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1: 망각 아래의 속삭임
**씬 1: 하층부 고물상, 카인의 작업실**
**시간: 심야**
**컷 1**
[어둡고 눅눅한 하층부의 뒷골목. 낡아빠진 네온사인 간판들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공기 중에는 습기와 기계 기름 냄새가 뒤섞여 떠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낡은 건물의 지하로 통하는 철문 하나가 삐걱거리고 있다.]
**지문**
도시의 심장이라 불리는 상층부 스카이라인 아래, 수십 겹으로 쌓아 올린 하층부의 밑바닥. 이곳은 기억되지 못한 것들과 버려진 것들이 모여 죽어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죽어가는 잔해 속에서, 카인은 살아가고 있었다.
**컷 2**
[카인의 작업실. 좁고 너저분한 공간은 온갖 종류의 부품과 데이터칩, 해킹 툴들로 가득하다.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공중에 떠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에서는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데이터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낡은 로봇 팔이 삐걱거리며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컷 3**
[워크스테이션 앞에 앉아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은 ‘카인’. 짙은 회색 작업복을 입은 그는 얇고 날렵한 체구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사이버네틱 임플란트 자국들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으며, 밤샘 작업으로 붉어진 눈은 수많은 코드와 데이터 스트림 사이를 날카롭게 훑고 있다.]
**카인 (나지막이 혼잣말)**
젠장, 또 쓰레기인가. 이번 달도 수입은 시원찮겠군. 상층부 놈들은 폐기물조차 재활용할 가치 없는 것들만 던져주는군.
**지문**
카인은 잊혀진 데이터와 고물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캐내는 ‘데이터 포저’다. 흔히 ‘고물상 해커’라고도 불리는 그의 직업은, 상층부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하층부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매일 밤, 죽어가는 기계들의 마지막 숨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다.
**컷 4**
[카인의 모니터 화면이 갑자기 붉은색 경고 메시지로 번쩍인다. 지금까지 보던 평범한 쓰레기 데이터와는 다른, 거대한 암호화 블록이 나타난 것이다. 암호화 수준이 너무 높아, 일반적인 툴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카인 (눈을 가늘게 뜨며)**
…이건 또 뭐야? 암호화 수준이 이 정도라고? 단순한 폐기물 데이터는 아니겠군. 장난질인가?
**컷 5**
[카인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린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화면 위를 날아다니고, 수십 개의 창이 동시에 열렸다 닫힌다. 화면 속 암호화 블록은 끈질기게 그의 침투를 막아내지만, 카인의 얼굴에는 오히려 묘한 흥미가 서린다.]
**지문**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져왔던 수많은 고물 속에서, 이런 수준의 암호화는 처음이었다. 그의 직감이 속삭였다. 이건 대어일지도 모른다고. 아니, 대어가 아니라, 어쩌면… 망각된 무언가의 조각일지도 모른다고.
**컷 6**
[카인이 잠시 숨을 고른다. 그의 손은 이미 낡은 키보드 위에서 멈춰 있다. 그는 손목에 박힌 통신 장치를 가볍게 두드린다. 장치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카인**
…제이나. 연결됐나? 긴급 건이다.
**컷 7**
[홀로그램 스크린에 또렷한 여성의 얼굴이 나타난다. ‘제이나’. 보라색으로 물들인 짧은 머리칼, 콧등에 걸친 독특한 디자인의 안경, 그리고 입가에 걸린 살짝 비웃는 듯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그녀의 눈은 날카롭지만, 어딘가 피곤해 보인다.]
**제이나 (하품하듯)**
긴급? 설마 네 지갑이 또 긴급하게 비었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카인? 이번 달 용돈은 어제 다 썼다고 말했을 텐데.
**카인**
시시한 농담은 집어치워. 네 말대로라면 이건 네 지루한 밤을 달래줄 아주 좋은 ‘퍼즐’이 될 거야.
**컷 8**
[카인이 자신의 모니터 화면을 제이나에게 공유한다. 제이나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이 점차 사라지고, 미간이 좁아진다. 그녀의 시선은 카인의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제이나**
…이건 뭐지? 어디서 주워왔어? 이런 수준의 암호화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단순히 암호화 블록이 아니야. 이건… 무언가를 봉인하려는 흔적에 더 가깝군.
