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조각

회색빛 도시의 낡은 빌딩 숲 속, 해묵은 간판들이 켜켜이 쌓인 뒷골목 어딘가. 눅진한 공기와 미세먼지 냄새가 뒤섞인 곳에서, 이서진은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닳고 닳은 가죽 소파에 몸을 구긴 채, 그는 창밖의 도시를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불빛들은 마치 저마다의 욕망처럼 반짝였다. 저 빛들 중 하나는, 분명 그의 것이었어야 했다.

두 달 전만 해도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젊은 나이에 IT 업계를 휘어잡은 천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내는 마술사.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의 순간마다, 최민준은 그의 곁에 있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 그리고 누구보다 굳건한 그의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존재.

하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조각난 파편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서진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믿음은 찢기고, 신뢰는 갈가리 찢겼으며,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지옥 같은 현실과, 타오르는 증오뿐이었다.

탁, 탁.
그의 손끝에서 낡은 라이터가 몇 번 헛돌다 불꽃을 피웠다. 담배는 없었다. 그저 습관처럼 불을 붙였다 껐다 할 뿐. 희미한 불꽃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거울이라도 있다면, 그 옛날의 이서진과 지금의 이서진이 얼마나 다른지 한눈에 알 수 있었을 터였다. 날카롭던 눈매는 피곤에 절어 초점을 잃었고, 늘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표정은 굳게 닫힌 석상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차가운 불씨가 살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빛바랜 신문 스크랩이 놓여 있었다. ‘최민준 대표, 업계 최고 혁신 기업인으로 선정…’, ‘젊은 기업가 최민준, 새로운 기술 개발로 투자 유치 성공…’ 온통 최민준의 이름으로 도배된 기사들이었다. 그 기사들마다 민준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공적인 양. 마치 자신이 서진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린 것처럼.

“하…….”
서진의 입술 사이로 마른 한숨이 새어 나왔다. 웃음이라기엔 너무나 공허하고, 울음이라기엔 너무나 메마른 소리였다. 그는 손을 뻗어 신문 기사 속 민준의 얼굴을 쓸었다. 종이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졌다.

“네가 가진 모든 것, 내 것이었어야 했어.”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텅 빈 방 안에서 울림 없이 흩어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낡은 소파가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창밖의 야경은 여전히 번잡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 누구도, 이 어둠 속에 갇힌 남자가 어떤 지옥을 헤쳐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남자가 이제 어떤 지옥을 만들어낼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그는 벽에 기대어 놓았던 낡은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열자 희미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바탕화면에는 하나의 파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파일명은 ‘계획’.

그것은 지난 두 달간 서진이 매달린 유일한 일이었다. 밤낮없이 매달려, 모든 자료를 긁어모으고,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고, 모든 허점을 파고들었다. 마치 거미가 먹이를 노리듯, 끈질기고 집요하게.

“네가 내 모든 걸 앗아갔지, 민준아.”
화면 속 민준의 환한 미소가 서진의 굳은 표정 위로 겹쳐지는 듯했다.
“이제 내가 네 모든 걸 앗아갈 차례야.”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스쳤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그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복수는 차갑게 식은 접시에 담아 대접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서진은 그 접시에, 민준이 겪게 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채워 넣을 생각이었다.

덜컥.
낡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예상치 못한 소리에 서진의 몸이 경직됐다. 그는 재빨리 노트북 화면을 껐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이 낡은 건물에 밤늦게 찾아올 이는 없었다. 침입자? 아니면…

“서진아.”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가 가장 증오하는 최민준이었다.

심장이 발작하듯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민준이, 이 지옥 같은 공간에 어떻게…

어둠 속에서 민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깔끔한 수트 차림에, 고급스러운 시계가 그의 손목에서 빛났다. 그는 여전히 그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치 자신을 파멸시킨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

“찾느라 애먹었어. 이렇게 꽁꽁 숨어있을 줄은 몰랐네.”
민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약간의 짜증과,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듯한 오만함만이 묻어날 뿐이었다.

“왜… 왔어?”
서진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게 깔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 복수의 서막을 앞둔 시점에서, 민준이 직접 나타나다니.

민준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걱정돼서 왔지. 친구가 이렇게 사라졌는데.”
‘친구’라는 단어에 서진의 입술이 비틀렸다. 역겨움이 치밀었다.

“친구? 네가… 친구?”
서진은 민준을 노려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네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올 줄이야. 구역질 나는군.”

민준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서진의 심장을 찢는 칼날 같았다.
“아직도 화가 많이 났나 보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사업이라는 게 다 그런 거잖아.”
그의 손이 서진의 어깨로 향했다. 서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사업? 넌… 넌 내 모든 걸 뺏었어. 내 기술을 훔치고, 내 명예를 더럽히고, 날 나락으로 떨어뜨렸어. 그게 네가 말하는 ‘사업’이야?”
서진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되기 시작했다.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표정이 스쳤다.
“아니, 서진아. 난 네가 길을 잃었을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 거야. 네 기술은 아직 미숙했고, 네 비전은 너무 순진했지. 난 그걸 완성시켰을 뿐이야.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했잖아.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순간, 서진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오만함, 그 뻔뻔함. 민준은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괴물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

서진의 주먹이 떨렸다. 당장이라도 민준의 면상에 날리고 싶었지만, 그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는 민준을 파멸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망칠 수는 없었다.

“고맙다?”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네게 해줄 건, 오직 하나뿐이야.”

민준은 눈썹을 치켜떴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뭔데? 또 허황된 복수극이라도 꿈꾸는 거야? 정신 차려, 서진아.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서진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 서늘했다.
“그래,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넌 내가 겪은 고통을 정확히, 아니 그보다 더 깊게 느껴야만 할 거야.”

민준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의 눈빛에 아주 희미한 불안감이 스치는 것을 서진은 놓치지 않았다.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민준이 발을 들인 이 어둠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서진은 다시 노트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계획’ 파일을 열었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섬뜩하게 비췄다. 민준의 눈빛이 그 화면에 고정됐다.

“난 이제 ‘이서진’이 아니야.”
서진은 차갑게 읊조렸다.
“난 이제, 너를 위해 존재하는 지옥이야.”

민준의 얼굴에서 비로소 오만함이 사라지고, 당혹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서진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길고도 처절한 복수극의, 아주 작은 첫 번째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