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이 찢어진 아스팔트 위로 재처럼 흩어졌다. 지훈은 망가진 상점가의 헐거워진 간판 아래를 조용히 미끄러져 지나갔다. 낡은 배낭의 어깨끈이 뼈마디를 파고들었지만, 그는 익숙한 통증에 무감각했다. 도시는 거대한 무덤과 같았다. 살아남은 자는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다. 죽은 자들이 아직 그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오늘은 운이 좋았으면 했다. 아니, 운 같은 건 진작에 바닥났을 것이다.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덜 비극적인 하루이길 바랄 뿐이었다. 며칠째 물 한 모금, 건더기 하나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갈증이 목구멍을 긁어대고, 허기가 위장을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저 너머, 유리창이 깨진 슈퍼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할 게 뻔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훈은 최대한 낮은 자세로, 거의 기어가다시피 슈퍼마켓 입구에 도달했다. 깨진 자동문은 뼈대만 남은 채 벌어져 있었고, 그 안쪽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조용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슈퍼마켓 안은 암흑이었다. 희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살과 먼지,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 지훈은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였다. 폐허가 된 진열대 사이로 빛바랜 과자 봉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을 멈춘 듯, 불과 몇 달 전의 평범한 일상이 박제되어 있는 것 같았다.
“흐읍… 흐읍…”
저 안쪽, 어둠 속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규칙적인 숨소리, 혹은 썩어가는 폐에서 나오는 쉰 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 셋. 지훈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빌어먹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의 신발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빈 통조림 캔을 건드렸다. 쨍그랑!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크어어어어!”
소리에 반응한 그림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썩어 문드러진 피부, 텅 빈 눈구멍, 피와 살점이 뒤섞인 입술. 그들이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지훈을 향해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역겨운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지훈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날렸다. 이제 숨을 이유도, 조용히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그는 낡은 식칼을 뽑아 들고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그것’의 머리를 겨냥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단숨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축축한 감각이 손에 전해졌다. 그것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두 마리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지훈은 뒤로 물러서며 진열대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진열대가 쓰러지며 잠시 시간을 벌었다. 그는 그 틈을 타 안쪽으로 더 깊숙이 뛰어들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식량. 물.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것.
진열대 구석에 처박힌 박스에서 눅눅해진 에너지바 몇 개와 작은 생수병을 겨우 찾아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넘어뜨린 진열대를 기어코 넘어온 모양이었다.
등 뒤에서 썩어 문드러진 손이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지훈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비쩍 마른 시체가 게걸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에서는 썩은 이빨이 드러나 있었다.
“이 개자식들…!”
그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지만, 그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절대로. 지훈은 손에 든 물품들을 놓치지 않으려 악을 썼다. 삶의 마지막 희망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칼을 휘둘러 가장 가까이 다가온 시체의 목을 깊이 베었다. 끈적한 체액이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지훈은 가까스로 슈퍼마켓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온몸은 땀으로 축축했고, 팔에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힌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눅눅해졌지만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에너지바 몇 개와 작은 생수병이 꽉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또 하나의 물건.
슈퍼마켓의 캐셔 데스크 뒤편, 찢어진 달력 한 귀퉁이에 테이프로 붙어있던 것이었다. 누가 그린 건지 알 수 없는, 조악한 그림. 크레파스로 엉성하게 그려진 가족의 모습. 해맑게 웃는 아이와 부부의 얼굴. 그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 가족은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지훈은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잊고 있던, 그러나 한때는 당연했던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그림을 조심스럽게 접어 품 안에 넣었다.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약한, 그러나 절망 속에서 문득 마주한 어떤 흔적이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지훈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살아야 했다. 이 그림을 가지고, 이 기억을 품고서. 언제까지 이 지옥 같은 세상이 이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살아갈 이유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작고 희미한,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