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지하 수백 미터 아래, 고대 유적 던전의 냄새는 언제나 눅눅한 흙과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마력의 비릿함이 뒤섞여 있었다. 류진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손에 든 마력 랜턴을 들어 올렸다. 좁은 통로 끝, 거대한 석문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빌어먹을, 또 이런 건가? 대장은 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거야?”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강태가 대검으로 석문을 툭툭 쳤다. 녀석의 얼굴은 온통 땀과 먼지로 범벅되어 있었다. 탐사 팀의 선봉을 맡은 강태는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단순하고 우직했다. 그런 강태조차 불평을 쏟아낼 만큼, 이번 던전은 유독 악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 방 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겁니다. 대장님의 성격상, 그저 길을 잃었을 리는 없어요.”
팀의 유일한 치유사인 세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 끝에서 희미한 정화 마력이 피어올라 주변의 불쾌한 냄새를 아주 미약하게나마 중화시켰다. 류진은 그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석문만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고대 마법으로 봉인된 듯, 문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벽과 일체화된 형태였다.
“제법 단단하겠군. 강태, 한 번 해 봐.” 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강태는 기다렸다는 듯 대검을 고쳐 잡았다. “젠장, 내 검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열어주마!”
우지끈!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태의 전신에 마력이 휘감겼다. 잠시 후, 거대한 파괴력이 석문을 강타했고, 육중한 석문은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다. 퀴퀴한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 너머로 어둡고 낯선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태와 세라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디뎠다. 류진은 그들의 뒤를 따르며 랜턴 빛을 방 안으로 비췄다. 오래된 연금술사의 실험실 같았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놋쇠로 만들어진 복잡한 증류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저기 깨진 비커와 알 수 없는 시약 병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대장님!”
세라의 비명이 찢어질 듯 터져 나왔다. 강태는 눈을 부릅뜨고 방 안을 훑었다. 녀석의 손에 들린 대검이 바들바들 떨렸다.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김성호 대장. 그의 가슴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싸늘하게 식은 눈은 천장을 허망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말도 안 돼… 우리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까지, 이 방은 완벽하게 잠겨 있었어! 어떻게 이런 일이…” 강태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류진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바닥에 쓰러진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혼란 대신, 차가운 호기심이 감돌았다. 손에 든 소형 마력 랜턴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핏자국, 벽의 문양, 심지어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까지. 그의 시선은 모든 것에 머물렀다.
방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다. 창문은커녕 작은 틈 하나 보이지 않는 두꺼운 석벽. 방금 자신들이 부수고 들어온 석문만이 유일한 출입구였다. 그런데 어떻게? 누가? 그리고 왜? ‘밀실 살인.’ 류진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주변에 다른 흔적은 없어?” 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는 분노에 찬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없어!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아. 우리가 이 문을 여는 데만 해도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다고! 그동안 대장은… 대체 어떻게…”
류진은 대장의 시체를 지나쳐 방의 벽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고대 문양이 새겨진 석벽은 차갑고 단단했다. 다른 벽면과 미묘하게 이질적인 광택을 띠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수천 년 전, 마력이 흘렀던 흔적처럼. 하지만 그의 시선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방 중앙에 놓인 거대한 증류 장치로 향했다.
놋쇠로 만들어진 복잡한 파이프와 밸브들이 얽혀 있는 조형물이었다. 얼핏 보면 고대 연금술사의 작업 도구처럼 보였지만, 류진은 그 배치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저건… 단순한 장치가 아니야.’
그는 천천히 증류 장치에 다가가 가장 큰 밸브를 잡고 힘껏 돌렸다.
“어이, 류진! 뭘 하는 거야? 함부로 만지지 마!” 강태가 소리쳤다.
류진은 개의치 않았다. 낡은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끽-’ 하고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방 안 가득 채워져 있던 마력이 일렁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가 방금 전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벽면 한가운데가 스르륵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위장된, 숨겨진 통로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태와 세라는 경악에 찬 눈으로 열린 통로를 번갈아 보았다. 류진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 방은 연금술사의 실험실이었지만, 동시에 감춰진 통로를 지키는 관문이기도 했어. 대문은 우리가 부쉈지만, 살인범은 이 장치를 이용해 드나든 거야. 특정한 마력 파동을 증폭시켜 벽의 잠금을 해제하는 방식이지. 아마 대장은 이 장치의 존재를 알았거나, 최소한 이 방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걸 짐작했을 거야.”
류진은 덧붙였다. “그리고 살인범은 이 통로의 존재뿐만 아니라, 이 증류 장치의 작동 방식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인물일 거야. 이 방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자, 혹은 이 비밀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자.”
세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범인은 우리 일행 중에 있는 건가요?”
류진은 아무 말 없이 열린 통로를 지나쳐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눈빛은 차가운 결의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 혹은… 우리를 이 방으로 이끈 자일 수도 있지.”
열린 통로 너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었다. 마치 또 다른 미궁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류진은 마력 랜턴을 높이 들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제부터 진짜 사냥을 시작해야겠어. 이 던전의 미스터리, 그리고 대장을 죽인 살인범. 둘 다 놓칠 순 없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