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잿빛 골목, 갓 구운 빵과 불청객

“강솔아! 또 빵 태우겠어!”

엄마의 목소리가 부엌 문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아차, 하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고소하고도 미묘하게 탄내 섞인 냄새. 아니나 다를까, 오븐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깔린 호밀빵 몇 조각이 제 몸을 검게 불태우며 절규하고 있었다.

“아, 망했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샛별 구역,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솔아네 빵집’은 오늘 아침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벌써 이달 들어 세 번째다. 흑철 제국이 징수하는 세금은 매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빵에 들어가는 밀가루 값은 금값이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손해였다. 엄마는 한숨을 폭 쉬며 빵 조각들을 쓸어 담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괜찮다, 솔아야. 네가 어디 일부러 그랬겠니. 밤새 빵 만드느라 고생했지. 어서 가서 좀 쉬렴.”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빵집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국의 철저한 신분제와 무시무시한 세금 폭탄 앞에서 그런 한가로운 취미는 사치에 불과했다. 우리 같은 평민은 그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아남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아니요, 엄마. 괜찮아요. 이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새로 반죽한 빵을 오븐에 넣고, 나는 주방 카운터로 나섰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좁은 골목으로 흘러나가자, 빵집 문 앞에 줄 서 있던 몇몇 단골손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솔아 아가씨, 오늘은 해님이 뜨기도 전에 나왔구먼!”
“어르신, 안녕하세요! 오늘은 따끈한 호밀빵과 함께 꿀 사과파이도 나왔어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을 맞았다. 빵집은 샛별 구역의 작은 쉼터이자, 고단한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흑철 제국의 폭정과 탐욕에 신음하면서도, 갓 구운 빵 한 조각에 잠시나마 시름을 잊곤 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꼼짝 마라! 제국 병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빵집 문이 활짝 열렸다. 우락부락한 체격의 제국 병사 셋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검은 갑옷과 날카로운 검은 샛별 구역의 평화로운 아침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손님들은 놀라 굳어버렸고, 나 역시 숨을 헙 들이켰다.

병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턱을 쳐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제국의 문장인 흑철 독수리 문양이 선명했다.

“오늘부터 샛별 구역 상점들을 대상으로 특별 검열을 실시한다. 너희 중 일부가 제국의 법도를 어기고 불온한 문건을 유포한다는 첩보가 있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라!”

불온한 문건? 또 시작이군. 샛별 구역은 늘 제국의 감시 대상이었다. 제국은 자신들에게 대항하려는 작은 움직임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으려 안달이었다.

“병사님, 저희는 그저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온한 문건이라뇨?”

내가 용기를 내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병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닥쳐라, 계집! 네까짓 게 감히 어디서 말대꾸냐? 감히 흑철 제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는 것이냐?”

으득, 이를 악물었다. 내 팔을 붙잡는 엄마의 손이 애처로웠다. 병사 중 하나가 진열대의 빵들을 난폭하게 헤치며 훑어보기 시작했다. 갓 구워진 따끈한 사과파이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안 돼!”

나도 모르게 외쳤다. 엄마가 내 입을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오호, 이 계집이 간도 크군. 감히 제국 병사의 수색을 방해하려 들어?”

우두머리 병사가 거친 손으로 내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귓가에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병사 나리들. 아침부터 갓 구운 빵 냄새가 좋다고 해서 찾아왔더니, 영 좋지 않은 구경이군.”

문간에 기대 선 남자가 보였다. 회색빛 망토를 걸치고,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묘한 여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한 손에는 깨끗하게 닦인 은빛 단검이 들려 있었는데, 마치 장난감처럼 가볍게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

샛별 구역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 ‘그림자 도둑’ 류진하.
겉으로는 재수 없는 한량에 불과했지만, 은밀하게 제국 귀족들의 창고를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라는 소문도 자자했다. 동시에 제국 병사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병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류진하! 감히 네놈이 여기에!”
“하, 이 망할 도둑놈이 또 기어 나왔어!”

