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를 깨는 톱니바퀴의 비명
지후는 삐걱거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낡은 원목 의자는 그의 몸무게를 견디며 고된 세월의 흔적을 웅변하는 듯했다. 창밖으로는 해가 기울어 빌딩 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 복잡한 금속 조형물에 머물렀다. 놋쇠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증기 압력계가 촘촘히 박힌 그 조형물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손목시계보다 훨씬 정교한 내부 구조를 가진, 지후가 직접 조립한 자그마한 시간 기록 장치였다. 태엽을 감으면 매끄러운 기계음과 함께 초침이 움직이고, 작은 증기 기관에서 연기 대신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는, 오직 지후만의 세상이었다.
“오늘도 야근이군, 내 작은 친구.”
그가 중얼거렸다. 컴퓨터 화면에는 난해한 코드들이 끝없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이 좁은 원룸 오피스텔에서, 지후의 유일한 낙은 복잡한 기계들을 만지고 조립하는 것이었다. 그의 공간은 언뜻 보면 평범한 현대인의 아파트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장 가득한 고서적들과 낡은 증기 기관 모델들, 그리고 탁자 위 무심하게 놓인 빈티지 나침반 같은 것들이 묘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특히 벽에 걸린 거대한 벽시계는 놋쇠와 철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19세기 공장의 시계탑에서 떼어온 듯 육중하고 우아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 삐걱. 뭔가 스치는 소리였다. 지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방이었다. 고작 연필 한 자루가 책상 위에서 스르륵 굴러 떨어지는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거슬렸다. 지후는 연필을 주워 제자리에 놓았다. 어쩌면 피곤해서 헛것이 들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기이한 현상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똑. 똑. 똑.
그것은 일정하지 않은 박자로 울리는 물방울 소리 같기도, 아니면 아주 작은 톱니바퀴가 벽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후는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자기 방 벽이었다. 그는 벽에 귀를 대봤다. 소리는 사라졌다. 귀를 떼면 다시 시작됐다.
“뭐야, 이거.”
신경이 곤두섰다. 낡은 건물이라지만 이렇게 음산한 소리가 난 적은 없었다. 그는 천장 모퉁이에 설치된 작은 스팀프레스 램프를 켰다. 증기 압력으로 밝혀지는 램프는 실내를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그러자 소리는 또 멎었다. 마치 빛을 피해 숨어버리는 것처럼.
지후는 한숨을 쉬었다. “피곤하긴 진짜 피곤한가 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 옆 협탁 위 유리컵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깨진 조각은 없었지만, 컵 안의 물은 침대 시트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잠결에 움직이다 쳐서 그랬겠거니 생각했지만, 컵은 협탁 모서리에서 꽤 떨어진 바닥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던진 것처럼.
그리고 그 날 저녁.
지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스팀프레스 램프의 불빛이 왈칵 쏟아졌다. 쨍그랑!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묵직하고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었다.
지후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방 거실 중앙에는, 아끼던 벽시계가 산산조각 난 채 널브러져 있었다. 거대한 놋쇠 테두리는 찌그러져 있었고, 복잡하게 얽힌 내부 톱니바퀴들은 사방으로 튀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거미줄처럼 뻗은 잔금과 함께 유리판도 박살 나 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두려움에 질려 소리쳤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창문도 잠겨 있었고, 현관문도 그가 잠근 그대로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시계를 벽에서 떼어내 바닥에 내던진 것 같았다.
그때였다.
흩어진 톱니바퀴 조각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찌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지후는 똑똑히 목격했다. 손톱만 한 그 톱니는 마치 생명이라도 얻은 듯,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이내 지후의 발치에 닿았다. 닿는 순간, 차갑고도 미묘한 온기가 그의 발을 스쳤다.
동시에, 거실 한구석에 놓여 있던 그의 작업용 공구함이 덜컹거렸다. 공구함 뚜껑이 천천히 열리더니, 그 안에서 스패너와 드라이버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들을 들고 있는 것처럼. 놋쇠 스패너의 표면에는 희미하게 김이 서리는가 싶더니, 이내 쉬이이익, 하는 증기 분출음이 짧게 터져 나왔다.
지후의 눈앞에서 벌어진 기괴한 광경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기엔 너무나도 기계적이고, 스팀펑크적인 징후들이었다. 마치 이 공간에, 그와 같은 취향을 가진, 아니 어쩌면 그 취향을 비웃는, 증기로 이루어진 망령이 나타난 것처럼.
공중에 떠 있던 스패너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그의 책상 위 시간 기록 장치를 향해 움직였다. 마치 정교한 공장 기계 팔처럼. 그리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계의 덮개를 강타했다. 텅!
지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서 공포와 함께, 미쳐버린 기계에 대한 알 수 없는 경외감이 피어났다.
“너… 너 정체가 뭐야?”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공중에 떠 있던 스패너가 잠시 멈추더니, 그의 시선을 느리게 따라왔다. 그리고 스패너가 꺾이는 순간, 뒤편 벽에서 삐걱, 삐걱, 삐걱, 하는 낡은 태엽 감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시계가, 이 고요한 아파트 안에서, 다시 시간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처럼.
지후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분명히 그의 오피스텔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의 아주 작은 부품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는, 지금 막, 미친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