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3: 그림자의 속삭임
흙먼지가 깃털처럼 가라앉은 도시의 잔해 속에서, 지아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발소리는 죽은 나뭇가지처럼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서 아주 작은 바스락거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주위에 널린 부서진 유리 조각들은 마치 깨진 꿈의 파편처럼 햇빛을 반사했고, 무너진 고층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하늘을 긁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목구멍 안쪽에서 텁텁한 흙먼지 맛이 났다.
사흘째였다. 물통은 바닥을 보였고, 배 속에서는 굶주린 짐승이 발톱으로 내장을 긁어대는 듯한 고통이 반복됐다. 살아남으려면 찾아야 했다. 먹을 것. 마실 것.
지아의 시선은 낡은 종이지도를 훑었다. 수십 번도 더 펼쳐본 너덜너덜한 종이 위에는 붉은색 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구시가지 외곽에 위치한, 한때는 이 지역에서 가장 붐볐다는 대형 마트. 소문은 무성했다. 잊혀진 지하 창고에 아직 물자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속삭임. 혹은, 이미 다른 생존자들의 아지트가 되었거나, 더 끔찍한 존재들의 둥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경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마트는 마치 거대한 석관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나갔고, 한때 형형색색의 간판이 붙어있었을 자리에는 녹슨 철골만 흉측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접근하는 동안, 지아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철골이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환청처럼 들리는 누군가의 흐느낌.
심장이 쿵, 쿵, 불규칙하게 뛰었다. 익숙한 불안감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이후, 그녀의 심장은 단 한 번도 평온하게 박동한 적이 없었다. 모든 소리가 위협이었고, 모든 움직임이 그림자였다.
정문은 거대한 철제 파편과 잔해들로 막혀 있었다. 하지만 옆쪽, 화물 트럭들이 드나들던 후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찌그러진 셔터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어둠이 흘러나왔다. 마치 심연으로 통하는 입구 같았다.
“하아….”
얕은 한숨을 내쉬며 지아는 배낭을 고쳐 메고 조심스럽게 몸을 굽혔다. 낡은 작업화가 콘크리트 바닥을 스치는 소리조차도 크게 느껴졌다. 셔터 아래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냉장고에서 새어 나오던 특유의 시큼한 냄새 대신 곰팡이와 먼지, 그리고 알 수 없는 금속의 짠내가 코를 찔렀다.
내부는 지옥 같았다. 선반들은 쓰러져 있었고, 진열되어 있던 물건들은 모조리 약탈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으깨진 통조림 캔, 찢어진 포장지, 굳어버린 액체가 바닥에 얼룩져 있었다. 바닥에는 녹슨 장바구니가 뒤집혀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닳아빠진 인형이 버려져 있었다.
지아는 인형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감상에 젖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손에 든 소형 손전등을 켰다. 좁고 밝은 빛줄기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목적지는 지하 창고였다. 마트 안쪽에 위치한 관리실을 찾아야 했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없기를.”
아무도 없기를, 이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비록 사람이더라도,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음을 그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관리실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낡은 컴퓨터와 서류 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 뒤편에 굳게 잠긴 철문이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자물쇠가 보였다. 녹이 슬었지만, 아직 걸려있는 자물쇠였다. 누가 떠나기 전에 잠근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이곳에 중요한 것을 숨겨두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아는 배낭에서 공구 세트를 꺼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이 떨렸다. 딸깍, 삑. 익숙한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렸다. 녹슨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어둠.
손전등 빛을 비추자,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통로가 나타났다. 양옆으로는 거대한 선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놀랍게도 선반 위에는 아직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통조림, 병에 든 물, 심지어 쌀 포대까지!
“이런… 이런 곳에…”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의 긴장이 일시에 풀리는 듯했다. 털썩 주저앉아 통조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먼지를 닦아내자, 오래된 야채 통조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살아남았다. 또다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_탁._
지아의 심장이 다시 한 번 곤두박질쳤다. 통조림을 든 손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은 여전히 깊었고, 손전등이 비추는 작은 원만이 그녀의 유일한 시야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고막을 때렸다.
환청인가? 너무 긴장해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통조림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이번에는 더 선명하게, 더 가까이서 소리가 들렸다.
_긁적긁적…_
무언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마치 날카로운 발톱이 콘크리트를 긁어대는 듯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마치 짐승의 헐떡거림 같은 거친 숨소리.
지아는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손전등 불빛을 끄고, 선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등 뒤로 차가운 금속 선반의 감촉이 느껴졌다. 숨을 죽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_쉬이익…_
숨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짐승의 숨소리, 하지만 어딘가 인간의 것 같기도 한, 기괴한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이 켜지지 않은 채로, 그녀의 눈은 익숙하게 어둠에 적응했다. 희미한 달빛이나 외부의 빛이 닿지 않는 지하 창고는 완전한 어둠이었지만, 그녀는 시야가 흐려진 채로도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검고 거대한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두 발로 서서 걷는 듯했다. 선반 사이를 지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분명했다. 지아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이 오직 그 ‘무언가’에 집중했다.
그림자가 다가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질척거리는 소리, 그리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지아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 형체가 자신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숨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을 틀어막았다.
_쿵. 쿵. 쿵._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순간, 한 줄기 섬광처럼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가족을 잃었던 그날의 비명 소리, 피 냄새, 그리고 눈앞에서 무참히 찢겨나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아주 작은 신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무언가’가 지아가 숨어 있는 선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그 거대한 그림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그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지아는 단 한 번도 이토록 깊은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여기 왔을 뿐이었다. 작은 통조림 하나를 위해.
과연, 그녀는 어둠 속의 그림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지하 창고가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까? 어둠은 침묵했고, 오직 그녀의 공포만이 숨통을 조여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