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공기가 고택의 낡은 창문을 흔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는 흙과 오래된 나무 냄새, 그리고 섬뜩하리만큼 비릿한 금속 향이 섞여 있었다. 사건 현장, 신유민의 서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경찰들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알 수 없는 공포가 역력했다.
김형사는 이마를 짚었다. “젠장, 이런 건 또 처음이군. 밀실 살인이라니, 그것도 이런 식으로.”
방 중앙에는 명문 신씨 가문의 후계자, 신유민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피처럼 붉거나 숯처럼 검은 액체로 그려져 있었다. 눈은 공포에 질려 한껏 커져 있었고, 마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을 본 듯 텅 비어 있었다. 흉기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는 날카롭고도 정교한 단 한 번의 상흔만이 남아 있었다. 그 외에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기이한 현장이었다.
“창문은 모두 안쪽에서 잠겼습니다. 빗장이 튼튼하게 채워져 있었고요.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쪽에서 열쇠가 꽂힌 채 잠겨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한 수사관이 보고했다.
“그럼 자살이라는 건가? 이런 끔찍한 방식으로? 자기 가슴에 저렇게 정확하게 칼을 꽂고, 저런 이상한 문양을 그리고 죽었다고?” 김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흉기가 없습니다. 자살이라면 흉기가 있어야 할 텐데요. 시체 근처는 물론, 방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떤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였다. 닫혀 있던 서재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짙은 남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앙상한 몸과 달리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새카만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방 안의 모든 것을 훑어보는 듯했다. 그의 이름은 서은혁. 세간에는 ‘사신(死神)의 탐정’으로 불리는,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진 남자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형사님.” 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바닥의 문양과 시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고, 서탐정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골치 아픈 사건입니다.” 김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밀실 살인인데, 자살이라고 보기엔 너무 잔혹하고, 타살이라고 보기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은혁은 아무 말 없이 서재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바닥의 문양 하나라도 망가뜨릴세라 조심스러웠다. 시신 주변을 한 바퀴 돈 그는 굳은 표정으로 바닥의 문양들을 응시했다.
“신유민 씨는 오컬트에 심취해 있었습니까?” 은혁이 물었다.
“그렇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문서나 주술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사실 저희도 그 문양 때문에 처음엔 악마 숭배나 주술 의식 같은 걸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실은 설명이 안 됩니다.” 김형사가 답했다.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창문, 벽난로, 책장, 그리고 다시 문으로 향했다. 문은 육중한 참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앤티크한 황동 잠금장치에 열쇠가 안쪽에서 꽂혀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문 잠금장치와 열쇠를 만졌다. 손가락이 미세한 부분을 스쳐 지나갔다.
“외부 침입은 없었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열쇠도 안쪽에 꽂혀 있었다… 이건 말 그대로 ‘닫힌 방’이군요.” 은혁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럼 범인은 어떻게 나갔을까요?”
김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모르니까 저희도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겁니다.”
은혁은 문 근처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낡고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다. 고대 신화를 묘사하는 듯한 기이한 생명체들이 수놓아진 태피스트리는 벽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은혁은 태피스트리 가장자리를 손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평범한 벽지였다.
“벽은 모두 단단한 콘크리트입니다. 비파괴 검사도 해봤지만 숨겨진 통로는 없습니다.” 수사관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렇겠죠.” 은혁은 태피스트리를 다시 내리고는 서재를 가로질러 거대한 앤티크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은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실내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거울 표면에 손을 대었다가 이내 몸을 돌려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문틀 옆, 바닥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벽에는 낡은 장식용 환기구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격자무늬가 벽 안쪽으로 살짝 들어간 형태였다. 수십 년은 되었을 법한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은혁은 그 먼지 위로 미세한 스크래치 자국을 발견했다. 손톱으로 긁은 듯한, 아주 희미한 흔적이었다.
“이것 좀 보시죠, 김형사님.” 은혁이 손가락으로 격자무늬를 가리켰다.
김형사가 다가와 살펴보았다. “환기구 아닙니까? 오래돼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요.”
“네, 오래된 환기구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격자무늬의 한 모서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려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 위에 이 흔적은… 최근에 생긴 겁니다.”
