탓에 땀으로 축축했다. “시그마, 피해 상황 보고.”
“방사능 노출 2등급. 선체 외벽 추가 손상 3%. 연료 소모량 15% 증가. 현재까지 예정대로 진행 시 ‘망자의 별’ 도착 가능.”
카이는 다시 조종간을 꽉 쥐었다. 살아남았다. 또다시.
몇 시간 후, 잔별호는 ‘망자의 별’ 성계에 진입했다. 이름처럼 황량하고 거친 별이었다. 붉은 빛을 띠는 암석과 부서진 금속 파편들이 별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간데없고, 그저 죽음의 흔적만이 가득한 곳.
“착륙 지점 탐색 중. 최적의 착륙 지점은 N-7 구역. 그러나 해당 구역은 지진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그마가 말했다.
“에테르 광물은 어디에 있어?”
“핵 근처에 소량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 높음. N-7 구역은 핵에 가장 가까운 곳.”
카이는 헬멧을 착용하고 작은 탐사정을 준비했다. 잔별호는 삐걱거리며 붉은 사막 한가운데 착륙했다. 거친 모래바람이 착륙선 주변을 휩쓸었다. 탐사정을 타고 N-7 구역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지반은 불안정했고, 하늘은 짙은 주황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오래전 거대한 전쟁의 흔적이 여기저기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부서진 구조물, 녹슨 잔해들. 모두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폐허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탐사정의 센서가 지하 깊은 곳에서 희미한 에너지 신호를 감지했다. 카이는 망설임 없이 드릴을 작동시켰다. 굉음과 함께 붉은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탐사정의 드릴이 마침내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혔다.
카이는 조심스럽게 드릴을 멈추고 탐사정에서 내렸다. 헬멧 내부의 라이트가 어두운 동굴을 비추었다. 동굴 벽면에는 신비로운 푸른빛을 내는 광맥이 드러나 있었다. 에테르 광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생명의 조각이었다.
그 순간,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고! 지진 발생! 규모 5.0 이상! 동굴 붕괴 위험 90%!” 시그마가 탐사정 내부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카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채굴 장비를 최대한 작동시켰다. 벽면에 박힌 에테르 광물 조각들을 가능한 한 많이 캐냈다. 동굴 천장에서 암석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탐사정 주변으로 붉은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됐어!” 카이는 서둘러 탐사정에 탑승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드릴을 접고 탐사정을 후진시켰다. 동굴 입구가 거대한 암석에 막히기 직전, 카이는 간발의 차이로 탈출에 성공했다.
탐사정이 착륙선으로 돌아왔을 때, 잔별호는 이미 이륙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카이는 채굴한 에테르 광물을 조심스럽게 보관함에 넣고, 잔별호의 조종석에 앉았다.
“시그마, 현재 잔여 에너지로 탈출 가능성?”
“에테르 광물로 인한 에너지 부스팅 성공 시, 탈출 가능성 99%.”
카이는 에테르 광물을 조심스럽게 주 엔진의 동력 코어에 연결했다. 푸른빛 에너지가 코어를 타고 흐르자, 잔별호의 낡은 엔진이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소리를 내며 재가동되었다.
잔별호는 굉음을 내며 ‘망자의 별’의 붉은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지표면 아래에서는 여전히 지진이 울리고 있었지만, 잔별호는 이미 대기를 뚫고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탈출 성공.” 시그마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우주, 무수히 많은 죽은 별들, 그리고 그 사이를 헤쳐 나가는 자신의 작은 배. 살아남았다. 오늘 하루도.
수십 년째, 그의 삶은 이런 식이었다. 위기의 연속, 아슬아슬한 생존.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황폐한 우주 어딘가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그저 그의 오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그 믿음이 카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잔별호는 희미한 빛을 내며 광활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끝없는 생존의 여정이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