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젠장, 이게 대체 몇 권이야.”

김현우는 낡은 작업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오래된 서적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故 한 교수라는 양반의 유품 정리, 정확히는 그의 기이한 개인 서고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맡기 위해 서울에서 경주 외곽의 낡은 저택까지 내려온 지도 벌써 일주일째. 일당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노동 강도는 현우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빽빽한 책장,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알 수 없는 조각상들과 빛바랜 지도들. 서재는 고고학 박물관과 폐지 창고를 뒤섞어 놓은 듯했다. 한 교수는 생전에 세상과 등지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 은둔자였다고 했다. 그의 연구가 무엇이었는지 유족들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이 낡은 유산을 빨리 처분하고 싶어 할 뿐.

현우는 먼지투성이의 고문서 뭉치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이러다 내가 먼저 유품 되겠네.”

오후 내내 책장 구석구석을 살피며 목록을 작성했다. 고문헌, 민속학 자료, 철학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언어로 가득 찬 두꺼운 책들. 지루함과 피로가 현우의 신경을 잠식해 들어갈 때였다.

오른쪽 벽, 유독 두껍고 육중해 보이는 마호가니 책장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다른 책장들과 달리 책이 한 권도 꽂혀 있지 않고 굳게 닫혀 있었다. 그냥 장식용인가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뒤편에서 미세한 냉기가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현우는 호기심에 이끌려 책장 앞으로 다가섰다. 손잡이도 없고, 경첩도 보이지 않았다. 견고하게 벽에 박힌 나무판처럼 보였다.

“이게 뭐지?”

손바닥으로 책장 표면을 쓸어보니, 희미한 문양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십자 모양의 홈. 현우는 주머니에서 만능 칼을 꺼내 홈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탁, 하고 작은 소리와 함께 얇은 나무판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 뒤에는 다시 한번 나무벽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문이 열리는 듯한 선이 보였다.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분명히 숨겨진 공간이었다. 벽면을 더듬거리다 손가락 끝에 잡히는 미세한 돌출부를 발견했다. 꾹 누르자, “끼이이익…… 쿵.” 끔찍한 마찰음을 내며 거대한 책장이 통째로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에는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이상하게도 곰팡이 냄새는 덜했지만, 묘하게 비릿하고 퀴퀴한,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현우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조심스럽게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통로는 짧았다. 이내 작은 방으로 이어졌다. 방은 서재보다도 더 어둡고 고요했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검은 천으로 덮인 무언가가 있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검은 천을 걷어냈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천 아래 드러난 것은 책이 아니었다. 비석이었다. 새까만 돌판. 크기는 A4 용지 서너 장을 합쳐놓은 정도였는데, 표면에는 기묘한 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현우가 아는 어떤 문자 체계와도 달랐다. 날카로운 선과 둥근 곡선이 뒤섞여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의 눈이 글자들을 훑는 순간, 현우는 섬뜩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이 글자들을, 언젠가 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는 이 글자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스스슥.’ 비늘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 물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둔탁한 파동.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돌판을 만졌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그러나 손끝에 닿는 감촉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생명체의 피부 같았다.

돌판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뚜껑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우는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뭐야…?”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돌판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 푸른색과 녹색이 뒤섞인, 이 세상의 색이 아닌 듯한 불길한 빛. 빛은 현우의 눈을 향해 쏘아졌고, 그의 시야는 한순간 하얗게 변했다.

***

“으윽…!”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앞에는 방금 보았던 그 기묘한 글자들이 마치 불꽃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글자들이 춤을 추는 듯했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지만, 방금 전의 극심한 통증은 가라앉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돌판을 다시 보았다. 돌판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고요했다. 빛도, 소리도 없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현우의 환상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니었다. 현우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그의 내면에서 변해버렸다는 것을.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돌판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빛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아까 들었던 그 기묘한 소리들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 선명했다. 단순히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였다.

낯설지만 익숙한, 이해할 수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언어. 현우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공간의 왜곡,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이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존재들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그러나 그의 정신이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진실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은 여전히 똑같았다. 낡은 탁자, 먼지 쌓인 바닥, 그리고 숨겨진 책장으로 이어진 통로. 그러나 현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벽의 균열은 더 이상 단순한 균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틈새였고, 그 너머로 무수히 많은 눈동자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공기 중의 먼지 입자들은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세한 생명체들이었고,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현우는 숨을 헐떡였다. “이게… 대체… 뭐지?”

