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의 장막이 서울의 잿빛 하늘을 드리울 때, 도시의 불빛은 더욱 간절하게 반짝였다. 고층 빌딩의 숲 사이, 퇴근길 인파에 밀려 걷던 현우는 낡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몸을 맡긴 채,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갔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지루한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모니터 앞에서 숫자와 씨름하는 시간들. 가끔은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처럼 느껴져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익숙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으슥한 담벼락 너머로, 재개발을 기다리는 허름한 주택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오래된 절터였는지, 아니면 그저 낡은 사당이었는지 알 수 없는 폐허. 붉게 녹슨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틈새로 기이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에 현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착각일 리 없었다.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푸른색과 금색이 뒤섞인 오묘한 섬광이 폐허의 내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낡은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소리처럼, 웅웅거리는 진동이 현우의 발밑을 흔들었다. 호기심이 공포를 집어삼켰다. 현우는 홀린 듯 철문으로 다가갔다. 녹슨 틈새로 눈을 비집고 넣자,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공간에서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빛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이게… 뭐야?”

현우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철문에 닿는 순간, 빛은 폭발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끔찍한 감각. 눈앞의 풍경은 녹아내리는 캔버스처럼 일그러졌고, 귀청을 찢는 굉음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현우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축축한 흙냄새, 풀벌레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눈을 떴을 때, 현우는 등 뒤로 굵은 나무의 껍질이 느껴지는 울창한 숲 속에 엎어져 있었다. 머릿속이 욱신거렸고, 귓속에서는 여전히 웅웅거리는 이명이 울렸다.

“젠장… 꿈인가?”

현우는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푸른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고,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그의 눈을 아프게 했다. 어제의 도시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낡은 기와지붕과 흙벽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모습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고,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어제 분명 충전했는데?

“여기가 어디지… 설마, 납치?”

현우는 온몸을 훑어봤지만, 겉옷 하나 없이 평범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인적 없는 숲의 고요함만이 그를 에워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임을 깨닫자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갈증이 밀려들었다.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이내 작은 냇가가 나타났다. 투명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땀에 젖어 헝클어진 현대인의 모습이었다.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려는 순간,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현우는 행동을 멈췄다.

“이번 대회의 향방은 실로 천하의 운명을 가를 것이니, 제군들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만약 마교의 놈들이 기어이 ‘태초의 균열’을 손에 넣는다면, 무림은 물론이요, 세상 전체가 혼돈에 휩싸일 것입니다!”

목소리는 냇가 상류 쪽에서 들려왔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현대 도시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어투와 내용이었다. 마교? 태초의 균열? 이건 마치… 무협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조심스럽게 덤불을 헤치고 다가가자, 작은 공터에 몇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익숙지 않은 비단 도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번쩍이는 검을 차고 있었다. 한 명은 풍채가 좋은 중년이었고, 다른 두 명은 그보다 젊어 보였다.

“이미 대회는 시작되었소. 각 문파의 고수들이 속속 태화산으로 집결하고 있다 들었소. 문제는 그들의 목적이 단순히 천하제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것이오.” 중년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사부님, 설마 천룡검문(天龍劍門)의 장로들마저 마교와 손을 잡았단 말입니까?” 젊은 사내 중 한 명이 놀란 듯 물었다.

“알 수 없지… 이번 ‘운명지회(運命之會)’는 그 어떤 대회보다도 기이하고, 그 어떤 징조보다도 불길하오. ‘태초의 균열’이 열리는 시기에 맞추어 대회가 열리는 것 또한 심상치 않지.”

현우는 숨을 꾹 참았다. ‘운명지회’.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고수들의 무술 대회. 그리고 ‘태초의 균열’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 이 모든 것이 그가 읽었던 무협 소설의 한 장면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시간여행을 한 것일까? 그것도 고작 밤늦은 폐허에서 손을 뻗었을 뿐인데?

그 순간, 나뭇가지 하나가 현우의 발밑에서 ‘투둑’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세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현우가 숨어 있는 덤불을 꿰뚫었다.

“누구냐!”

중년 사내의 손이 번개처럼 허리춤의 검자루를 잡았다. 현우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 숨길 틈도 없이, 덤불 속에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요. 오해입니다! 저는 그냥 길을 잃어서…”

현우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그의 현대적인 옷차림과 어리벙벙한 표정은 세 사내의 눈에 기이하게 비쳤을 것이다.

“이자는 무엇이냐? 삿된 옷을 입고, 머리도 기이하게 잘랐구나. 혹 마교의 척후병인가?” 젊은 사내 중 한 명이 검을 반쯤 빼 들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현우를 노려봤다.

“아닙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그냥…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입니다!”

현우의 절규는 그들의 귀에는 그저 미치광이의 횡설수설로 들릴 뿐이었다. 중년 사내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다른 세상에서 왔다라… 허언증 환자인가, 아니면 귀신의 농간인가. 하나 확실한 것은, 네놈의 복장은 이 무림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저는 정말…” 현우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변명을 겨우 삼켰다. 지금 이들에게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설명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너는 누구이며, 어째서 태화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숨어 있었는가? 솔직히 고하라.” 중년 사내가 차분하지만 위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현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는 지금, 생전 처음 겪는 무림의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거대한 대회가 시작되었고, 그는 그 한복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었다.

“저는… 저는 그저… 길을 잃은 나그네일 뿐입니다. 태화산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운명지회’라는 것도 방금 처음 들었습니다.”

현우의 눈빛은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의 진심이 조금은 통했는지, 중년 사내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심은 거두지 않았다.

“흠… 어찌 되었건, 이 길은 태화산으로 통하는 길. 이곳에서 더 이상 얼쩡거렸다가는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운명지회’에 참가하는 문파들은 모두 예민해져 있으니.”

중년 사내는 현우에게 눈짓으로 길을 비키라는 듯이 말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숲 속에 서 있었다.

태화산, 운명지회, 마교, 태초의 균열…
현우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듯한 기분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정말로 다른 세상에 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지금, 거대한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의 앞에는 낯선 무림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그는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어쩌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울창한 숲 너머로, 웅장한 태화산의 봉우리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 있었다. 그곳에서,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대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우는, 그 모든 것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