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부름
“별무리호, 항로 이탈률 0.001%. 엔진 출력 정상, 생명 유지 장치 양호. 이상 없음, 선장님.”
항법사 박지훈의 나른한 목소리가 함교의 고요를 갈랐다. 우주선 ‘별무리호’는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심우주를 향해 육 년째 나아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공간 속에서 은하수도 희미해지는 이곳은, 말 그대로 ‘별무리’조차 드문 절대적인 고독의 영역이었다. 한국형 초광속 항법인 ‘가야-점프’ 시스템 덕분에 이 정도 거리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정은 길고 지루했다.
선장 김준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전면의 홀로그램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창밖은 검은색의 향연이었다. 가끔 먼 은하의 희미한 불빛이 점처럼 찍히는 것이 전부였다.
“좋아. 모두 수고했다. 이 속도라면 쿼드란트 Z-9 섹터 진입까지 이틀 남았다. 그때까지는 특별한 변동 없을 거다.”
그의 말은 으레 그랬듯,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베테랑 우주인의 확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주란 늘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함교의 모든 패널에서 비상 알림음이 터져 나왔다. 삐비비빅! 요란한 경고음이 고요를 산산조각 냈다.
“맙소사! 무슨 일이야?” 기관장 최민서가 당장이라도 패널을 걷어찰 듯 달려왔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항법사 박지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선장님! 엄청난 중력 이상! 예상치 못한 시공간 왜곡이 탐지됐습니다! 규모가… 규모가 상상 이상입니다!”
전면 홀로그램 창에 무수한 경고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멀쩡하던 검은 우주 공간이 갑자기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물결이 이는 것처럼, 혹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가 공간을 쥐어짜는 것처럼.
“수석 과학자 이지아 박사, 상황 보고해!” 김준호 선장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그의 눈동자에 드리워진 섬뜩한 긴장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지아 박사는 이미 분석 패널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선장님! 저희 좌표에서 불과 50만 킬로미터 이내에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블랙홀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주변에 질량체는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이 왜곡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어요! 상식을 벗어났습니다!”
“에너지 방출? 대체 어떤 에너지를? 그리고 질량체가 없는데 중력 왜곡이 일어난다고?” 최민서 기관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바로 그거예요! 미지의 에너지 패턴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아요. 인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지아 박사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함께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인위적이라니, 이 심우주에?” 김준호 선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별무리호, 최대 출력으로 회피 기동 준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우주의 거대한 장난은 별무리호를 비웃듯, 더욱 격렬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그램 창의 공간 왜곡이 한층 심해지더니, 그 중심에서 억압적인 검은색이 솟아올랐다.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우주의 틈새에서 튀어나온 듯한 심연의 색이었다.
“선장님! 물체가!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박지훈 항법사의 외침이 절규에 가까웠다.
검은색의 중심에서, 하나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흐릿한 점에 불과했지만, 곧 눈부신 기하학적 완벽함을 자랑하는 형상으로 변해갔다. 완벽한 정팔면체. 크기는 대략 별무리호의 삼 분의 일 정도 되어 보였다. 검은색의 표면은 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떤 물리적인 구조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검은 심연의 조각 같았다.
“젠장, 저게 뭐야?” 최민서 기관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분석 결과, 모든 스캔이 불가능합니다. 전파, 광학, 중력, 심지어 양자 스캔까지 전부 차단돼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 같습니다!” 이지아 박사가 흥분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하지만 한 가지 패턴을 감지했습니다. 아주 미약하게,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에너지장이에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하고 있습니다!”
김준호 선장은 굳게 다문 입술을 열었다. “회피 기동 정지. 접근한다.”
“선장님?!” 박지훈이 경악했다. “위험합니다! 정체불명의 물체입니다!”
“알고 있다.” 선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이만큼 심우주에 와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이런 미지의 것이 나타났다. 우리가 이걸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탐사선 전진, 속도 0.05c로.”
이지아 박사의 얼굴에 환희의 미소가 번졌다. “알겠습니다! 모든 센서 최대 출력으로 전환! 최대한 근접해서 스캔을 시도하겠습니다!”
별무리호는 조심스럽게 미지의 검은 정팔면체로 향했다. 거대한 우주 속, 검은 심연의 파편처럼 떠 있는 그것은, 어떤 위험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그것의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는 더욱 선명해졌다. 어떤 연결부도, 어떤 이음새도, 어떤 스크래치도 없이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
별무리호와 정팔면체 사이의 거리가 1000km로 줄어들었을 때, 돌연 함교의 조명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선장님! 함선 에너지장이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알 수 없는 간섭이 들어오고 있어요!” 최민서 기관장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지아 박사, 무슨 일이지?”
“모르겠습니다! 스캔 패널이 전부 먹통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뭔가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이지아 박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은 고통과 혼란,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율로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검은 정팔면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검은색의 심연 속에서 모든 빛을 집어삼키던 존재가, 일순간 백색의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별무리호의 함교를 투과하여 승무원들의 눈동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악!”
“내 눈!”
승무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김준호 선장은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이지아 박사에게 고정되었다.
하얀 빛이 꺼진 후, 이지아 박사는 여전히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듯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박사! 이지아 박사!” 김준호 선장이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지아 박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대신, 기이하리만큼 차분하고 깊은 이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마치 아주 오래된 비밀을 깨달은 사람처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선장님… 저건… 저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에요… 저건… 저건 별을 삼키고… 시간을 거스르는… 또 다른 시작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별무리호의 모든 시스템이 경고도 없이 완전히 정지했다. 함교는 암흑에 잠겼고, 정적만이 공간을 지배했다. 오직 이지아 박사의 알 수 없는 미소만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등 뒤로, 검은 정팔면체의 거대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