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메아리: 03화. 미지의 속삭임
고래자리 호의 항해는, 30년 탐사 역사상 가장 고요하고도 지루한 여정이었다. 우주 탐사의 낭만 같은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허상이었다. 드넓은 암흑 속에서 먼지 한 톨 찾기 위해 무한에 가까운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 것. 그게 현실이었다.
“함장님, 졸음 운전은 좀…”
항해사 최민준이 입술을 삐죽이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눈은 피로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초광속 항해 중에도 시스템 모니터링은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함장 강진아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졸음 운전? 이 드넓은 우주에 충돌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게 더 대단한 발견이겠군.”
그녀의 말에 조타석의 최민준과 보조 이정호 대원이 동시에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함선은 마치 거대한 금속 고래처럼 심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창밖은 온통 검푸른 어둠뿐. 가끔씩 수만 광년 떨어진 희미한 별빛이 창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때였다.
메인 콘솔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익! 삐이익!’ 적막을 깨는 소리는 너무나 이질적이라 잠시 모든 승무원의 동작을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야, 민준?” 강진아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최민준의 얼굴에서 장난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는 콘솔 화면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 반응입니다! 탐사 이래 이런 파장은 처음 봅니다!”
과학 담당관 이선우 박사가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는 학구적인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었다.
“분석 결과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인가?”
“알 수 없습니다, 박사님. 모든 스펙트럼에서 벗어납니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최민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강진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항해 속도 20% 감소. 경계 태세. 모든 센서 최고 출력으로 가동. 이선우 박사, 즉시 에너지원 추적 및 분석 시작해.”
함선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외부 탐색 스캐너가 전례 없는 파장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스크린에 미약하게 잡히던 불확정적인 에너지는 점차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함장님! 위치 특정! 전방 0-0-7 섹터! 거리는 약 1,200만 킬로미터!” 최민준이 외쳤다.
“비주얼 확인 가능해?”
“아직입니다. 크기가… 일반적인 소행성대나 행성 조각과는 다릅니다. 이 정도 거리에선 포착되기 어려운데…” 이선우 박사의 눈이 스크린에 고정되었다.
수 분의 침묵이 흘렀다. 우주선 내부에는 오직 기계음과 승무원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외부 광학 센서가 섬광을 터뜨리며 이미지를 전송해왔다.
메인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형언할 수 없는 영상이 떴다.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그것은 거대했다. 단순히 크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별빛마저 집어삼킬 듯한 완벽한 암흑의 덩어리였다. 불규칙적인 다면체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 표면은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흡수하고, 소멸시키는 듯한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표면의 ‘결’이 꿈틀거리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명확한 ‘물체’였으나, 동시에 ‘공허’ 그 자체인 듯했다.
“크기 측정 불가…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최민준의 목소리가 넋 나간 듯 흘러나왔다. “접근 시도하면… 센서가 먹통이 됩니다.”
이선우 박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건… 자연적인 구조물이 아닙니다. 어떤 행성의 잔해도, 성간 먼지 구름도, 알려진 블랙홀의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인공물… 그것도 우리 문명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완벽한 외계 문명의 유물입니다!”
강진아는 홀로그램에 투사된 미지의 구조물을 응시했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격렬하게 뛰었다. 수십 년의 탐사 경험이 본능적으로 경고를 보냈다. ‘돌아서라. 접근하지 마라.’ 하지만 동시에, 과학자이자 탐험가로서의 욕망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더 가까이. 더 깊이.’
“고래자리 호, 현재 속도 유지. 정지 궤도까지 접근한다.” 강진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단호했다.
“함장님!” 최민준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위험합니다! 저게 뭔지 알 수도 없는데…”
“알아야지. 그걸 위해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야. 탐사 드론 ‘망원경’ 1호 출격 준비해. 박지훈 기술장, 원격 제어 링크 확보해.”
기술 담당관 박지훈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드론에 최신 방어막 시스템을 최대한 가동해야 할 겁니다. 저 에너지 파장은 예상치 못하게 튀고 있습니다.”
초고해상도 탐사 드론 ‘망원경’ 1호가 고래자리 호의 격납고에서 분리되어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함교의 모든 시선은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에 집중되었다. 드론은 조심스럽게 미지의 구조물에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홀로그램 영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다면체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떤 패턴은 움직이는 듯했고, 어떤 패턴은 희미한 빛을 내뿜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심장이 어둠 속에서 뛰는 것 같았다.
“드론, 100미터 접근! 안정성 양호!” 박지훈이 보고했다.
“더 가까이. 50미터까지.” 강진아의 눈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드론이 50미터까지 접근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드론의 외부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지지직거리더니, 전송되는 영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함장님! 드론 시스템에 이상 발생! 제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박지훈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홀로그램 화면 속의 외계 구조물 표면에서, 갑자기 빛이 솟아오르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빛이라기보다는, 어둠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표면에 나 있었던 것 같던 ‘결’들이, 마치 거대한 눈꺼풀이 열리듯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는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더 깊고, 더 완전한 어둠만이 드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선우 박사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모두의 시선이 이선우에게로 향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듯 초점이 풀려 있었다.
“이선우 박사! 괜찮습니까?” 강진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이선우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들려요… 들려요, 함장님! 어떤 소리가…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직접…!”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교 전체에 정전이 일어났다. 모든 불이 꺼지고, 비상등만이 붉게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정적 속에.
*쉬이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차가운 속삭임이 고래자리 호의 모든 승무원들의 뇌리를 동시에 강타했다. 그것은 언어도 아니었고, 물리적인 소리도 아니었다. 단지 어떤 ‘정보’가, 강압적으로 그들의 정신을 꿰뚫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강진아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비상 동력! 전 함, 비상 후퇴! 최대 출력!”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다시 번쩍 켜지며 마지막 장면을 송출했다.
그것은 드론 ‘망원경’ 1호의 시점이었다.
미지의 구조물의 거대한 ‘틈’ 사이에서, 무언가 길고 가느다란 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수백 개의 촉수 같기도 했고, 거대한 뼈대의 일부 같기도 했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것들은, 망원경 1호를 향해, 그리고 고래자리 호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