**카인**
하층부 폐기물 더미에서. 단순한 고철 속에서 나왔어. 혹시 내가 놓친 데이터 조각이라도 있나?
**컷 9**
[제이나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화면에도 카인의 데이터가 로드되고, 동시에 수많은 분석 프로그램들이 작동한다. 복잡한 알고리즘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데이터를 해체하려 시도한다.]
**제이나**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암호화 방식과도 일치하지 않아. 심지어… 우리 시대의 것이 아닌 것 같아. 너무 단순하고도 너무 복잡해. 마치… 태초의 코드를 보는 느낌이랄까.
**카인**
태초의 코드? 설마 그 ‘고대 문명’ 이야기라도 꺼낼 셈이냐?
**제이나**
흥. 그 망상 같은 이야기에 매달리는 건 네 전문 분야잖아. 하지만 이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야. 이 데이터는… 어떤 좌표를 지목하고 있어. 그리고 그 좌표는… 이 도시의 지하, 그것도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어.
**컷 10**
[카인의 얼굴에 놀라움과 함께 탐욕스러운 빛이 스친다. 지하, 가장 깊은 곳… 그곳은 단순한 하층부의 폐기물 처리장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과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
**카인**
가장 깊은 지하? 상층부 놈들도 엄두를 못 내는 곳 말인가? 거긴 탐사팀이 내려갔다가 전멸했다는 소문만 무성한 곳 아니었나?
**제이나 (피식 웃으며)**
그래, ‘망자의 땅’이라 불리는 곳이지. 수십 년 전, 도시의 확장을 위해 탐사팀이 내려갔지만… 살아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그 후로 어떤 탐사도 금지되었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컷 11**
[카인이 스크린 속 좌표를 노려본다. 데이터 블록이 어렴풋이 그려내는 지도는, 도시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도 없는 미지의 영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오랜만에 뜨겁게 뛰기 시작한다.]
**카인**
그래서… 이게 뭘 의미하는데? 그 고대 문명의 유적이라도 찾았다는 건가?
**제이나**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 데이터 블록이 뿜어내는 ‘에너지 시그널’이 특이해.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시스템이 다시 깨어나려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활성화된 것 같아. 아마 네가 이걸 발견한 것도 우연은 아닐 거야.
**컷 12**
[카인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고물 로봇 팔을 들어 올린다. 로봇 팔의 렌즈가 좌표를 가리키는 화면에 초점을 맞춘다.]
**카인**
정보 고마워, 제이나. 이걸로 돈 좀 벌면, 너한테도 한턱 쏠게.
**제이나 (눈을 가늘게 뜨며)**
미리 말해두는데, 그 ‘한턱’이 또 싸구려 합성 고기나 싸구려 합성 주스라면 이 연결은 끊을 줄 알아. 그리고… 조심해, 카인. 이 신호는 단순한 유적의 잔해가 아니야. 뭔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야.
**컷 13**
[제이나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카인의 작업실은 다시 고요해진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불타는 듯한 열정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손에 들린 로봇 팔을 거칠게 바닥에 내려놓고, 탁자 위 낡은 지도 스크롤을 펼친다.]
**지문**
‘망자의 땅’. 아무도 감히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 금단의 영역. 하지만 그곳에 잊혀진 비밀이 있다면, 카인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컷 14**
[카인이 허름한 백팩을 짊어지고, 허리춤에 낡은 레이저 커터와 데이터 해킹 툴을 단단히 묶는다. 그의 눈은 결의에 차 있다. 그는 작업실의 낡은 철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카인 (혼잣말)**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라. 흥미롭군.
**컷 15**
[카인은 하층부의 어두운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쳐 나간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네온사인의 잔상이 빗물에 번져 흐릿하게 빛난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씬 2: 하층부 최심부, 오래된 지하 통로 입구**
**시간: 새벽**
**컷 16**
[수 시간 후, 카인이 도착한 곳은 도시의 가장 오래된 하수도 시설과 폐기물 처리장이 뒤섞인 최심부였다. 썩은 냄새와 기계음이 뒤섞여 토할 것 같은 불쾌감을 준다.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음침한 곳이다.]