그는 돌판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손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돌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진동이 그의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의 시야는 더욱 확장되었다. 벽 너머, 저택 너머, 도시 너머, 행성 너머… 우주 끝자락의 거대한 존재들이 한데 얽혀 꿈틀거리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시공간을 왜곡하고, 별들을 삼키며, 이 모든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존재들에게 인간의 삶이란 한낱 먼지보다도 하찮은 것이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절대적인 공포였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머리는 이 거대한 정보의 파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미쳐가고 있었다. 분명히.

그때, 돌판의 글자들이 다시 한번 빛났다. 이번에는 더욱 강렬하게, 그리고 그의 정신 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듯했다.

***

“그만… 그만해!”

현우는 손을 떨쳐냈다. 차가운 돌판과의 접촉이 끊어지자, 그의 시야는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벽의 균열은 다시 단순한 균열이 되었고, 먼지는 그저 먼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귓가에는 여전히 그 끔찍한 비늘 소리와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는 탁자에서 멀찍이 떨어져 벽에 등을 기댔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었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은 통제 불능으로 떨리고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지…?”

그는 겨우 진정하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환각이었을까? 과로로 인한 착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자신이 영원히 닫혀 있던 다른 차원의 문을 억지로 열어젖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그의 정신 속에 남겨진 *잔여물*이었다. 돌판이 부여했던 ‘이해’의 조각들. 그는 이제 세상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었다. 하늘은 더 이상 푸른 하늘이 아니었고, 땅은 단단한 땅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흐물거리는 가짜 막 뒤에 숨겨진, 진짜 현실의 기형적인 그림자에 불과했다.

“한 교수… 이 양반은 도대체 뭘 연구했던 거야…?”

현우는 돌판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 너머의 심연과 연결된 통로이자, 인간의 정신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위험한 힘이었다.

그는 홀린 듯 다시 탁자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돌판에 직접 손을 대는 대신, 옆에 놓여 있던 빈 나무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아까는 분명히 비어 있었는데…

상자 안쪽 바닥에, 미세한 금속 조각이 박혀 있었다. 작고 얇은 삼각형 형태의 조각.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니, 섬뜩한 냉기가 전해져 왔다. 그것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이 세상의 어떤 물질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듯한 기묘한 감촉이었다.

현우가 조각을 손에 쥐는 순간, 그의 귓가에 속삭임이 더욱 또렷해졌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드넓은 우주 공간, 셀 수 없는 별들이 먼지처럼 흩뿌려진 그곳에, 거대한 촉수를 가진 무언가가 은하를 감싸 안고 잠들어 있었다. 그 존재는 너무나도 거대하여 모든 개념을 초월했고, 그의 꿈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모든 현실에 기형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이 작은 금속 조각이 떨어져 나왔음을 현우는 직감했다.

이것은 돌판을 통해 얻은 이해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도구였다. 돌판이 ‘언어’를 주었다면, 이 조각은 ‘감각’을 주는 것이었다. 이 조각을 통해 그는 그 존재의 꿈을, 그 존재의 의식을 어렴풋이나마 공유할 수 있게 될 터였다.

현우는 끔찍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 조각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는 욕망. 이 모든 것을 더 명확하게 보고 싶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 하지만 동시에, 미칠 듯한 공포가 그의 목을 죄어왔다. 그 존재의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을 그 악몽의 일부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을 터였다.

그는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했다.

“현우 씨, 아직도 안에 계세요?”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유족 측에서 보낸 관리인이 저택을 점검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현우는 깜짝 놀라 조각을 바지 주머니에 황급히 쑤셔 넣었다. 동시에 숨겨진 책장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네, 다 됐습니다!” 현우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관리인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휴, 여기서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교수님 서재는 언제 봐도 으스스하네요.”

“하하, 그렇네요.” 현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방금 전의 작은 방을 흘끗 보았다. 굳게 닫힌 책장 뒤로, 여전히 어둠이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돌판은 다시 그저 평범한 검은 비석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관리인은 현우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물었다. “얼굴이 좀 안 좋으신데요?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아, 네. 좀… 잠을 설쳐서요.” 현우는 애써 미소 지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서 금속 조각은 여전히 차갑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서재를 빠져나왔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밝았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현우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하늘은 이제 단단한 껍질처럼 보였고, 그 너머에는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숨 쉬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고,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무한한 공허가 비쳤다.

현우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문을 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의 뒤틀린 진실을 보게 되었고, 그 대가로 영원한 광기와 끝없는 공포 속을 헤매게 될 터였다.

그의 손은 주머니 속의 금속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촉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는 듯했다.

‘쉬이이익… 스스슥…’

귓가에서 비늘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

현우는 천천히 저택을 나섰다. 등 뒤에서는 낡은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지만 그 소리는 현우에게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연의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그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된 끔찍한 악몽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