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 아래, 세상은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했다. 더는 새소리도, 자동차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삭막한 도시의 잔해 속에서, 시아의 작은 숨결만이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거처는 낡은 고층 건물의 옥상에 위태롭게 세워진 임시 막사였다. 비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천막 아래, 그녀는 오늘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눈을 떴다.
“흐음….”
작은 솜뭉치, 밤비가 그녀의 가슴 위에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털가죽처럼 덮고 있던 낡은 담요를 걷어내자, 밤비는 갸르릉 소리를 내며 시아의 목에 제 머리를 비볐다. 밤비는 시아가 이 폐허 속에서 발견한 유일한 ‘살아있는’ 친구였다. 검은 털에 조그만 몸집, 작은 별처럼 빛나는 노란 눈을 가진 아기고양이. 밤비는 시아의 온기이자, 이 모든 것을 버티게 하는 작은 이유였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새벽 공기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 차가웠지만, 그녀는 익숙한 듯 낡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회색빛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건물들, 녹슨 차량들, 그리고 그 위로 위태롭게 매달린 먼지구름.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였을 테지만, 이제는 바람 소리만이 으스스하게 맴돌 뿐이었다.
“오늘도 뭘 찾아야 할까. 밤비, 너는 뭘 먹고 싶어?”
시아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밤비는 대답 대신 시아의 발치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애교를 부렸다. 식량과 물.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 생존 조건이었다. 어제 겨우 찾아낸 딱딱한 건빵 몇 조각과 빗물을 모아 정수시킨 물통이 시아의 전부였다. 오늘은 좀 더 나은 것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밤비에게 줄 만한 통조림 하나라도.
시아는 낡은 배낭을 메고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칼을 만져보았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칼날은 무뎌졌지만, 아직은 쓸 만했다. 그녀는 옥상 아래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계단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고, 녹슨 철골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 칸 한 칸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모래알 같은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희뿌연 햇살이 폐허를 비추고 있었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일대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언제 어디서 위험이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눈여겨봐 두었던 낡은 상점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때는 화려했을 쇼윈도는 깨진 유리 조각들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라면… 뭔가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피하며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갔다. 철근이 삐져나온 벽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폐허가 된 상점 안은 어두침침하고 축축했다. 곰팡이 냄새와 썩은 냄새가 뒤섞여 역한 기운을 풍겼다. 시아는 작은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폈다. 선반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상품들은 바닥에 나뒹굴거나 파손되어 있었다.
“흐음….”
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곳도 역시 별다른 소득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주저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순간, 밤비가 그녀의 발목에 몸을 비비며 갸르릉거렸다. 그리고는 뭔가 발견한 듯, 쓰러진 진열장 뒤편으로 깡총깡총 뛰어갔다.
“밤비! 위험해!”
시아는 놀라 밤비를 뒤쫓았다. 진열장 뒤편은 어둡고 좁았지만, 밤비는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뜻밖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아직 내용물이 보존된 듯한 작은 통조림 두 개. 그리고 그 옆에는 반쯤 덮개로 가려진 낡은 천 주머니가 있었다.
“이게 뭐야…?”
시아는 떨리는 손으로 통조림을 집어 들었다. 라벨은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었지만, 묵직한 무게감은 내용물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천 주머니 속에는… 마른 약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시아는 할머니가 약초를 다루던 것을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었다. 이 약초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챙겨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밤비는 마치 자신이 큰일을 해낸 것처럼 시아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라 앉았다. 시아는 밤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웃었다.
“고마워, 밤비. 네 덕분이야.”
작은 통조림과 약초는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할 소중한 전리품이었다. 시아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배낭에 넣고 다시 상점 밖으로 나왔다. 폐허를 가로지르는 길은 여전히 위험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옥상으로 돌아온 시아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그녀는 작은 나이프로 통조림 캔을 따서 밤비에게 절반을 덜어주었다. 밤비는 허겁지겁 통조림 내용물을 핥아 먹었다. 고기를 잘게 다진 통조림인 듯했다.
시아는 남은 통조림을 천천히 음미했다. 오래된 것이었지만, 짭짤하고 고소한 맛은 오랜만에 느끼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녀는 모아둔 빗물로 목을 축이며 멀리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회색빛 폐허를 잠시나마 따뜻한 색으로 물들였다. 세상이 온통 죽음으로 뒤덮인 것 같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여전히 존재했다.
“내일도 잘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시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밤비를 품에 꼭 안았다. 밤비는 시아의 품에서 고롱고롱 잠이 들었다. 온기를 나누는 작은 몸짓이 세상의 모든 고독을 잊게 해주었다. 그녀는 오늘 찾은 약초 몇 가닥을 꺼내 말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약초가 언젠가 자신이나 밤비를 위한 작은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어둠이 내리고, 별들이 하나둘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세상에서,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빛났다. 시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점들처럼 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그녀는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을 발견했다.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이 폐허 속에서 그녀와 밤비는 분명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작은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시아는 다시 낡은 담요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밤비의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옆을 지켰다. 세상은 여전히 삭막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두 존재의 작은 우주가 평화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