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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의 도시 – 1화: 보이지 않는 손님

**[장면 전환]**

**1. 한강변 고층 아파트 단지 – 밤**

(고요함. 도시의 불빛들이 강물 위로 아련히 춤춘다. 수많은 창문 중 한 곳에서 불이 켜진다. 지아의 아파트.)

**2. 지아의 아파트 현관 – 밤**

(지아, 30대 초반의 여성. 피곤한 얼굴로 디지털 도어락을 누른다. 번호키를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아마도 지친 하루의 흔적일 것이다.)

**지아 (내레이션)**
_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언제나 고요함이었다._
_그리고, 이 텅 빈 공간._

(현관문이 ‘삐빅’ 소리와 함께 열리고, 그녀는 굽이 높은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정돈한다. 늘 하던 습관이다.)

**지아 (내레이션)**
_가끔은 너무 고요해서, 외로움이 뼈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_
_하지만 동시에, 그 고요함이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_

(지아는 거실로 들어선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던한 인테리어. 넓은 창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야경을 볼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지아**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방을 소파 위에 툭 던진다.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충전기에 꽂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지아 (내레이션)**
_오늘도 지겨운 회의의 연속. 끝없이 쏟아지는 보고서들. 영혼 없는 미소. 그리고…_
_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내일._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향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하다.)

**3. 지아의 아파트 부엌 – 밤**

(지아는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전원을 누른다. 곧 물 끓는 소리가 ‘쉬이익’하고 들려온다.)

**지아 (내레이션)**
_이런 평범한 일상이,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끈이었다._
_변화란 달갑지 않은 것._
_특히, 알 수 없는 변화는 더더욱._

(갑자기 주방 형광등이 ‘팟!’ 하고 한 번 깜빡인다. 아주 짧은 순간의 암전.)

**지아**
“음? 벌써 전구가 다 됐나.”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천장을 한번 올려다본다. 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다시 찻잔을 꺼낸다.)

(물 끓는 소리가 멈추고, 지아는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른다. 그 순간, 싱크대 옆의 찬장 문이 ‘끼이익’ 하고 아주 미세하게 열렸다.)

**지아 (내레이션)**
_이상하다._
_문은 분명 닫혀 있었는데._

(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찬장 문을 바라본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접시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지아**
“내가 대충 닫았나.”

(고개를 저으며 다시 찻잔을 들고 찬장 문을 닫는다. 손으로 문을 닫자, 손끝에 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느껴진다.)

**지아 (내레이션)**
_피곤해서 별게 다 신경 쓰이네._

(지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한 온기에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낀다.)

**4. 지아의 아파트 거실 – 밤**

(지아는 따뜻한 차를 들고 소파에 앉는다. TV를 켜려고 리모컨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 위를 쓱 훑는다.)

**지아**
“리모컨이 어디 갔지?”

(테이블 위를 살피던 그녀의 시선이, 소파 등받이 위에 놓인 리모컨을 발견한다.)

**지아**
“아니, 내가 언제 저기에 놨지?”

(의아해하며 리모컨을 집어든다. 그리고 TV를 켠다. 뉴스 채널에서는 시끄러운 사회 문제가 흘러나온다. 지아는 채널을 돌린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는다.)

(그때, 거실 바닥에 놓인 작은 화분에서 ‘타닥’ 하고 작은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지아**
“뭐지?”

(화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화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고, 그 안에 심긴 작은 관엽 식물도 평화로워 보인다.)

**지아 (내레이션)**
_바람이 불었나? 창문은 닫혀 있는데._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려 한다.)

**지아**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예민해진 거야.”

(자신을 타이르듯 중얼거린다. 그리고 드라마에 집중하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 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갑자기 시계가 멈칫하더니, 벽에서 톡 하고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랑!’ 하고 유리 케이스가 산산조각 난다.)

**지아**
“악!”

(지아는 놀라서 차를 들고 있던 손을 놓친다. 찻잔은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뜨거운 차가 바닥에 흥건하게 스며든다.)

**지아 (내레이션)**
_이건… 이상해._
_절대로 평범한 게 아니야._

(지아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든다.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 사람 취급할 게 분명하다.)