은혁은 다시 문으로 돌아가 열쇠를 잡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세심하게 열쇠를 살펴봤다. 그리고 김형사를 불렀다. “김형사님, 이 열쇠를 보시죠. 안쪽 면에 아주 미세한 마모 흔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용으로는 생기기 어려운, 불규칙한 형태의 마모입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비틀리거나, 반복적으로 긁힌 것 같은.”
김형사가 열쇠를 들여다봤다.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은혁이 열쇠를 다시 잠금장치에 꽂고는 이내 빼냈다. 그리고 손전등을 꺼내 잠금장치 안쪽을 비추었다. “잠금장치 안쪽 벽면에 아주 미미한, 보이지 않는 잔여물이 남아 있습니다. 마치 먼지처럼 보이지만, 일반적인 먼지는 아닙니다.”
그는 잠금장치에서 채취한 미세한 이물질을 현미경 슬라이드에 옮겨 담았다. “이건… 얇고 유연한 금속성의 흔적입니다.”
김형사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그게 뭘 의미합니까?”
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김형사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답을 꿰뚫고 있었다. “범인은 이 서재 안에서 신유민 씨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런 기이한 문양들을 남겨 오컬트적인 살인으로 위장하려 했죠. 죽은 신유민 씨의 표정이 그토록 끔찍했던 것은, 그가 생전에 마주했던 공포와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믿었던 오컬트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악의를 마주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밀실은요? 범인이 어떻게 나갔습니까?” 김형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범인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요.” 은혁이 손전등을 다시 아까 그 황동 격자무늬 환기구로 향했다. “이 환기구는 사실 벽 내부의 아주 좁은 통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낡은 구조물이죠. 하지만 범인은 이 통로를 이용했습니다.”
김형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격자무늬를 쳐다봤다. “하지만 저 좁은 틈으로 사람이 어떻게 나간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지 않습니까?”
“사람이 직접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은혁은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소였다. “범인은 신유민 씨를 살해한 후, 이 문을 안쪽에서 열쇠로 잠갔습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특수 도구를 사용한 겁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아주 얇고 길며 유연한, 그러나 강도가 높은 특수 금속 막대나 와이어를 이 환기구 구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 도구의 끝은 특수한 집게 형태로 되어 있었겠죠. 그리고 그 집게로 잠금장치 안쪽에 꽂혀 있는 열쇠를 움켜쥐었습니다.”
김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쇠를요? 그걸 어떻게…”
“네, 열쇠를 잡고 외부에서 문을 잠근 겁니다. 안쪽에서 잠근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죠. 문은 안쪽 열쇠로 잠긴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외부에서 그 열쇠를 조종해 잠근 겁니다. 그리고 잠근 후에는 열쇠를 다시 원래 위치에 정확히 밀어 넣어 안쪽에서 잠긴 듯한 완벽한 밀실을 만든 겁니다. 제가 발견한 열쇠의 마모 흔적은 바로 이 특수 도구와의 마찰로 생긴 흔적이고, 잠금장치 내부의 금속 잔여물은 도구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조각들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모든 경찰관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탄이 교차했다. 밀실의 트릭이 눈앞에서 완벽하게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환기구의 미세한 스크래치와 비틀림은 도구를 삽입하고 조작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고요.” 은혁이 덧붙였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닙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극도로 영리한 살인입니다. 오컬트적인 요소들은 단지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교하게 짜인 함정이었을 뿐입니다.”
김형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범인은 그 특수 도구를 이용해 열쇠를 조작하고, 다시 그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간 겁니까?”
“네. 범인은 서재를 떠나기 전에 이미 문을 잠그고 이 환기구를 통해 열쇠를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나가면서 그 특수 도구를 완벽하게 회수했겠죠. 그는 처음부터 이 고택의 구조와 신유민 씨의 오컬트 취향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은혁의 눈빛은 멀리,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응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왜 이런 복잡한 트릭을 사용해야 했을까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마치 영적인 존재의 소행처럼 보이도록 꾸며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진짜 어둠이겠죠. 신유민 씨는 오컬트를 믿었지만, 그의 죽음은 인간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어쩌면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훨씬 더 섬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재의 차가운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밀실의 수수께끼는 풀렸다. 그러나 그 뒤에 도사린 오컬트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었고, ‘사신(死神)의 탐정’ 서은혁은 그 그림자의 깊이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들의 진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