**컷 17**
[녹슨 철골 구조물 아래, 거대한 원형의 강철 문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문에는 도시의 상징인 문장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지만, 수십 년의 풍파 속에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문은 마치 거대한 괴수의 입처럼 보였다.]
**카인 (통신 장치를 두드리며)**
제이나, 여기 좌표다. 이 문이 맞아.
**컷 18**
[제이나의 목소리가 통신 장치에서 들려온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제이나**
확실해. 저건… 탐사팀이 폐쇄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도달했던 곳이야. 그들은 저 문 너머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어.
**카인**
그래서 흥미로운 거지. 이 문, 열 수 있겠어?
**컷 19**
[카인이 문에 다가가, 임플란트 된 손으로 문양을 훑는다. 차갑고 거친 강철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진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스캐너를 꺼내 문 전체를 스캔한다.]
**지문**
문은 단순한 강철이 아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재질로 강화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복잡한 잠금장치 시스템이 숨겨져 있었다.
**컷 20**
[카인의 스캐너 화면에 복잡한 회로도와 보안 시스템이 나타난다. 제이나가 실시간으로 분석 결과를 보내준다.]
**제이나**
잠금장치 시스템이… 예상보다 복잡해. 그리고 이것도… 우리 시대의 기술이 아니야. 너무 원시적이라 오히려 해킹이 더 어려워. 마치 물리적인 퍼즐을 푸는 것 같아.
**카인**
(피식 웃으며) 난 그런 퍼즐은 특기지.
**컷 21**
[카인이 레이저 커터를 꺼내들고, 문의 특정 부위에 조준한다. 작은 스파크가 튀고, 얇은 빛줄기가 강철을 녹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는 해킹 툴을 꺼내 문의 전자 잠금장치에 연결한다.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지문**
해커의 섬세함과 고물상의 투박함이 한데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컷 22**
[수십 분간의 사투 끝에, 문의 일부가 녹아내리고, 잠금장치 시스템이 번쩍이며 경고음을 울린다. 카인이 마지막 데이터 패킷을 전송하자, 거대한 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효과음**
콰아아앙- 끄으으윽… (녹슨 금속이 갈리는 소리)
**컷 23**
[열린 문 너머로 거대한 어둠이 드러난다. 안에서는 눅눅한 공기가 훅 끼쳐 나오고, 알 수 없는 흙먼지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카인이 플래시를 켜서 안을 비춰본다.]
**컷 24**
[플래시 불빛에 비친 것은, 거대한 동굴과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은 너무 높아 끝이 보이지 않고, 벽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돌 블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건축 기술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와 정교함이었다.]
**지문**
이곳은 단순한 지하 통로가 아니었다. 잊혀진 문명의, 거대한 심장이었다.
**컷 25**
[카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드디어 찾아냈다는 만족감이 스친다. 플래시 불빛이 벽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상형문자를 비춘다. 그 문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카인 (나지막이)**
…젠장. 진짜였군.
**컷 26**
[카인이 문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의 발걸음이 돌바닥에 울려 퍼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며 그를 맞이한다. 그 빛은, 그가 발견한 데이터 블록의 ‘에너지 시그널’과 정확히 일치했다.]
**지문**
망각된 문명의 속삭임이,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카인의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될 터였다.
**컷 27 (최종 컷)**
[카인의 뒷모습이 거대한 지하 유적의 입구에 서 있다. 그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어둠과, 희미하게 빛나는 고대 문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그림자가 거대한 유적의 그림자에 흡수되는 듯하다.]
**효과음**
(낮게 울리는 기계음… 아니, 맥동하는 심장 소리 같은 소리.)
**지문**
과연, 이 망각된 유적의 심장부에는 어떤 비밀이 잠들어 있을까? 그리고 그 비밀은, 이 도시와 카인의 운명을 어떻게 뒤바꿀 것인가.
**[에피소드 1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