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가 캔버스처럼 펼쳐진 ‘오로라 호’의 최상층 스위트, 닥터 베일론의 개인 천문관측실은 싸늘한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은하수의 황홀경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거대한 파노라마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성운들이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방 안의 비극적 침묵 앞에서 무색했다.
보안 책임자 칼 경위는 땀으로 축축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아냈다.
“전면 봉쇄입니다. 문은 삼중 바이오인식 잠금과 고에너지 포스 필드로 막혀 있었고, 창문은 우주선 외벽과 일체형이라 열릴 수 없습니다. 내부 센서도 침입자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밀실’입니다.”
시신은 천문관측용 망원경 앞에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정교한 레이저 무기로 지져진 듯한, 깨끗하지만 치명적인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변에는 어떤 무기도, 범인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 안의 기압, 온도, 습도, 심지어 공기 중의 미립자 농도까지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칼 경위의 뒤로 한 남자가 조용히 들어섰다. 잿빛 머리카락은 언제나 미묘하게 헝클어져 있었고, 흐릿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가웠다. 그의 이름은 키안. 아스트라 제국 최고의 ‘사건 해체사’였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눈빛이 형형한 젊은 보조관 시온이 따랐다.
“보고는 들었습니다, 경위님. ‘오로라 호’는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선박 중 하나였죠.” 키안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라곤 실려 있지 않은 듯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프로토콜은 완벽하게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칼 경위는 절망감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키안은 대답 없이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심지어 천문관측장비의 반짝이는 금속 표면까지 놓치지 않았다. 시온은 익숙한 듯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내부 보안 카메라 기록은 어떻죠?” 키안이 물었다.
“사망 추정 시각 직전, 약 3분간 원인 불명의 시스템 오류로 녹화가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정상 작동했고, 박사님의 시신을 포착했습니다.” 칼 경위의 설명에 키안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3분이라…” 키안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천문관측실의 거대한 파노라마 창 옆 벽면에 설치된 패널 위를 스쳤다. 일반적인 공기 순환기 제어 패널처럼 보였지만, 키안은 그 위에서 아주 미미한,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형태의 미세한 이물질을 발견했다. 마치 무언가 강한 에너지에 의해 순간적으로 증발했다가 다시 응고된 듯한 흔적이었다.
“시온.” 키안이 나지막이 불렀다.
“네, 키안 님.”
“이 방의 모든 설계도를 가져와. 특히 이 패널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그리고 대기 구성 변화 로그도 확인해봐.”
시온은 재빠르게 태블릿을 꺼내들고 정보 검색에 들어갔다. 칼 경위는 의아한 표정으로 키안을 바라봤다. “키안 님, 그건 단순한 공조 시스템 제어 패널입니다. 박사님의 방은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데요.”
키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패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패널 표면의 아주 미세한 변형,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흠집 하나가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회로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시온의 태블릿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키안 님, 이 패널은 일반 공조 시스템과는 약간 다릅니다. 이 방은 특수 목적으로 심우주 미립자를 분석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외부 우주 환경과 연결되는 초미세 나노필터링 콘duit가 하나 더 존재합니다. 평소에는 봉쇄되어 있지만, 특정 연구 목적으로 아주 미세한 대기 샘플을 채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콘duit가 연결된 외부 과학 분석 유닛의 전력 사용량 로그를 확인해봐.” 키안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시온은 몇 번의 터치로 데이터를 불러왔다.
“사망 추정 시각, 정확히 3분간 외부 과학 분석 유닛에서 순간적인 고에너지 출력 로그가 감지됩니다. 일반적인 샘플링 과정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콘duit의 개폐 기록도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열렸다가 다시 닫혔습니다.”
키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3분.”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카메라가 꺼진 3분 동안, 그들은 물리적으로 방에 침입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언가는 들어왔고, 임무를 완수했지.”
키안은 칼 경위와 시온,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선장에게로 몸을 돌렸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아주 영리하고,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법으로 말이죠.”
그는 다시 콘duit 패널을 가리켰다.
“닥터 베일론은 이 천문관측실을 이용해 심우주의 미립자를 분석했습니다. 이 나노필터링 콘duit는 그를 위한 특수 장치였죠. 문제는, 이 장치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연결을 살인에 이용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칼 경위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콘duit는 너무 작습니다. 사람 몸은커녕, 무기 하나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일반적인 무기는 불가능하죠.” 키안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무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고도로 정밀하게 조작된, 집중형 에너지 빔 발사 장치 말입니다. 살인자는 이 콘duit가 외부 과학 분석 유닛과 연결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원격으로 콘duit를 개방했습니다.”
그는 파노라마 창밖으로 펼쳐진 우주를 가리켰다.
“그리고 외부 과학 분석 유닛에 고정된, 소형 고에너지 빔 무기를 이용해, 이 콘duit를 통해 닥터 베일론을 직접 조준했습니다. 3분간의 카메라 오작동은 빔 무기의 강력한 에너지 방출이 선박의 내부 시스템에 일시적인 교란을 일으킨 결과였을 겁니다.”
시온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럼… 살인자는 이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심지어 배 안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까? 외부에서 원격으로 조종을…?”
“정확합니다. 빔은 대기를 통과하며 닥터 베일론의 심장을 관통했고, 어떤 물리적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콘duit는 살인 직후 다시 봉쇄되었고, 외부 빔 무기는 에너지 방출 후 자폭했거나, 혹은 다른 우주선에 탑재되어 이미 이탈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키안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그는 패널 위의 미세한 이물질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었다.
“이 흔적은 빔이 콘duit를 통과하며 발생한 미세한 열에너지 잔류물입니다. 극도로 정밀하게 조작되었지만, 완벽할 수는 없었던 거죠.”
모두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깊은 깨달음이 스쳤다. 밀실은 물리적 봉쇄가 아닌, 원격 조작과 첨단 기술의 맹점을 이용한 완벽한 착시였다. 범인은 방 안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선장은 숨을 들이켰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 오로라 호의 설계와 닥터 베일론의 연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겠군요.”
키안은 다시 망원경 앞에 쓰러진 닥터 베일론의 시신을 바라봤다.
“살인자의 트릭은 깨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빔의 궤적을 추적하고, 누가 그 빔을 발사했는지 찾아내는 일뿐입니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난관, 즉 ‘불가능한 밀실’의 환상은 그의 손에 의해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