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정적만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지막 봉인 문이 삐걱이는 굉음을 토하며 안쪽으로 넘어가는 순간, 카이와 나는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강철과 마력으로 이중 봉인된 문 너머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깊고 어두운 심연이었다.
“젠장, 에텔가르드 마법학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카이가 휴대용 광원 기기, ‘루멘 스틱’을 들어 올렸다. 얇은 에테르 막이 감싼 스틱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주변을 희미하게 밝혔다. 거대한 공간은 온통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의 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붕괴된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마치 수만 년 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고대 유적 같았다.
“사고 현장 아니면, 감옥 같아.”
내 말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지하 깊숙이, 정교하게 숨겨진 지도를 따라 여기까지 오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학원의 역사서에도 언급되지 않은, 금기된 지하 심층부. 우리는 이곳에서 학원 마력원의 비정상적인 출력을 감지했고, 학원의 모든 교수가 쉬쉬하며 숨기고 있던 진실의 조각을 쫓아왔다.
“저길 봐, 레나.”
카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기괴한 모양의 구조물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루멘 스틱의 빛이 닿는 순간, 그것은 반사하듯 섬광을 터뜨리며 잠시 우리 눈을 멀게 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눈을 비비며 다시 시야를 확보했을 때,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앞에는 단순히 부서진 잔해가 아니었다. 거대한 벽면을 따라 빽빽하게 박힌, 알 수 없는 언어로 새겨진 비문들이 보였다. 그 비문들은 녹슨 금속판과 섬세한 마법 문양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균열이 있었다.
균열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붉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불길한 빛. 그리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단순한 마력 파동이 아니었다.
“이거… 흐느낌 소리 아니야?” 내가 말했다.
카이도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 희미하게 들려. 사람 목소리는 아닌데…”
우리는 조심스럽게 균열에 다가갔다. 균열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벽에 새겨진 비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반기기라도 하듯.
“여기, 뭔가 있어.” 내가 손을 뻗어 벽면을 짚었다. 차가운 금속판 아래로 무언가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 박동 같기도 하고, 거대한 기계의 진동 같기도 했다.
카이는 휴대용 마력 스캐너를 꺼내 균열 안쪽으로 향했다. 스캐너의 액정 화면에 숫자가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미쳤어… 이건 학원 주 마력원의 최소 백 배는 되는 에너지야. 이런 걸 대체 어디에 숨겨둔 거야?”
그때였다. 균열 안쪽에서 붉은빛이 더욱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그 존재의 일부를 목격했다.
균열 너머는 마치 거대한 심해의 동굴 같았다. 붉고 푸른 기포들이 쉬지 않고 솟아오르고, 그 가운데 거대한 무언가가 떠 있었다. 그 형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대한 수정체 같기도 하고, 생물체의 장기 같기도 했다. 투명한 막에 싸여 있었지만, 그 안에서 고동치는 것은 분명 생명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촉수들이 그 거대한 본체에서 뻗어 나와 주변 공간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들은,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이 공간의 모든 벽면과 천장, 심지어 우리가 서 있는 바닥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저게… 마력원이라고?” 카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인 듯했다.
나 역시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학원의 모든 마력이, 모든 찬란한 주문과 마법 공학의 근원이 저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수정체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희미하게 보였다.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다. 거대한 머리, 수많은 눈, 그리고 찢겨진 듯한 날개 파편…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이미지였다. 고대 우주 신화에 등장하는, 잊혀진 종족의 그림자가 저 속에 갇혀 있었다.
“저건… 포획된 존재야.” 내 목소리가 마치 누군가에게 빙의된 듯 낮게 울렸다. “살아있는… 신이라던가, 아니면 아주 고등한 생명체…”
우리가 내뱉은 말은 수정체 안의 존재에게 닿은 것일까?
갑자기 수정체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번쩍이고, 강력한 마력 파동이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 진동 속에서, 명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수백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했지만, 그 속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파고들었다.
*――해방시켜… 줘…*
*――살려… 줘…*
그것은 절규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갇혀 비명을 질러왔던 존재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학원의 마력은, 저 고통받는 존재의 생명력을 쥐어짜 만든 것이었다.
“이건… 금기가 아니라, 살인이야.” 카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때, 주변의 모든 루멘 스틱의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수정체 안의 붉은빛만이 유일한 광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붉은빛은 갑자기 폭발하듯 팽창하더니, 균열을 넘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존재의 촉수 중 하나가, 마치 우리를 움켜쥐려는 듯 균열 밖으로 뻗어 나왔다.
“튀어!”
카이의 비명과 동시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뒤따라오는 거대한 진동과, 온몸을 꿰뚫는 듯한 알 수 없는 존재의 절규가 우리를 쫓았다. 학원 지하 깊은 곳에 갇힌, 살아있는 신의 비명이!
우리는 과연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저 끔찍한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아니, 저 존재가 깨어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앞만 보고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