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아니, 카인. 대체 왜 거기서 ‘하품’을 해?”

한여름은 팔짱을 낀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카인을 노려봤다. 푹신한 카페 소파에 몸을 파묻은 카인은 초콜릿 라떼 거품을 입술에 묻힌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품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 아닌가. 이 정도 집중력 저하는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라고 판단했다.”

“평범한 모습 좋아하시네! 눈깔이 뽑혀라 하품을 하냐? 그것도 내가 ‘우리 여름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하는 장면에서! 누가 보면 내가 재미없는 얘기해서 너 지루해 죽는 줄 알겠어!”

“하지만 너는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나. 지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어젯밤 ‘그 문제’로 자료 조사를 하느라 밤을 새워서.”

카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름은 냅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쳤다. 주변 테이블에서 일제히 시선이 꽂혔지만 여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쉬잇! ‘그 문제’라는 말은 금지어라고 했지! 옆에 귀 달린 놈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카인은 여름의 호들갑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캔하듯 훑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염려 마라, 여름. 이 카페에서 우리의 정체를 알 만한 존재는… 없다.”

카인의 말에 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꼭 뭔 일이 터지더라.”

여름은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따뜻한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평범한 카페 풍경이었다. 창가에 앉은 노부부가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젊은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오히려 불안했다.

그때였다. 카페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키 크고 마른 체구의 남자가 들어섰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고, 얇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그의 손에는 낡은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더니 카인과 여름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여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이상해.’

남자는 멀리 떨어진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굳이 이 넓은 카페에서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하다니. 그리고 커피 한 잔 시키지도 않고 가방만 무릎에 올린 채 우리 쪽을 흘깃거렸다.

여름은 얼른 카인의 정강이를 툭 쳤다.

“야, 저 남자 좀 봐. 아까부터 우리 쪽만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카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남자를 봤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여름은 카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왜? 뭐야? 너 아는 사람이야? 설마… ‘그쪽’ 사람?”

카인은 시선을 돌려 여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색으로 변했다.

“알려줄 수 없다.”

“뭐? 지금 그걸 비밀이라고 해? 야, 너 진짜…!”

여름은 목소리를 낮춰 카인을 다그쳤다.

“지금 저 아저씨가 우리 쪽을 감시하는 것 같단 말이야! 너 혹시… 또 뭐 규칙 어긴 거 있어?”

카인은 한숨처럼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규칙은 어기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찰부’ 소속의 박 검은. 그는… 원칙주의자다.”

“감찰부? 원칙주의자? 망했네! 야, 그럼 우리 들킨 거 아니야? 어떡해? 네가 인간이랑 어울려 다니면 안 되는 규정이 있었잖아! 그것도 나랑! 여자랑!”

여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크게 말해버렸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휴.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과 교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다만, ‘과도한 감정 교류’는 경계 대상이다. 그리고 너는…”

카인의 시선이 여름의 눈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여름의 뺨을 발그레하게 만들 만큼 뜨거웠다. 여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감정 교류’ 대상이지.”

여름의 심장이 다시 ‘쿵’ 했다. 이번에는 불안함 때문이 아니라, 카인의 달콤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망할! 이런 상황에서 로맨틱한 멘트를 날리다니! 그 박 검은인지 뭔지 하는 아저씨가 다 듣겠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여름은 다급하게 속삭였다. “어떻게 해야 해? 저 아저씨 뭔가 서류 같은 걸 꺼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박 검은는 가방에서 얇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카인과 여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막역한 사업 파트너’ 관계다.”

“뭐? 사업 파트너? 갑자기?” 여름은 황당했다. “무슨 사업? 우리 지금 카페에서 데이트 중이었잖아! 초콜릿 라떼 마시면서!”

“초콜릿 라떼는 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지금부터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업 기획’을 논의하는 중이다.”

카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내가 시그널을 주면, 자연스럽게 따라와라.”

여름은 어리둥절했지만, 카인의 진지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도 없었다.

카인은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했다. 물론 그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말했다.

“하 대표님. 지난번 기획안 검토는 잘 되셨습니까?”

여름은 숨이 턱 막혔다. 하 대표님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대표가 됐어! 그리고 카인 너, 목소리가 평소보다 세 톤은 더 낮아졌잖아! 완전 변조 수준이잖아!

하지만 여름은 카인의 눈빛이 보내는 ‘따라와’라는 메시지에 필사적으로 맞춰주기로 했다.

“아… 카 이사님. 네, 물론이죠.” 여름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음… 검토 결과… 아주 고무적이었습니다.”

‘고무적’이라는 단어를 뱉으면서 여름은 속으로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었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특히 ‘프로젝트 페르세포네’의 초기 시장 진입 전략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카인은 말을 흐리며 찻잔을 들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박 검은 쪽으로 향했다. 박 검은는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저희가 감당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아직 신생 기업이니 말이죠.”

‘프로젝트 페르세포네’라니! 여름은 카인의 창의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카인이 제법 자연스럽게 ‘척’ 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분명 평소에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여름은 얼른 생각했다. 신생 기업? 재정? 좋아, 내가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지.

“음… 카 이사님의 우려도 일리는 있습니다.” 여름은 허세를 부리듯 턱을 괴었다. “하지만 저는 이번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초기 투자는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핵심 기술… 즉, ‘시공간 왜곡을 통한 입체적 콘텐츠 구현 기술’은 시장을 뒤흔들 것입니다.”

