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제국의 수도, 테페리아의 심장은 언제나 낡은 증기 기관의 울음소리와 유황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심장의 가장 아랫부분, 거미줄처럼 얽힌 비좁은 뒷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이 모여 있는 하층 구역은 숨 막히는 연기 속에서조차 삶의 끈질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제국이 버린 자들의 땅이자, 새로운 불꽃이 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낡은 작업장의 천장에서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녹슨 파이프와 톱니바퀴들이 널려 있는 작업대 위, 령은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작은 증기 코어를 조립하고 있었다. 섬세한 손가락이 핀셋을 쥐고 정교한 스프링을 제자리에 끼워 넣자, 코어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이거라도 제대로 작동해야 할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령의 옆으로 묵직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거친 직물로 만든 작업복을 입은 카엘이 손에 든 검은 유리병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병 안에는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제국의 심장을 움직이는 에너지원, ‘에테리움’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층민들의 피를 말리는 착취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 밤은 이걸로 충분할 거다. 감시탑의 동력 코어 하나 정도는 잠시 마비시킬 수 있겠지.” 카엘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고된 노동과 감출 수 없는 분노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령은 안경을 벗어 던지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 카엘, 우리가 필요한 건 ‘잠시’가 아니야. 그들이 이 도시 전체를 꽉 쥐고 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라면, 우리는 그 심장에 못을 박아야 해. 잠시 멈추게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알아.” 카엘은 한숨처럼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건 이 정도뿐이야. 병사들이 거리를 더 강화했어. 상부 도시에서 내려온 특별 감시관들이 모든 통행을 검문하고 있다. ‘영광의 날’을 앞두고 제국은 바늘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영광의 날’. 하층민들에게는 그저 상부 도시의 귀족들이 새로운 에테리움 채굴권을 축하하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날에 불과했다. 그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아래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증기 기관의 열기에 쓰러져갔다.
“결국 오늘도 변한 건 없다는 거군.” 령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 뚱보 공작들은 오늘도 에테리움 증기를 마시며 배를 불리고, 우리는 그들이 버린 찌꺼기로 겨우 버티고. 이 빌어먹을 제국.”
카엘은 령의 어깨를 묵묵히 두드렸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잖아. 진 노인에게 다녀왔다. 그는 우리가 준비한 에테리움 교란 장치가 감시탑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동안, 녀석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할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진 노인. 이 골목에서 가장 낡은 시계탑 아래, 온갖 고물과 증기 부품을 수리하며 살아가는 이 노인은, 사실 이 하층민 반란의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노련한 책사였다. 그는 제국의 초기부터 온갖 부패와 폭정을 겪어온 산증인이었다.
“또 뭘 꾸며냈어, 그 노인장은?” 령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카엘은 작업대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지도 두루마리를 펼쳤다. 지도는 테페리아 하층 구역의 복잡한 통로와 거미줄 같은 파이프라인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영광의 날’ 행사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기계 병사들이 거리를 순찰할 예정이야. 황실 근위대가 자랑하는 최신형 오토마톤이지. 진 노인은 저 오토마톤들을 잠시 혼란에 빠뜨릴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오토마톤을? 그게 가능하다고?” 령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황실 오토마톤들은 강력한 에테리움 코어로 작동하며, 웬만한 공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강철 병사들이었다.
“완전히 파괴하는 건 아니야. 잠시 ‘혼란’시키는 거지.” 카엘이 지도의 특정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 노인의 말로는, 그 오토마톤들의 신경망은 상부 도시의 중앙 제어탑에서 송신되는 특정 주파수에 의존한대. 그는 그 주파수를 잠시 교란할 수 있는 낡은 증기 발신기를 찾아냈어.”
“잠깐만.” 령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복잡한 회로도를 그렸다. “그 주파수 교란 장치를 감시탑 동력 코어 옆에 설치하고, 우리가 만든 에테리움 교란기로 감시탑을 마비시키면… 동력의 불안정성 때문에 주파수 교란이 더 강력해질 수도 있겠군! 그럼 오토마톤들은 일시적으로 제어 불능 상태가 되겠지.”
카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정확해. 진 노인은 그걸 ‘메아리 효과’라고 부르더군. 우리의 작은 돌멩이가 큰 바위를 흔드는 거야. 오토마톤들이 혼란에 빠지면, 감시탑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서 우리가 목표 지점까지 접근할 수 있다.”
“목표 지점… 제3 에테리움 저장고?” 령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였다. 제3 에테리움 저장고는 하층 구역 깊숙한 곳에 위치했지만, 철통같은 경비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곳에는 매일 하층민들이 피땀 흘려 캐낸 에테리움 원액이 쌓여 상부 도시로 운반되었다.
“그래. 그곳에 있는 에테리움 원액을 일부 회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도 장비를 수리하고, 배고픈 자들에게 음식을 줄 자금이 생기지.” 카엘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저장고의 위치를 응시했다. “우리는 제국처럼 착취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가져올 건, 우리가 원래 받아야 할 몫이다.”
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대 위 코어와 에테리움 병을 챙겼다. 그의 손에는 작은 스패너와 드라이버가 익숙하게 쥐어져 있었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출발해서 진 노인에게 주파수 교란 장치를 넘겨줄게. 그리고 감시탑에 접근할 경로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어. 카엘은 나머지 인원들을 소집해. ‘메아리 효과’가 발동되면, 지체 없이 저장고로 향해야 해.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령. 이번 작전은 쉬운 일이 아니야. 제국은 우리를 그저 시끄러운 벌레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심장을 갉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걱정 마.” 령은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억압에 대한 분노와 함께, 기계와 부품을 다루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냉철한 자신감이 번뜩였다. “이런 낡은 기계 장치들은 나에게 맡겨. 해체하는 것만큼은 내가 최고니까.”
작업장의 낡은 증기 압력계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압력이 상승하고 있음을 알렸다. 연기가 자욱한 골목 저편에서는, 상부 도시의 거대한 증기 시계탑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막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제국의 밤은 깊어가지만, 하층민들의 심장 속 불꽃은 꺼지지 않고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