(그녀는 겨우 용기를 내어 시계 파편 쪽으로 다가간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롭게 빛난다. 시계의 시침은 12시를 가리키고, 분침은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멈춘 시간.)

(그때, 뒤에서 섬뜩한 냉기가 등골을 타고 흐른다. 마치 누군가 바로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싸늘한 감각.)

**지아**
“누구… 누구세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잔뜩 겁먹은 채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텅 빈 거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 그녀가 던져놓았던 가방이 바닥에 엎어져 있고, 내용물들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지아**
“내 가방은… 저기에 있었는데…”

(가방 안의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지갑, 화장품 파우치, 그리고… 지갑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작은 열쇠고리 인형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지아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고리 인형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인형 옆에 작고 붉은 무언가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피가 굳어버린 듯한, 끈적하고 어두운 붉은색의 얼룩이었다.)

**지아**
“이게… 뭐야…”

(그녀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친다. 심장이 미친 듯이 pounding한다.)

(그때, 부엌에서 ‘쾅!’ 하고 큰 소리가 들린다. 마치 식탁이 통째로 넘어지는 듯한 굉음.)

**지아**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거실 한가운데 주저앉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분명히 혼자인데, 무언가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부엌 쪽에서 접시들이 깨지는 소리, 컵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쨍그랑! 와장창!’)

(지아는 양손으로 귀를 막는다. 눈을 질끈 감는다. 하지만 소리는 더욱 격렬해진다.)

(이제는 거실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들이 한 권씩 뽑혀 나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투둑! 퍽! 착!’)

(소파 옆의 스탠드 조명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뽑혀 넘어지며 ‘쿵!’ 하고 바닥에 부딪힌다. 유리 갓이 깨져 산산조각 난다.)

**지아 (내레이션)**
_이건 꿈이야. 그래, 악몽일 뿐이야._
_제발, 제발 깨어나게 해줘._

(그녀의 눈앞에서, 거실 테이블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빠르게 돌진한다!)

**지아**
“안 돼! 으아아아아악!!!”

(지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피한다. 테이블은 그녀가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쾅!’ 하고 떨어져 바닥을 부순다.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휜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벽에 바싹 붙어 웅크린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 극심한 공포가 그녀를 지배한다.)

(집안의 모든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팟! 팟! 팟!’ 암전과 불빛이 번갈아 가며 지아의 얼굴을 비춘다. 마치 지옥의 디스코텍처럼.)

(창밖의 도시 야경이, 이제는 그녀의 공포를 더욱 부각시키는 배경이 된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춘다. 불빛도 꺼진다. 다시금 깊은 어둠과 정적만이 아파트를 가득 채운다.)

(지아는 온몸을 덜덜 떨며 숨소리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지아 (내레이션)**
_끝난 건가?_
_아니야…_

(그때, 거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파편들 사이로, 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가 번져 나간다. 그리고 그 액체 위로, 누군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 액체를 밟고 지나간 것처럼.)

(발자국은 지아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철벅, 철벅’ 소리마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마침내 발자국이 지아의 바로 코앞에서 멈춘다. 지아는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눈을 감고, 그저 이 악몽이 끝나기를 바랄 뿐.)

(그녀의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섬뜩한 속삭임.)

**정체불명 (속삭임, 매우 낮고 으스스한 음성)**
“이제… 혼자가 아니야…”

(지아의 눈이 공포에 질려 번쩍 뜨인다. 그녀는 입을 억지로 벌리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다.)

(아파트 전체가 다시금 암흑 속에 잠긴다. 창밖의 도시 불빛만이, 그녀의 존재를 조롱하듯 반짝인다.)

**지아 (내레이션)**
_그날 밤, 나의 안식처는 무너져 내렸다._
_그리고 나는, 영원히 고요할 줄 알았던 도시 속에서_
_가장 끔찍한 비명과 함께 깨어났다._
_보이지 않는 손님에게, 내 모든 것을 빼앗긴 채._

**[장면 전환]**

**5. 아파트 외경 – 밤**

(지아의 아파트 창문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다. 수많은 도시의 불빛 속, 그곳만이 유독 차갑고 침묵으로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재앙의 시작을 알리듯.)

(화면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