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증기의 속삭임
지후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망치를 내려놓았다. 손때 묻은 작업대 위에는 아직 미완성인 황동 비행선 모형이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계태엽 장치와 정교하게 맞물릴 예정인 증기 엔진의 핵심 부품들은 해체된 채 먼지와 기름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파트 창밖으로는 거대한 기계 도시, ‘에테르니아’의 밤이 짙게 깔려 있었다. 마천루처럼 솟아오른 건물들은 육중한 황동과 닳아 빠진 강철로 뒤덮여 있었고, 그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 위로는 증기기관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도시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는 은은한 아크등 불빛을 받아 몽환적인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쉭쉭거리는 증기 분출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선의 둔중한 프로펠러 소리가 지후의 낡은 아파트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의 아파트는 에테르니아의 가장 오래된 구역에 위치한, 한때는 고급 주상복합이었으나 지금은 삐걱거리는 태엽장치와 누렇게 변색된 황동 파이프가 여기저기 튀어나온 낡은 건물에 있었다. 방 한쪽을 가득 채운 작업대에는 증기 압력계, 정교한 톱니바퀴, 미세한 스프링, 그리고 온갖 종류의 렌치와 나사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벽에는 작동이 멈춘 자동인형 팔이 표본처럼 걸려 있었고, 한때 태엽으로 움직였을 법한 새 모양의 기계 조형물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앙상한 가지에 앉아 있었다.
지후는 뜨거운 증기가 올라오는 찻잔을 들었다. 찻잎이 풀어지며 증기처럼 피어나는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는 한 모금 마신 후, 창밖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늘 똑같은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기계 도시는 지후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다. 그는 고장 난 태엽장치를 수리하고, 새로운 기계장치를 설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기술자였다.
그때였다. 찻잔을 내려놓으려던 그의 귀에 아주 미세한 ‘째깍’ 소리가 들렸다. 시계 소리치고는 불규칙하고, 왠지 모르게 둔탁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대 위에 놓인 낡은 탁상시계는 멈춘 지 오래였고, 벽에 걸린 대형 증기 시계는 규칙적인 톱니바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착각이겠지.”
지후는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피로가 쌓여 헛것이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찻잔을 들고 작업대 정리나 할까 생각했다. 그때, 또 한 번의 ‘째깍’ 소리. 이번에는 좀 더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 아주 작은 나사못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은 소리였다.
지후는 몸을 굽혀 작업대 아래를 살폈다. 그의 발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렀다. 거실의 낡은 가스등 아래에는 읽다 만 기술 서적들이 쌓여 있었고, 삐걱거리는 소파 위에는 태엽으로 움직이는 소형 청소 로봇이 잠들어 있었다. 지후는 방구석의 증기 파이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녹슬고 낡은 파이프는 에테르니아의 모든 건물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명선과 같았다. 파이프를 따라 흐르는 증기의 미세한 진동은 느껴졌지만, 이상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는 침실로 향했다. 침실은 비교적 정돈되어 있었다. 삐걱이는 침대 옆 협탁에는 작은 황동 알람시계가 놓여 있었다. 그는 시계에 귀를 기울였다. ‘째깍, 째깍, 째깍…’ 규칙적인 소리. 정상이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멈칫했다. 분명 작업대 가장자리에 놓아두었던 비행선 모형의 설계도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반듯하게 접어 올려두었는데.
“바람인가?”
창문은 닫혀 있었다. 에테르니아의 겨울밤은 차가웠고, 지후는 늘 창문을 꼭 잠가두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설계도를 주웠다. 딱히 다른 점은 없었다. 그저 바닥에 떨어져 있었을 뿐.
그는 다시 작업대 의자에 앉았다. 찻잔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는 따뜻한 차를 새로 끓여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주전자를 들었다. 주전자를 들고 수도꼭지를 트는 순간, 뒤에서 무언가 ‘덜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지후는 황급히 뒤돌아보았다.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렌치가 삐뚜름하게 놓여 있었다. 분명 그가 망치와 함께 나란히 두었던 렌치였다. 마치 누군가 툭 건드린 것처럼.
“뭐야, 왜 이래?”
지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피로 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명확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렌치를 제대로 다시 놓았다. 그리고 다시 주전자를 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 순간, 이번에는 작업대 반대편에 있던 작은 황동 나사 통이 ‘데굴데굴’ 구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십 개의 작은 나사들이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후는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가 있는 건가? 도둑? 하지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도 잠겨 있었고, 창문도 닫혀 있었다. 게다가 그의 물건들은 귀금속이 아닌 평범한 작업 도구들이었다.
“누구 있어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요한 침묵만이 돌아왔다. 도시의 소음만이 멀리서 웅웅거릴 뿐이었다. 지후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흩어진 나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서 작은 황동 톱니바퀴 하나가 ‘데굴데굴’ 스스로 움직이더니, 벽에 걸린 자동인형 팔 아래로 스르륵 굴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분명히 움직였다. 그것도 스스로.
“이건… 말도 안 돼.”
그의 등골로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그때였다. 벽에 걸려 있던 자동인형 팔이 삐걱거리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고장 나서 멈춰 있던 팔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황동 관절들이 기름칠이라도 한 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삐걱, 삐걱, 삐그덕… 기계적인 마찰음이 고요한 방안을 울렸다.
지후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 죽어 있던 기계가, 그의 손으로 수없이 만져왔던 자동인형 팔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팔의 끝에 달린 황동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허공에서 천천히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그의 비행선 모형이 있는 작업대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직 미완성인 모형의 텅 빈 엔진 칸을.
그리고 그때,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그의 비행선 모형이 작은 진동과 함께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앙상한 뼈대와 미세한 리벳들이 아크등 불빛 아래에서 섬뜩하게 반짝였다. 미세한 태엽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리는 도시의 소음을 뚫고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모형은 흔들림 없이 수십 센티미터 높이까지 떠올랐고, 그 빈 엔진 칸에서는 푸른색의 미세한 스파크가 ‘치직’ 하고 일렁였다.
지후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듯했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피로 탓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아니, 그의 작업장에, 어떤 미지의 존재가 침투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그의 기계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거실 구석에 놓여 있던 태엽식 턴테이블이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르르…’ 하는 마찰음과 함께 낡은 음반이 돌아가고, 이내 음산한 왈츠 선율이 삐걱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왈츠 선율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비행선 모형이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모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지후는 공포에 질려 입을 벌렸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익숙하고 친근했던 기계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아니, 유령이 직접 기계를 조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거실의 모든 가스등이 한꺼번에 ‘쉬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불꽃을 강하게 뿜어내더니, 이내 ‘퍽!’ 소리와 함께 일제히 꺼져버렸다.
암흑.
도시의 희미한 불빛만이 창을 통해 스며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비행선 모형의 빈 엔진 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스파크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무엇인가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지후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