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금기 아래의 시간

어둠이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낡은 지붕을 집어삼킬 때면,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있었다. 먼지 낀 서가 사이를 떠다니는 고서들의 영혼, 교칙을 피해 밤의 장난을 즐기는 수습 마법사들의 은밀한 발소리, 그리고… 지하 깊숙한 곳에서 맥동하는 알 수 없는 기운.

나는 이서진. 아르카나 마법 학원에 들어온 지 3년째 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평범하다는 건, 특출나게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낙제할 만큼 한심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그럭저럭 졸업장이나 받아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날 밤, 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그 지독한 ‘금기’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젠장, 정말 없어?”

낮게 중얼거렸다. 손에 든 낡은 양피지 지도는 도서관의 열람 시간표만큼이나 허술하고 미심쩍었지만, 오늘 밤 나를 이곳, 금서들이 가득한 최하층 서고까지 이끈 장본인이었다. 학기말 보고서 주제는 ‘고대 마법 문명의 실전된 언어’였고, 어설픈 소문에 혹해 희귀 자료가 숨겨져 있다는 이 눅눅한 곳까지 내려온 것이 실수였다.

켜켜이 쌓인 먼지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을 간지럽혔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촛불 대신 마나석으로 밝힌 마법 등불이 희미하게 주변을 비췄다. 족히 수백 년은 묵었을 법한 빽빽한 책장들 사이를 헤치며, 지도에 표시된 ‘별의 문양’이 새겨진 책장을 찾아 나섰다.

툭.

발끝에 무언가 걸렸다. 휘청거리며 비틀거렸지만, 간신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낡은 나무 바닥재 사이에 묘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보였다. 그저 삐걱이는 마루판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된 인간의 감각은, 평소보다 예민해지기 마련이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심장을 툭 건드렸다. 나는 등불을 낮춰 그곳을 비췄다. 나무판자 사이의 미세한 틈새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마루판 아래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는 듯이.

“설마….”

이곳은 아르카나 마법 학원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도서관의 최하층이었다. 학자들은 지상의 도서관만큼이나 지하에도 방대한 미궁이 펼쳐져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지반을 다지기 위한 얕은 기반 시설이 전부였다. 아니, 적어도 알려진 바로는 그랬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끝으로 튀어나온 나무판자를 만지작거렸다. 예상대로 틈새는 더 깊고, 판자 자체도 다른 것들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살짝 힘을 주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판자가 안쪽으로 내려앉았다. 마치 숨겨진 문처럼.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졌다. 지도에 별 문양이 그려진 책장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 어떤 고대 언어보다도 흥미로운 ‘미지’ 그 자체였다.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늘 그렇듯, 나의 어설픈 호기심은 언제나 이성보다 한발 앞서 달렸다.

나는 판자를 완전히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눅눅한 흙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 나왔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푸른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마법 등불의 빛조차 압도할 만큼 강렬하게 반짝이는 빛.

나는 조심스럽게 그 틈새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길을 안내했다. 계단이었다. 낡고 불안정한 돌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수백 년 전, 혹은 그보다 더 먼 옛날부터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계단 위에는 두꺼운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와.”

감탄사인지, 경악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알려지지 않은 지하 공간이라니. 학원 설립 이래 그 누구도 발굴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발굴했으나 철저히 봉인해둔 것인가? 후자라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증이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올랐다.

나는 한 손에 마법 등불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몇 걸음은 미끄럽고 불안정했지만, 이내 발이 익숙해졌다. 계단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마치 땅속 깊이, 학원의 모든 기반을 뚫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뭐야, 여기.”

푸른빛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방의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까지, 온통 푸른색으로 빛나는 정체불명의 문양과 수정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 빛은 부드럽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서늘하고 섬뜩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단순한 마력석이 아니었다. 이 빛은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나는 압도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을 내딛자, 텅 빈 공간에 내 발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오직 푸른빛의 파동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공간의 정중앙.

그곳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은 수많은 푸른 수정과 낡은 룬 문자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둥근 수조.

마치 물이 담긴 듯 투명했지만, 그 안에는 물이 아닌, 별들이 흩뿌려진 것 같은 은하계의 모습이 흐릿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은하계의 빛 속에서, 나는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과거와 미래, 시작과 끝,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듯한 혼돈의 마력.

금기.

그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학원에서 가장 오래된 금서들조차 감히 언급하지 못했던 존재. 시간 마법. 그것도 개인의 마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금단의 마법.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전신을 덮쳤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호기심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이 학원 지하에, 이런 것이 숨겨져 있었다니. 왜? 무엇을 위해? 그리고 대체, 누가?

나는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발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이곳의 고요함은 내 발소리마저 흡수하는 듯했다. 은하계가 펼쳐진 수조의 가장자리에 섰을 때, 내 그림자가 푸른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수조 속의 은하계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이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수조의 투명한 표면에 닿기 직전.

쿵!

갑자기 거대한 진동이 온 공간을 뒤흔들었다.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벽에 박힌 푸른 수정들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동시에, 수조 속의 은하계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빛은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웠고, 내 시야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크아악!”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이명과 함께, 알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짓눌렀다. 온몸의 세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치 수많은 시간의 흐름이 한꺼번에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앞으로 쏠렸다. 손가락이 마침내 수조의 표면에 닿았다.

그 순간, 온 세상이 정지했다.

나는 수조 속 은하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빛과 어둠, 시간과 공간,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다. 눈앞의 풍경이 뒤틀리고, 왜곡되고, 산산조각 났다.

마지막으로, 내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금기를 건드린 자, 시간의 벌을 받을지어다.”*

그리고 나는, 시공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