류진하가 히죽 웃으며 단검을 칼집에 넣었다.
“도둑놈이라니, 너무 심한 말씀 아닌가? 나는 그저 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온 것뿐인데. 그런데 병사 나리들, 아가씨의 뺨을 치려던 건 너무 비열하지 않나? 빵 한 조각에 목숨 거는 평민들에게 말이야.”

그의 말에 병사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군! 당장 잡아서 흑철탑에 가둬라!”

병사들이 류진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류진하는 가볍게 몸을 피하며 재빠르게 빵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묘한 바람이 일었다. 진열된 빵 몇 개가 흔들렸다.

“어쭈, 병사 나리들. 내가 빵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설마 이 갓 구운 빵들을 밟고 들어올 생각은 아니겠지?”

그의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던 것은 갓 구운 호밀빵이었다. 병사들은 진하를 잡으려다 빵들을 밟을까 주춤거렸다. 빵집 바닥은 밀가루와 빵 부스러기로 뒤덮여 있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것이었다. 제국 병사가 평민들의 빵을 짓밟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들의 체면에도 금이 갈 터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봤다. 위기 상황에 빵을 걱정하다니! 하지만 그의 기지로 병사들이 잠시 주춤한 것은 사실이었다.

“흥, 그까짓 빵이 뭐라고! 이놈을 잡지 못하면 우리가 흑철탑에 갈 것이다!”
병사들은 결국 빵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류진하는 그 틈을 타 카운터 뒤로 쏙 숨어버렸다.

“아가씨, 아까 그 사과파이, 혹시 한 조각 맛볼 수 있을까? 목숨을 걸고 구해줬는데, 이 정도 보상은 받아야지.”

그는 능청스럽게 내게 속삭였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누가 누굴 구해줘요! 당신 때문에 더 시끄러워졌잖아요!”
“어허, 이 아가씨는 은혜도 모른다더니.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따귀 맞고 있었을 텐데.”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병사들이 카운터 너머로 손을 뻗었지만, 류진하는 얄밉게도 몸을 굽혀 피했다.

“이봐요, 이럴 거면 나가서 제대로 싸우세요!”
“에이, 아가씨. 싸움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병사 나리들이랑 같이 하는 거지. 좁은 빵집에서 깽판 치고 싶지 않다고. 안 그래, 병사 나리들?”

그의 말에 병사들이 분에 못 이겨 고함을 질렀다.
“닥쳐라! 이 비겁한 놈! 어디 숨어만 있을 테냐!”

그 순간, 류진하는 갑자기 내 팔을 잡고 빵집 뒷문 쪽으로 끌고 갔다.
“자, 아가씨.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도망쳐요! 곧 있으면 지붕 위로 올라갈 거거든!”
“네? 잠깐, 뭘 알아서 한다는 거예요!”

내 말도 듣지 않고, 류진하는 빵집 뒷골목으로 나 있는 좁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나를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가요! 지금이 기회라고!”

밀쳐지는 순간, 류진하의 망토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종이 조각이었다.
그것은 마치 작고 가벼운 깃털처럼, 바람에 실려 빵집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깃털은 아니었다. 그저 작고 얇은 종이.

“뭐예요, 이거!”

내가 그걸 주우려 허리를 숙였을 때, 류진하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그의 눈빛은 순간 장난기 대신 진지함으로 가득 찼다.

“이봐, 아가씨. 조심해요. 아무것도 만지지 마. 그리고, 기억해. 제국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더 깊어. 하지만… 작은 불씨도 큰 불꽃을 만들 수 있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류진하는 나를 뒷골목으로 완전히 밀쳐냈다. 그리고는 자신은 다시 빵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안 돼! 같이 가요!”

나는 뒤늦게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빵집 안에서는 병사들의 고함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혼자 뒷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류진하가 남기고 간 종이 조각을 바라봤다. 얇고 누런 종이에는 단순한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세 개의 별이 겹쳐진 문양.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쓰인 글씨.

**’ 새벽의 불씨 ‘ **

내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희미해지는 잿빛 골목에서, 나는 처음으로 제국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그림자를 느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거대한 ‘불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