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지아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타고 오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녹슨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위태롭게 엉켜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이조차 익숙한 풍경이었다. 살아남은 지 5년. 도시의 모든 것은 거대한 묘비가 되어버렸다.

“젠장, 또 꽝이잖아.”

겨우 꼭대기에 다다라 주변을 살폈지만, 인적은커녕 쓸만한 물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식량도, 물도, 하다못해 총알 한 줌도 없었다. 폐허의 신은 지아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듯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기지로 돌아가야 했다. 어둠은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그림자들의 시간이었다.

그녀가 다시 내려가려는 찰나, 시야 한구석에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무언가, 아니, 누군가였다. 일반적인 ‘그것들’과는 다른 움직임. 더 빠르고, 더 은밀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진화형’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놈들은 인간보다 영리했고, 인간의 생존 방식을 학습했다.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멀지 않은 곳, 낡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는, 그래, ‘그’였다.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회색빛을 띠었지만, 여느 감염자들처럼 살점이 뜯겨나가거나 뼈가 드러나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눈. 텅 비어버린 다른 감염자들의 눈과는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어딘가 희미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공허함 속에 갇힌 불꽃처럼.

그가 움직였다. 허물어진 담벼락 뒤에 숨어있던,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일반 감염자 무리가 갑자기 그의 시선 끝에 멈춰 섰다. 무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그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움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배인가? 통제인가? 지아는 혼란스러웠다. 진화형 중에서도 저런 능력을 가진 개체는 보고된 바 없었다.

그는 무리를 지나쳐 어디론가 향했다.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호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끌림이 그녀를 이끌었다. 그는 폐허가 된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인 곳이었다. 지아는 신발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그를 뒤쫓았다.

복도를 따라 걷던 그가 멈춰 선 곳은, 놀랍게도 작은 수술실이었다. 한때는 생명을 살리던 공간이었을 곳. 그곳에 그는 덩그러니 놓인 낡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는, 놀랍게도, 거의 온전한 상태의 어린 소녀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된 듯했지만, 섬뜩한 다른 감염자들의 흔적은 없었다.

그는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지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혹시라도 놈의 본능이 깨어나는 걸까 봐. 하지만 그의 손은 소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대신, 그 옆에 놓인 작은 인형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낡고 헤진 인형. 그의 회색빛 손가락이 인형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의 텅 빈 것 같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깊은 슬픔이 스치는 것을 지아는 보았다.

그는 감염자였다. 하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소리 없는 절규가 그의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병원 복도 저편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 감염자들의 우는 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총성. 인간 생존자들이었다. 지아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들 역시 보급품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 분명했다.

총성이 가까워져 왔다. 그들은 병원 안을 수색하고 있었다. 지아는 그들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총을 든 사내들이 복도를 돌아 그녀가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때, 그는 움직였다.

수술실에서 뛰쳐나온 그는 총을 든 사내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동자에 경고의 빛이 번뜩였다. 사내들은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저놈이다!” 하고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끔찍한 소리가 나야 했지만, 그의 육체는 이미 고통을 모르는 듯했다. 그는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으르렁거림은 아까 지아를 뒤따라오던 일반 감염자 무리를 멈춰 세웠던 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내들은 그를 집중 공격했다. 그가 쓰러지는 듯 보였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인간이라면 즉사했을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내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대신, 쓰러진 듯 보였던 그가 시선을 돌린 곳은 지아가 숨어있는 곳이었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마치 ‘괜찮은가?’라고 묻는 것처럼.

지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상처는 깊었다. 피가 아닌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마주했다. 혐오, 공포, 경멸,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혼란스러움만이 그녀의 마음을 지배했다.

“너… 뭐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약간 기울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지아는 그를 따라다녔다. 아니, 그가 지아의 그림자처럼 곁을 맴돌았다. 그는 ‘건우’라고 불렸다. 지아가 우연히 발견한 그의 목걸이에 새겨진 이름이었다. 건우는 지아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감염자 무리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그는 위험이 감지되면 먼저 나서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빠르고 강한 육체는 최고의 방패였다.

처음에는 그저 생존을 위한 일시적인 동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아는 건우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그는 지아가 굶주릴 때, 그녀가 먹을 수 있는 통조림이나 식수를 찾아내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는 지아가 추위에 떨 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폐허 속 아늑한 공간을 찾아내 그녀를 안내했다. 그는 지아가 잠들 때, 밤새도록 그녀의 곁을 지키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지아는 건우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무의미한 시도였다.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몸짓은 점차 그녀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어가 아닌 감정으로 소통했다. 깊은 눈빛, 조심스러운 손길,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밤, 지아는 불 피운 작은 모닥불 옆에서 건우와 마주 앉았다. 도시의 잔해들 사이로 별들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지아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찢어진 피부, 굳어버린 표정, 하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눈동자.

“건우야…” 그녀가 조용히 불렀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너는… 외롭지 않아?”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나는 가끔 너무 외로워. 혼자 남은 것 같아서. 너는 나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우가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그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인간의 체온과는 다른, 얼음장 같은 감촉이었다. 하지만 그 손길에는 묘하게도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네 손은… 차갑네.”

지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피부는 거칠고 단단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종족을 뛰어넘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접촉이었다. 금지된 사랑. 하지만 이 끔찍한 세상에서, 그들 외에 누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 속 불꽃은 더 이상 슬픔이나 공허함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녀를 향한, 인간과는 다른 형태의 깊은 애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해, 건우.”

그녀의 고백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찢어진 목구멍에서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지… 아…”

그것은 완전한 발음이 아니었다.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인간의 속삭임이 뒤섞인 듯한 소리. 하지만 지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인간성이, 오직 그녀 앞에서만 발현된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그의 차가운 품은 그녀를 따뜻하게 감쌌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이 금지된 관계가 세상의 어떤 윤리와도 충돌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오직 건우만이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질러, 누구도 닿지 않는 곳으로. 아마도 그들은 영원히 세상의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감염자로, 감염자에게는 이질적인 존재로. 하지만 서로에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온전한 존재였다. 그들의 사랑은, 종말의 세상에서 피어난 가장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차가운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은, 희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비로소 어딘가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