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보이지 않는 손님
차가운 새벽 공기가 뺨을 스쳤다. 민준은 침대 위에서 부스스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푸른 기운을 머금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이미 도시는 웅성거리는 듯한 희미한 소음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시계를 찾았다. 그러나 어쩐지 오늘은 모든 게 제자리를 벗어나 있는 기분이었다.
협탁 위에는 며칠 전 읽다 만 소설책이 뒤집혀 놓여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는 표지가 위를 향하고 있었는데.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책을 바로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결에 자신이 그랬겠거니 생각했다. 피곤한 주말이었다.
거실로 나온 그는 멈칫했다. 어제 밤 분명히 소파 위에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던 담요가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잠시 앉았다가 황급히 일어난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은 착각이겠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중얼거리며 담요를 주워 올렸다.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 식탁을 스쳤다. 어젯밤 저녁 식사 후 씻어두었던 머그잔이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채. 그는 분명 식기 건조대에 걸어두었는데. 다시 한번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지만, 어쩌면 어두운 밤중에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잠이 덜 깼을 뿐이야.
냉장고 문을 열어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침실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자, 어딘가 모르게 들떴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흐읍!”
민준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이 꽂힌 곳은 침대 옆 서랍장이었다. 그 위에는 그가 아끼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작은 나무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분명 어젯밤에는 서랍장 중앙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누군가 잡아 던진 것처럼 바닥에 떨어져 조각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침대 밑에.
차가운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 털이 곤두서는 소름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눈은 침대 밑, 조각상의 잔해를 향했다. 침대 아래는 늘 먼지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조각상의 잔해를 주웠다. 나무가 갈라진 단면은 날카로웠다. 망가진 조각을 손에 쥔 채, 그는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달라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민준은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무언가가, 그의 시야 밖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벽에 걸린 액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 것은 그때였다.
딸깍.
갑자기 방안의 스탠드 등이 스스로 켜졌다. 민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스탠드 등은 깜빡이더니 이내 다시 꺼졌다. 그리고 다시 켜졌다. 마치 누군가 장난을 치듯 반복되는 동작.
“누구… 누구야!”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어? 장난치지 마!”
대답은 없었다. 다만, 거실 쪽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마치 맨발이 바닥을 끄는 듯한 소리였다. 아주 느리고, 끈적이는 듯한 소음. 민준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아파트에, 지금 그와 함께 무언가가 존재했다.
스르륵.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민준은 침실 문을 바라봤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마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선명했다. 그의 눈이 문고리를 향했다. 문고리가, 아주 천천히, 아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달칵.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복도,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이 보였다. 그러나 민준은 거실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형체가 없는, 검은 그림자 같은 존재가 그를 응시하는 듯한 섬뜩한 감각.
그는 뒷걸음질 쳤다. 침대 헤드에 몸이 부딪혔다.
“나가… 나가라고!” 민준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의 외침에 답하듯, 거실의 커튼이 맹렬한 기세로 휘날렸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도,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친 듯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작은 화병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꽃잎들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화병은 민준의 눈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 그를 비웃는 것처럼.
콰앙!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벽으로 날아가 박살 났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민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현실이 아니었다. 꿈이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꿈이기를.
“이제… 시작이야.”
귓가에 들려온 것은 섬뜩하고 건조한 속삭임이었다. 너무나도 가깝게, 마치 그의 혀가 자신의 귀에 닿아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는 분명 여자아이의 것인데,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지고 낡은, 오래된 철문이 삐걱이는 듯한 불쾌한 음색을 띠고 있었다.
민준은 눈을 번쩍 떴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에 혼자 살아온 지 3년.
그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손님은, 결코 환영받지 못할 존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