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짙게 깔린 저택은 마치 거대한 검은 비단뱀처럼 꿈틀거리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후려치는 소리가 고요를 깨트리며, 이따금 번개가 창밖의 기괴한 조각상들을 잠시 비췄다 사라지곤 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저택의 가장 깊숙한 심장부, 거대한 서재의 문 앞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젠장… 미치겠군.”
강 형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의 굵은 손가락은 땀으로 축축했다. 서재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낡은 손잡이에는 희미한 혈흔이 묻어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이 안에서 잠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창문은 모두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그마저도 안에서 굳게 걸쇠가 채워져 있었다. 완벽한 밀실이었다.
“강 형사님, 혹시 또 그분 부르셨습니까?”
젊은 김 순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감과 동시에 미묘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강 형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지 않고 배기겠냐? 이 따위 미스터리한 사건은… 그 애 말고는 아무도 못 풀어.”
그때였다. 저택의 현관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가 싶더니,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가느다란 몸매, 쏟아지는 폭우에도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검은 코트. 그리고 코트만큼이나 짙은 색의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나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차가운 눈동자. 은채였다.
“늦었군요, 강 형사.”
은채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거실의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 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새벽의 이슬처럼 맑고 투명했지만, 그 안에는 어떤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은색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고, 시계추는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길이 막혀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조급한데, 빨리 가보시죠.”
강 형사는 땀을 닦으며 서재 문으로 고갯짓했다. 은채는 천천히 걸어가 문 앞에 섰다. 그녀는 문고리에 묻은 혈흔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여 문틈과 바닥 사이의 미세한 틈을 살폈다.
“피해자는 김동식 씨. 이 저택의 주인이자 은둔형 수집가입니다. 비명 소리를 들은 집사가 연락했고,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강 형사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한 출입구는 이 문인데, 열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자살이거나, 아니면… 유령의 소행이겠죠.”
강 형사의 말에 은채는 작게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 짧아서, 주변의 얼어붙은 공기마저도 녹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령은 증거를 남기지 않죠. 하지만 이 방은… 너무 많은 증거를 남겼군요.”
은채는 손에 들고 있던 은색 회중시계를 다시 한번 응시했다. 시계의 유리판 위로 희미한 무지개빛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반짝였다.
“어떻게든 문을 따야겠군요. 피해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니, 현장 보존이 중요합니다.”
경찰 특공대가 조심스럽게 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낡은 나무 문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저택 전체를 울렸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서재 안으로 향했다.
방 안은 호화로웠지만 혼란스러웠다.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서들이 빼곡했고, 한쪽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듯한 기묘한 미술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었고, 금고는 활짝 열린 채 비어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 앤티크 러그 위에 김동식 씨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등에 칼이 박힌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크게 뜨여 있었고, 얼굴에는 극심한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무언가를 움켜쥐려 했던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피해자의 등에서 발견된 칼은… 저희 소유가 아닙니다. 아마 저택에서 발견된 장식용 칼 같습니다.”
김 순경이 말했다. 은채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조용했고,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했다. 그녀는 먼저 피해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방 전체를 마치 3차원 지도를 그리듯 스캔하듯이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천장의 거미줄, 창문의 쇠창살에 낀 미세한 먼지, 책상 위 서류의 배치, 그리고 러그의 패턴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평범한 시야를 넘어, 보이지 않는 잔상과 흐름까지 읽어내는 듯했다. 마치 시간의 흔적,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궤적까지 꿰뚫어 보는 것처럼.
특히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작은 나무 조각상이었다. 정교하게 깎인 작은 새 모양의 조각상. 주위의 고풍스러운 미술품들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 조각상 주변으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푸른색 섬광이 일렁이는 것을 은채는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마법적인 에너지의 잔류였다. 그녀는 그것을 순간 ‘이상 에너지 흔적’이라 명명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일단은 물리적인 증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음… 금고는 비어 있고,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지만, 특별히 강탈당한 흔적은 없습니다.”
강 형사는 보고했다. 은채는 피해자 주변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칼날에 묻은 피와 손에 묻은 핏자국, 그리고 피해자의 표정을 차분히 관찰했다.
“칼은 등에 박혀 있고, 피해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살이라고 보기엔 부자연스럽군요. 하지만 동시에 타살이라고 하기에도… 불가능합니다.”
은채의 말에 강 형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하다니요? 밀실 살인이죠. 범인은 이 방 안에 있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을 겁니다.”
은채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작은 나무 조각상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조각상의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강 형사님. 문고리에 묻은 핏자국은 피해자의 것입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죠? 그렇다면 이 문은 피해자가 직접 잠갔다는 의미가 됩니다. 왜?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칼은 등에 박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 안에는 범인이 숨을 공간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창밖으로 도망쳤을 가능성도 배제되었고요.”
은채는 서재 안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며 설명했다. 그녀의 시선은 책장, 천장, 그리고 벽면의 미세한 틈새까지 훑었다.
“누군가 피해자를 찌른 후, 어떻게 이 완벽한 밀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피해자의 죽음과 이 밀실 트릭 사이의 간극입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복잡한 계산식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흐릿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국… 나는 완성했다. 새로운 차원의 문을…』
“이 사건은 살인 사건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살인 사건은 아니죠.”
은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모든 이들을 압도했다.
“이곳에 범인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피해자는 자신을 찌르지 않았습니다. 이 김동식 씨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완벽하게 밀폐된 방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채로 말이죠.”
강 형사와 김 순경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혼란과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 은채는 작게 피식 웃으며 손에 든 나무 조각상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푸른 빛이 섬광처럼 반짝였다.
“이 밀실은… 누군가가 탈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들여보내기 위해* 설계된 함정이었죠.”
그녀의 눈빛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누가* 이 문을 열었느냐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