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자물쇠 안의 비명

새벽안개가 진회색 장막처럼 대한 제국의 수도 한성(漢城)을 휘감을 무렵이었다. 고요하던 박 진사 댁의 담장을 넘어, 한줄기 비명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갈랐다.

“살인! 살인입니다요!”

비명은 핏기 어린 목소리로 연이어 터져 나왔고, 곧 집안은 혼비백산한 하인들의 아우성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달려온 행랑채 사람들과 안채 부인네들은 방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겹겹이 쳐진 비단 장막 너머로 보이는 방 안의 풍경은 그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방바닥에는 박 진사가 쓰러져 있었다. 잿빛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경련의 흔적이 역력했고, 붉은 피가 고급 비단 위에 검붉은 얼룩을 새기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은장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문제는 방이었다. 단 하나의 출입문은 안에서 빗장이 굳건히 걸려 있었고, 창문들은 모두 밖에서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밖에서는 도저히 들어갈 수도, 안에서는 나갈 수도 없는 완벽한 밀실.

현장에 도착한 김 판관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박 진사는 지독하기로 소문난 자였고, 원한을 산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범인이 어디로 증발했단 말인가?

“문은 안에서 걸려 있었고, 창문도 밖에서 잠겨 있었으니… 자살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소이다!” 한성부 참봉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허나, 저리 깊이 박힌 칼날을 스스로 찌를 수 있었을까?”

김 판관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살이라고 하기엔 상처의 깊이가… 그리고 진사가 그리 무른 사내가 아니었다. 허나 타살이라면, 범인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때, 저 멀리서 초록색 고급 비단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걸어왔다. 창백하리만치 흰 낯빛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는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그의 손에는 낡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된 작은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김 판관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감과 함께 깊은 회의감이 스쳤다. “이서림 나리… 부르지 않았음에도 어찌 이리….”

이서림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하고는, 그 어떤 흐트러짐 없이 시신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하인들이 저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길을 터주었다. 그는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피비린내와 함께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서림은 김 판관의 부름도, 주변의 웅성거림도 전혀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의 모든 것에 머물렀다. 비단 이불의 주름, 탁자 위의 붓과 먹, 심지어는 바닥에 떨어진 쌀알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문으로 다가섰다. 굳건히 걸려 있던 안쪽 빗장을 손으로 만져보고, 그 감촉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듯 눈을 감았다. 김 판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이서림 나리? 문은 분명 안에서 걸려 있었습니다.”

이서림은 대답 없이 빗장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문틈 아래, 희미하게 비스듬히 놓인 작은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박 진사가 평소 즐겨 사용하던, 조각이 섬세한 향나무 목패였다. 아무렇게나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빗장이 걸린 틈새에, 마치 무엇인가를 지탱하기라도 한 듯이 아슬아슬하게 끼워져 있었다.

이서림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몸을 숙여 목패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목패는 빗장의 무게에 눌렸던 듯, 한쪽 끝이 살짝 짓눌려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목패의 닳아버린 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모든 이들의 귀에 선명하게 박혔다.

“이 방은… 범인이 문을 잠근 채로 나갔던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고, 박 진사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죠.”

김 판관의 얼굴이 혼란으로 일그러졌다. “허면… 문은 누가 잠갔단 말이오? 나리, 분명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서림은 김 판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더없이 차가웠고, 그 속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범인이 나가고 난 뒤, 이 목패가… 문을 잠갔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시선은 이서림의 손에 들린 조그만 향나무 목패에 집중되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단단한 빗장이 목패 하나로 스스로 잠길 수 있단 말인가?

이서림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이 사건은, 범인이 문을 닫고 나간 뒤,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채로… 스스로 빗장을 걸어 잠근 방 안에서 일어난 살인입니다.”

그는 목패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더니, 방 중앙에 쓰러져 있는 박 진사의 시신으로 시선을 옮겼다. 은장도가 박힌 옆구리를 천천히 훑어보던 그의 눈은 잠시 멈칫했다. 박 진사의 옷고름이 풀어져 있었다. 흐트러진 정도가 아니라, 마치 무엇인가에 급하게 걸려 뜯긴 듯, 한쪽이 끊어져 늘어져 있었다.

이서림은 시신 주변을 더 면밀히 살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방 한쪽 벽에 걸린 족자에 닿았다. 평범한 산수화 족자였다. 그런데 족자의 아랫부분이 미세하게 들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 뒤에 무언가를 감췄거나, 혹은 무언가가 그곳에 걸렸던 것처럼.

이서림은 족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족자 뒤쪽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족자 아랫부분과 벽이 맞닿는 부분에 아주 작은, 섬유 조각 같은 것이 희미하게 끼어 있었다. 그것은 박 진사의 옷고름에서 떨어져 나간 것과 똑같은 색과 질감의 비단 조각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서림에게 집중되었다. 김 판관은 초조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서림은 비단 조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털어내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것이 실마리입니다.”

그는 싸늘하게 굳은 박 진사의 얼굴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리고는 밖에서 숨죽이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김 판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김 판관 나리. 방을 철저히 봉쇄해 주십시오. 그리고… 박 진사 댁의 모든 하인과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 주십시오. 살인자는… 지금 이 안에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얼어붙었다. 살인자는 이미 사라진 밀실의 범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모두를 옥죄었다. 이서림은 그의 말에 이어진 침묵 속에서, 마치 먹잇감을 탐색하는 사냥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