여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시공간 왜곡? 입체적 콘텐츠? 완전 허무맹랑한 소리 아닌가? 하지만 그럴수록 더 그럴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름은 더 과장해서 말했다.

카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여름의 기발한(?) 거짓말에 그도 살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대표님의 통찰력은 항상 저를 감탄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때였다. 박 검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수첩과 펜이 여름의 눈에 확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름의 심장이 발뒤꿈치까지 곤두박질쳤다.

‘젠장, 들켰어!’

카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박 검은에게 향해 있었다.

“저는… 아직도 그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사용자들의 ‘정신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할 수 있습니다.”

카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낮게 깔렸다. 그의 말 속에는 여름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안전성? 정신적 안정? 심각할 수 있다?

여름의 머릿속에서 전구가 ‘번쩍’ 하고 켜졌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이 기술의 ‘위험성’으로 포장해서 도망갈 구실을 만들고 있는 거야!

박 검은가 거의 테이블까지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매서웠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여름과 카인을 가리키려는 듯했다.

바로 그때, 여름은 벌떡 일어섰다.

“카 이사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여름은 과장된 동작으로 카인에게 손을 내저었다. “저희 ‘(주)숨바꼭질’은 단 한 번도 안정성을 간과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의 기술은 그 어떤 사용자에게도 ‘정신적 데미지’를 입히지 않습니다!”

여름은 말을 쏟아내며 카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젠장, 이 문제는 지금 당장 본사로 돌아가서 다시 논의해야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도 못 참겠습니다!”

카인은 여름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여름에게 몸을 맡겼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고 테이블을 돌아 뛰쳐나갔다. 박 검은가 팔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여름은 그의 팔을 휙 피하며 외쳤다.

“카 이사님, 빨리요! 저희의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저런 의심 가득한 시선은 저희에게 모욕적입니다!”

카인은 여름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카페 문으로 향했다. 여름은 박 검은가 뒤에서 뭔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젠장, 망할 감찰부! 감찰은 무슨 감찰이야! 우리 사업 방해하지 마!” 여름은 거의 울부짖는 수준으로 외치며 카인과 함께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딸랑-!’

카페 문이 닫히고, 시끄러운 서울의 거리가 우리를 맞았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은 채 무작정 뛰었다. 종로의 번잡한 거리를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다. 뒤에서 박 검은가 쫓아오는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낡은 상가 건물들 사이로 숨겨진 좁은 길이었다. 그제야 여름은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망할…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카인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여름을 바라봤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서려 있었다.

“하 대표님. 방금 그 ‘시공간 왜곡을 통한 입체적 콘텐츠 구현 기술’과 ‘(주)숨바꼭질’은…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여름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카인의 팔을 ‘퍽’ 하고 때렸다.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너 진짜 사람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데 재주 있다! 근데, (주)숨바꼭질? 너도 그 순간에 맞춰서 대단했다, 진짜!”

카인은 여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위기 상황에서는 너의 순발력이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정신적 데미지’라는 표현도 아주 적절했어.”

“닥쳐!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잖아! 대체 뭘 그렇게 규칙을 어겨서 그 아저씨가 너를 감시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 봐! 또 몰래 인간 드라마 봤지? 아니면…”

여름은 문득, 카인의 손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깨달았다. 아직까지 카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조금은 거칠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온기였다.

여름은 황급히 손을 놓으려 했지만, 카인이 여름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잡아왔다.

카인의 붉은 눈동자가 여름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봤다. 골목길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여름아.”

카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울렸다. 아까의 진중한 ‘이사님’ 목소리가 아닌, 여름만이 아는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규칙을 어긴 적이 없다.”

그는 여름의 엄지손가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만… 너와의 ‘과도한 감정 교류’는… 감찰부에게는 어쩌면 ‘규칙 위반’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여름의 심장이 다시 ‘쿵’ 했다. 이번에는 너무나도 확실한 설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와 이 감정을 나누는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카인은 여름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의 눈빛은 짙은 그림자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저런 감찰부 녀석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다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금지된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금지된 사랑.

여름은 그 말이 가진 무게감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그 어떤 위험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여름은 목이 메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속 도망 다닐 거야?”

카인은 여름을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밝았다.

“아니. 도망 다니는 것은 재미없다.”

그는 여름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으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햇살이 드는 큰길로 나섰다.

“우리가 금지된 사랑을 나눈다면, 더더욱 들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리고… 이 금지된 사랑을 더더욱 대담하게 나누어야겠다.”

여름은 카인의 당찬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담하게 나누어야겠다니. 이 남자,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야! 근데 그럼 (주)숨바꼭질은 어떡하고! 프로젝트 페르세포네는? 그 ‘시공간 왜곡 기술’은?”

카인은 여름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다음 데이트 때 ‘기술 개발 회의’를 하면서 논의해 보지.”

“이게 지금… 데이트냐, 회의냐!”

여름은 카인의 등짝을 때렸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박 검은인지 뭔지 하는 감찰부 아저씨는 분명 앞으로도 끈질기게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뭐, 어때.

‘이 금지된 사랑, 더 재밌어질 것 같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은 채, 활짝 웃으며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이 금지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