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잿빛 도시의 숨결

눈을 떴을 때, 나는 언제나 잿빛 천장을 보았다. 흙먼지와 폐허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긁었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 하지만 어제의 내가 살던 세상과는 영원히 단절된, 이 지독한 오늘의 아침이었다.

이서준, 스무 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방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평범한 대학생. 지금은 낡은 군용 나이프 하나와 찢어진 배낭, 그리고 언제 바닥날지 모를 식수 한 통에 목숨을 의지하는 생존자였다. 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거대한 섬광과 함께 모든 것이 뒤바뀌기 전이었다면.

“젠장.”

갈라진 입술 사이로 마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건물의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잤다고는 하지만,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온몸이 쑤셨다. 며칠 전 겪은 낙상 사고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움직여야 했다.

나는 폐허가 된 건물을 벗어나 조심스럽게 거리로 나섰다.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큰 도로였지만, 지금은 뒤집힌 차량들의 시체와 여기저기 파헤쳐진 땅만 남아 있었다. 앙상한 철근들이 뼈대처럼 삐죽이 솟아 있었고, 검게 그을린 건물 외벽에는 정체 모를 덩굴 식물들이 징그럽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공기는 무겁고 탁했으며, 알 수 없는 금속의 비린내가 희미하게 풍겼다.

오늘은 식량을 찾아야 했다. 어제 겨우 찾아낸 통조림 한 개로 하루를 버텼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바닥났다. 기억을 더듬었다. 이 주변이라면, 오래된 상가가 있었던 골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얼마나 유효할지는 미지수였다. 세상은 내가 알던 것과 너무도 달라져 버렸으니까.

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며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를 최대한 넓게 확보하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런 곳에서는 한순간의 방심이 곧 죽음이었다. 저 멀리 부서진 건물의 틈새에서 희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재빨리 몸을 웅크렸다.

“흐읍…”

가늘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거대한 개미떼 같기도 하고, 작은 벌레가 합쳐진 것 같기도 한 기괴한 생명체가 잔해 더미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놈들의 표면은 딱딱한 외골격으로 덮여 있었고, 뾰족한 다리들은 부서진 콘크리트 위를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크랩워커’.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진 후 알게 된 이름이었다. 독성은 없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람의 살점을 뜯어먹는다는 끔찍한 존재들.

녀석들은 부서진 벽돌 틈새를 훑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다행히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놈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흙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왔지만, 뱉을 수도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놈들에게 들킬 테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길게 느껴지던 몇 분이 지나고, 마침내 크랩워커 무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안도감에 어깨에 힘이 풀렸다.

“휴우…”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아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놈들이 나타난다는 건, 이 주변에 다른 위험도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몇 개의 골목을 더 지나, 마침내 익숙한 건물의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유리가 깨져 있었지만, 분명 내가 기억하는 ‘그곳’이었다. 작은 슈퍼마켓. 물론, 지금은 ‘폐쇄된 슈퍼마켓’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철문은 이미 누군가에게 부서져 있었다. 내부로 향하는 입구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낡은 랜턴을 꺼내 스위치를 눌렀다. 희미한 불빛이 내부를 비췄다. 부서진 선반, 바닥에 뒹구는 온갖 잡동사니, 그리고… 뼈대만 남은 인골 하나.

“…”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미 수없이 보아온 장면.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 신발 밑으로 깨진 유리 조각이 밟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내부는 이미 털릴 대로 털린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건, 대단한 식량이 아니었다. 그저 작은 캔 하나, 아니면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에너지바라도 괜찮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생존이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 진열대 뒤쪽 창고로 향했다. 다른 생존자들은 보통 눈에 띄는 곳만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과거의 기억이 있었다. 어떤 물건들이 어디에 주로 보관되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건물은 지하 창고가 있었어. 비상식량을 보관한다고 했었지.’

랜턴 불빛을 이리저리 흔들며 창고 구석을 뒤졌다. 먼지로 뒤덮인 상자들, 폐기된 집기들 사이에서 낡은 철문 하나를 발견했다. 녹슬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후욱 하고 뿜어져 나왔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지만, 이 정도는 익숙했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어두운 공간이 펼쳐졌다. 랜턴을 비추자, 놀랍게도 몇몇 선반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반 위에는…

“이게…”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분명히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캔 음료, 통조림, 심지어 몇몇 비닐 포장된 과자까지. 오랜 시간 동안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듯했다. 아마도 지하 창고의 존재를 몰랐거나, 혹은 이곳까지 내려오는 위험을 감수하지 못했으리라.

나는 조심스럽게 통조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벨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지만, 묵직한 무게감은 내용물이 온전히 들어있음을 알려주었다. 이걸로 며칠은 버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앙상한 팔다리, 기형적으로 비틀린 몸.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붉은색의 눈동자 두 개.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올랐다. 이곳에, 이런 것이 숨어 있을 줄이야. 방심했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너무 쉽게 들어왔던 것이다.

괴물은 느릿하게 고개를 꺾으며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한 발짝, 한 발짝 내게 다가왔다.

“크으… 크흐흐…”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짐승 같은 소리. 동시에 지하 창고의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살기를 띠었다. 나는 손에 든 통조림을 놓칠 뻔했다.

살아야 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낡은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괴물의 붉은 눈이 내 손에 든 무기를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녀석의 입이 기형적으로 찢어지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아니, 생존을 위한 또 한 번의 발버둥이었다.
나는 등 뒤의 어둠 속으로, 다시 한 번 뛰어들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