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카디아의 어둠 (제37화)
밤의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은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웅장한 아치형 복도 위로 달빛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평소 활기 넘치던 마법석 램프들도 어딘가 스산하게 깜빡였다. 유진은 침대 시트를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 옆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세아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지만, 유진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젠장, 정말 잠이 안 와.”
낮게 중얼거렸다. 한 달 새 벌써 세 명의 1학년 학생들이 ‘개인 사정’으로 학원을 떠났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학원 측은 늘 그랬듯 침착하고 유려한 언어로 공지했지만, 유진은 그 매끄러운 단어들 뒤에 숨겨진 차가운 비늘 같은 것을 느꼈다. ‘개인 사정’으로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셋? 그것도 아무런 징후도 없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듯.
며칠 전, 그녀는 도서관 지하의 봉인된 구역 근처를 지나다 묘한 냄새를 맡았다. 희미하게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비릿한 금속성 향. 분명 코를 찌르는 피 냄새는 아니었지만, 더 깊숙이 파고드는 기분 나쁜 이질감이었다. 그 냄새는 그녀의 마법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자극했고, 잊고 있던 불길한 조각들을 다시 맞춰가는 계기가 되었다.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학원의 가장 오래된 건물인 ‘고대 기록 보관소’가 음침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의 지하에 봉인된 구역이 있다는 것은 학원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함부로 접근할 경우, 퇴학 이상의 징계가 내려진다는 경고도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손끝에서 푸른 마력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그녀의 마법소녀로서의 본능이, 혹은 어쩌면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 그녀를 강하게 이끌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아주 심각하게.
침대 옆에 세워둔 스태프를 쥐었다. 평소라면 깜찍한 리본과 반짝이는 장식이 빛나야 할 스태프는, 지금은 그저 차가운 금속과 보석의 감촉만을 전했다. 교복 위에 검은색 후드를 걸쳐 입고, 유진은 조심스럽게 기숙사 문을 열었다. 복도는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 복도를 지나, 비상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한밤중의 아르카디아는 고요 속에서 더욱 거대하고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바람이 낡은 창문 틈새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유진은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고대 기록 보관소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건물 입구는 견고한 마법 장벽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유진은 눈을 감고 마력을 집중했다. 그녀의 내면에 잠재된 마법소녀의 힘은 일반적인 학원 마법보다 훨씬 미묘하고 정교하게 마법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장벽의 미세한 틈새, 마력의 맥박을 짚어내자 결계가 잠시 일렁였다.
*쉬이이익-*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거대한 청동문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안쪽으로 열렸다. 안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입술을 깨물며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부 공기는 바깥보다 훨씬 차갑고 축축했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은 종이 냄새가 섞여 코를 자극했다. 그녀의 스태프 끝에서 작은 빛 구슬이 피어올랐다. 흐릿하지만 길을 밝히기엔 충분했다.
고대 기록 보관소는 이름 그대로 수많은 책장과 기록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유진의 목적지는 지상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낮에 맡았던 그 냄새의 잔향을 따라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발소리가 돌 바닥에 둔탁하게 울렸다.
건물 가장 깊숙한 곳, 낡은 책장들 뒤에 숨겨진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빛 구슬이 더욱 희미하게 깜빡였다.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차갑던 공기가 이 통로에서는 이상하게도 미지근했다. 그리고 다시, 그 냄새. 달콤하고 비릿한 금속성 향이 훨씬 강하게 그녀의 후각을 강타했다. 마치 이 공기 자체가 그 냄새로 포화된 듯했다.
통로 끝에 도달하자, 녹슨 철문이 나타났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섬뜩한 기운을 전했다. 문틈으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혹은 아주 낮은 주파수로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꾸우우욱… 으으으으…*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 쉬는 듯한, 혹은 심장이 뛰는 듯한 불규칙한 소리였다.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문을 잡아당겼다.
*끼이이이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유진의 숨통을 졸라왔다.
커다란 지하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기괴한 형상의 크리스탈이 우뚝 솟아 있었다. 단순히 거대한 크리스탈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섬뜩한 붉은빛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그리고 그 크리스탈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어린아이들의 손자국 같은 것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손자국 하나하나에서 희미한 마력 잔류가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발버둥 치다 새겨진 듯한 흔적이었다.
제단 주변 바닥은 끈적하고 짙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붉고 검붉은, 마법적으로 응고된 피 같은 것이었다. 그 위에는 학원 1학년 교복에 달린 명찰 조각이 뒹굴고 있었다. ‘송채린’. 최근 ‘전학’ 갔다고 공지된 학생의 이름이었다.
“말도… 안 돼.”
유진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달콤하고 비릿한 금속성 냄새가 이곳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 냄새는 바로 이 크리스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리스탈 내부에서, 붉은빛 사이로 희미하게 형상들이 일렁였다. 어린아이들의 형상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는 듯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유진은 그들의 눈빛에서 절규를 읽었다.
그 순간, 크리스탈의 붉은빛이 섬광처럼 폭발했다.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번개처럼 덮쳐왔다.
*쉬이이익!*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방금 전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검은 그림자가 뱀처럼 얽혀들었다. 형체가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어둠, 순수한 악의를 담은 그림자 덩어리였다.
그림자는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크르르르르….”
크리스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그림자의 윤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유진은 스태프를 꽉 쥐었다. 마법소녀의 힘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게… 대체 뭐야?!”
이곳에 숨겨진 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원 지하에 도사린 살아있는 악몽이었다.
그림자가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덮쳐왔다. 피할 곳은 없었다.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