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
민준은 익숙한 침묵 속에서 퇴근했다. 늦은 밤, 도시의 소음은 얇은 방음창을 뚫고 희미하게 들려올 뿐, 그의 열두 평 남짓한 아파트는 고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퀘퀘한 복도 공기 대신 어둠과 함께 묵직한 정적이 그를 맞았다. 켜놓고 나간 거실 스탠드 불빛이 나른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피곤한 한숨을 쉬며 벽에 걸린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늘 그랬듯, 그의 원룸은 깔끔했다. 며칠 전부터 정리할 틈도 없이 바빴던 회사 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강박 때문에 흐트러진 꼴을 보지 못하는 성미였다. 소파 위에는 출근 전 개어놓은 담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다 마신 커피잔 하나 없이 깨끗했다. 완벽하게 ‘민준의 집’다운 풍경. 그러나 왠지 모르게, 오늘은 미세하게 어긋난 무언가가 있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현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 섰다. 무언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주 작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제법 덩치 있는 테이블이었다. 정확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였다. 분명 그는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잡지를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표지가 바닥을 향하도록 뒤집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잡지는 펼쳐진 채로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그가 보던 페이지가 아닌, 아무렇게나 펼쳐진 듯한 모습으로.
‘내가 깜빡했나?’
피곤해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요즘 같아서는 어제저녁을 뭘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지경이었으니.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잡지를 집어 들었다. 다시 책꽂이에 꽂으려고 몸을 돌리던 그의 눈에 이번엔 싱크대 상부장 문이 들어왔다. 왼쪽 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틈이었다.
‘이번엔 진짜 내가 안 닫았나?’
그는 출근 전에는 꼭 모든 문을 닫는 습관이 있었다. 혹시 모를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아파트는 17층에 위치해 있었고, 침입자가 들어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습관은 습관이었다. 민준은 상부장 문을 닫았다. ‘철컥’하고 완벽하게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민준은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시계는 이미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고요한 밤이었다. 도시의 소음조차 완전히 잠든 듯했다. 그때였다. 저기, 침실 문 쪽에서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스스스슥. 마치 손톱으로 문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민준은 숨을 멈췄다. 혹시 옆집에서 나는 소리일까? 그러나 소리는 너무나 분명하게 그의 침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귀는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시, 스스슥. 이번에는 소리가 좀 더 가까워진 듯했다. 침실 문 바로 앞, 그의 방문을 긁는 소리였다.
“누구… 없어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잠긴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허공에 흩어졌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소리도 멈췄다.
민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어쩌면 고양이가 들어왔을 수도 있을까? 하지만 그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게다가 17층 아파트에 고양이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천천히 침실 문 쪽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플래시를 켰다.
아무것도 없었다.
문고리는 굳게 잠겨 있었고, 문틈 사이로는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도 긁힌 자국은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피곤해서 환청이 들렸나 보다.’
요즘 야근에 시달리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하지만 밤은 끝날 줄을 몰랐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불을 끄자마자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분명한 소리였다. 무언가 바닥에 떨어진 소리.
민준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섰다. 그는 망설였다. 다시 나가 봐야 할까? 아니면 그냥 자는 척해야 할까? 본능적으로 그는 후자를 택하고 싶었지만, 그의 강박적인 성격이 그를 다시 거실로 이끌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플래시 불빛이 길게 뻗어나갔다. 거실을 비추자, 그의 눈은 곧장 그 물체를 발견했다.
책이었다. 거실 벽면에 붙어 있던 키 큰 책장, 그중에서도 가장 위 칸에 꽂혀 있던 묵직한 하드커버 책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툭 떨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격렬하게, 표지가 뒤집힌 채 바닥에 부딪힌 흔적이 역력했다.
민준은 멍하니 책을 응시했다. 그는 그 책을 꺼내 읽은 적이 없었다. 그저 장식용으로 꽂아둔 것뿐이었다. 게다가 가장 위 칸에 있던 책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 누가 던진 것처럼?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집 안에 아무도 없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졌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를 찾듯이.
아무도 없었다.
숨을 참고 있던 그는 다시 책을 응시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천천히 책에 다가갔다. 책을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숙이려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익-!**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비명을 지를 뻔하며 몸을 돌렸다.
소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그의 3인용 소파가, 마치 누군가 강제로 끌고 간 것처럼 바닥에 길게 끌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소파의 한쪽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앞에서, 소파가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밀지 않았는데.
민준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울렸다. 그는 입을 틀어막았다.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억눌렀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환청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서, 지금,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소파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플래시 불빛이 흔들리는 그의 손에 들려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소파를 넘어, 그 너머의 창문을 향했다. 캄캄한 밤하늘만이 보였다.
그때였다. 창문 너머에서, 어둠 속에서, 무언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한 사람 형상이었다. 그 형상은 창문 너머에서 민준을 똑바로 응시하는 듯했다.
민준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그 그림자에 꽂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섬뜩하리만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목소리는 그의 귀에 속삭이듯 들려왔지만, 동시에 그의 아파트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아파트 안에 있었다. 그를 보고 있었다. 그를 향해 말했다.
민준은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그의 온몸은 소름으로 뒤덮였다. 그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얼어붙은 그의 시선이 창문 밖의 어둠 속에 박혔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밤공기만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그의 뺨을 스쳤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평범한 아파트의 거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균열이었다.**
그의 삶에, 이 세계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하는 끔찍한 균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