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17화: 만상귀진의 끝에서

숨 막히는 침묵이 협곡을 감쌌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돌무더기였으나, 이 ‘만상귀진(萬象歸眞)’이라 불리는 미궁은 단순한 길 찾기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길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걷는 내내 바닥에서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미궁 곳곳에 숨겨진 함정은 오직 ‘기감(氣感)’으로만 감지할 수 있었으며, 흐트러진 기운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며칠 밤낮을 걸었는지, 시간의 개념마저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청운은 벽에 기대어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며칠 전 겪었던 환영진의 여파로 내상이 남아있었지만, 내색할 틈도 없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모든 무인이 그러했듯, 그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 너머에는 천하의 운명이 걸린 ‘절대 무원(絶代武院)’의 비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를 포함해 소수의 생존자만이 이 지옥 같은 미궁의 마지막 관문에 도달했을 터였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청운은 자신의 길에 대해 한 번도 회의감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미궁의 고독과 위협은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의문을 심었다. 과연 이 모든 희생이 가치 있는 일일까?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그의 손에 들린 낡은 검, ‘청운검(靑雲劍)’이 뿜어내는 미미한 온기가 그를 지탱할 뿐이었다.

그가 다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어두운 회랑 저편에서 기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껄껄거리는 소리가 돌 벽에 부딪혀 기괴하게 증폭되었다.

“크하하하! 기어이 여기까지 기어들어왔구나, 애송이.”

웃음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혈륜객(血輪客)’이었다. 핏빛으로 물든 그의 두 눈은 살기(殺氣)로 번뜩였고, 야윈 몸은 마치 짐승처럼 언제든 달려들 태세였다. 등에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날카로운 톱니가 박힌 거대한 바퀴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혈륜(血輪)’이라 불리는 그것은 혈륜객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살아있는 재앙으로 변하는 흉기였다.

청운은 천천히 검집에서 청운검을 뽑아 들었다. 낡았지만 검날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검은 달빛을 닮은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혈륜객,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청운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는 이 잔혹한 살인귀와의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혈륜객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무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살수였다.

“흥, 이 자리에선 모두가 잠재적 적수일 뿐. 네놈의 어설픈 정의감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혈륜객은 피 묻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어디서 굴러온 잡것이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나. 목숨을 내놓는 게 순리일 게다.”

청운은 검 끝을 살짝 들어 혈륜객을 겨냥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길.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오. 혈륜객, 당신은 그 길이 아닙니다.”

“건방진 소리! 그 길을 누가 가든 내 알 바 아니지. 그저 너를 밟고 내가 가면 그만! 이 목숨은 내가 가진다!”

혈륜객의 등에서 거대한 혈륜 두 개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그의 양손에 들렸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혈륜의 톱니들이 서로를 갈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붉은 강기가 혈륜을 휘감았고, 그 기세만으로도 주변의 돌들이 부스러져 내렸다.

“받아라! 혈륜난무(血輪亂舞)!”

혈륜객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두 개의 혈륜이 거대한 핏빛 원반이 되어 청운을 향해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회랑 안의 공기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했다. 피 냄새와 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 좁은 회랑에서 저 거대한 살상 무기를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청운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혈륜의 궤적은 마치 느린 그림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터득한 ‘운류보(雲流步)’가 그의 발밑에서 펼쳐졌다. 흐르는 구름처럼 가볍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그는 섬뜩하게 날아드는 혈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흥, 제법이군!”

혈륜객이 다시 혈륜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더욱 빠르고 강하게, 청운의 사방을 에워싸듯 날아들었다. 좁은 회랑은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쾅! 쾅! 혈륜이 벽을 강타할 때마다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고, 천장에서는 돌멩이들이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청운의 청운검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날카로운 검날이 아니라, 검의 옆면으로 혈륜의 공격을 흘려보내거나 쳐냈다. ‘청풍검결(淸風劍訣)’의 진정한 가치는 흘려보내는 유연함과 받아치는 견고함에 있었다. 마치 바람이 바위를 만나 부드럽게 돌아나가듯, 그의 검은 혈륜의 광폭한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혈륜객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강기는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았다. 혈륜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핏빛 강기가 청운의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혈해만천(血海漫天)!”

혈륜객이 외치자, 두 개의 혈륜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하나의 거대한 핏빛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회오리는 주변의 돌무더기와 흙먼지를 빨아들이며 더욱 거대해졌고, 회랑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청운을 덮쳐왔다. 그것은 단순히 무기의 공격이 아니었다. 혈륜객의 모든 살기와 내력이 응축된 절명 일격이었다.

청운의 눈앞이 온통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이대로 맞으면 몸뚱이가 산산조각 날 터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이 오직 검 끝에 집중되었다. 그의 내면에서 푸른 강기가 용솟음쳤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던 순수한 내력이 검날을 따라 흘러들어갔다. 청운검이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품은 듯한 오묘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발짝 내디뎠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한 듯한 찰나, 청운검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 한 수는 청풍검결의 마지막이자, 청운 자신이 재창조한 최강의 초식, ‘천운일격(天雲一擊)’이었다.

쉬이이잉-!

푸른 검광이 핏빛 회오리를 향해 쏘아졌다. 강렬한 푸른 기운과 맹렬한 핏빛 기운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회랑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주저앉았다. 발밑의 땅이 요동치고, 거대한 굉음이 모든 것을 삼켰다. 잠시 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먼지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묵직한 침묵 속에서, 희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콜록…”

누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과연, 그곳에 쓰러진 것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 기침 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