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하준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끈적한 피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앞을 가로막은 최원혁의 실루엣은 그림자처럼 거대했고, 그의 손에는 하준이 평생을 바쳐 개발한 ‘시간의 핵’ 설계도가 들려 있었다.

“원혁아… 어째서…”

목소리가 찢어졌다. 원혁은 무릎을 굽혀 하준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고, 그 어떤 후회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준아. 이제 끝이야. 모든 건 네가 너무 순진했던 탓이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그 설계도를, 원혁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여유롭게 펼쳐 보였다. 차가운 강철 빛이 하준의 눈에 박혔다.

“이건… 이건 네가 가질 수 없어… 네가 이걸 건드리면…”

하준의 목에서 피가 울컥 솟았다. 원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성공을 향한 광기만이 가득했다.

“내가 가지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이제 네가 가질 수 없는 거야. 잘 가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원혁의 손이 하준의 가슴에 꽂힌 칼자루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하준은 마지막으로 원혁의 얼굴을 노려봤다.

‘최원혁… 네놈… 반드시… 지옥 끝까지 쫓아가…!’

세상이 암전됐다.

***

…그리고 다시 빛이 터졌다.

숨이 막혔다. 폐에 강제로 공기가 밀려들어오는 고통에 하준은 컥컥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 뒤는 차가운 바닥이 아니라, 부드러운 침대 매트리스였다.

눈을 떴다. 낯설면서도 지독하게 익숙한 풍경. 낡은 책상, 먼지 앉은 책꽂이, 삐걱거리는 의자.

하준은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칼자국? 핏자국? 아무것도 없었다. 땀으로 축축한 셔츠만 느껴질 뿐이었다.

거울이 보였다. 하준은 비틀거리며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낯선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낯선 게 아니었다. 잊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이었다. 앳된 얼굴, 희망에 차 있던 눈빛.

창밖을 봤다. 맑은 하늘,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 그리고 그가 살았던 미래 도시의 삭막한 풍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평범한 주택가의 모습.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발견했다. 달력에는 빨간색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20XX년 7월 12일. 대학교 졸업 프로젝트 최종 제출 D-30]

하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20XX년. 자신이 원혁과 함께 ‘시간의 핵’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해.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10년 전이었다.

***

몸을 떨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 생생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 심장을 조여오는 통증. 피비린내 대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죽음 직전,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간절한 염원. ‘되돌리고 싶다… 모든 것을… 원혁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가?

하준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젊고, 순진하고, 아직은 고통을 모르는 얼굴. 그 얼굴에 점차 싸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혼란과 공포 대신, 차가운 증오와 계산적인 빛이 번뜩였다.

‘최원혁…’

그 이름 세 글자가 혀끝에서 얼음처럼 차갑게 굴렀다.

지금은 아직… 그 녀석이 가면을 쓰고 가장 친한 친구 행세를 하고 있을 때다. 아직 그의 야망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때.

아직은… 기회가 있었다.

하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기억했다. 원혁이 어떻게 자신을 속였는지, 어떻게 자신의 연구를 훔쳤는지, 어떻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모든 것이 생생했다.

이번에는 달라. 이번에는 절대로 당하지 않아.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익숙한 부팅 소리, 익숙한 바탕화면.

검색창에 ‘최원혁’이라는 이름을 입력했다. 곧바로 그의 SNS 계정이 나타났다. 최근 게시물은 그의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밝게 웃고 있는 원혁의 얼굴. 그의 옆에는 하준의 얼굴도 있었다.

사진 속의 하준은 활짝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의 가면 뒤에 숨겨진 칼날을 보지 못한 채.

하준은 그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미소… 그 역겨운 미소를 다시 볼 줄이야.’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원혁을 향한 복수의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를 막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를 자신과 똑같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이제 그의 눈은 과거의 순진한 눈이 아니었다. 미래를 기억하고, 죽음을 경험한 자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이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주소록에서 ‘최원혁’이라는 이름을 찾아 손가락으로 눌렀다.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밝고 경쾌한 원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아? 웬일이야, 이 시간에? 아직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준은 입술을 씰룩였다. 그 목소리, 그 말투. 과거에는 그토록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웠던 목소리가 이제는 역겨운 비수처럼 들렸다.

“원혁아.”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차분하고 낮게 깔렸다. 복수를 다짐하는 자의 목소리였다.

“할 얘기가 좀 있어. 지금… 잠깐 만날 수 있을까?”

수화기 너머, 원혁의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의아함이 스쳤다.

“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인데?”

하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달빛이 희미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중요한 이야기야. 네게도… 나에게도.”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복수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