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낡은 칠판에 적힌 ‘오늘의 마법 주문: 유체 이탈의 심화’라는 글씨는 마치 설아의 영혼마저 쏙 빼놓으려는 듯 흐릿하게 보였다. 맙소사, 그녀는 방금 전 ‘물체 부유 마법’ 수업에서 자신의 지팡이조차 제대로 띄우지 못해 교수님의 깊은 한숨을 유발했다. 윤설아,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2학년 평범한 학생.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옆 반 강하준처럼 “마력의 흐름이 곧 숨 쉬는 법”이라며 선천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이들과는 달랐다.

“설아야, 너 또 영혼 탈출했냐? 이리 와서 이거 좀 봐봐.”
절친 김미나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미나는 늘 설아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 정보통이자, 사고뭉치 동반자였다.
미나가 내민 쪽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_“학원 지하, B-7 구역. 피 냄새와 비명 소리. 금기의 마법, 혹은… 끔찍한 존재.”_

“야, 이게 뭐야?” 설아가 눈을 크게 떴다.
“모르는 척하지 마! 어제부터 학원 게시판에 이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잖아. ‘학원 지하 금기’ 말이야!” 미나가 흥분해서 속삭였다.
“무슨 금기?”
“모른다고? 우리 학원 지하엔 원래 아무도 못 들어가게 되어 있잖아. 마력 저장고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제 야자하던 선배들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대. 막 쇠사슬 끄는 소리, 괴기한 웃음소리… 심지어 피 냄새까지 났다고!”
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르카나 학원은 겉으로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지만, 오래된 건물 여기저기에는 늘 기괴한 소문이 따랐다. 특히 지하 구역은 접근 금지 구역으로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설마… 진짜 뭐라도 있는 거 아니야?” 설아가 오싹한 기분에 팔을 문질렀다.
“있겠지! 안 그럼 왜 ‘금기’라고 하겠냐? 근데 더 충격적인 건 뭔지 알아? 요즘 강하준 선배가 맨날 그 지하 구역 근처에서 얼쩡거린다는 거야!”
“강하준 선배가?” 설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하준은 학원 전체의 아이돌이자, 마법 실력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수석 중의 수석이었다. 그런 그가… 끔찍한 금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제도 밤늦게 그쪽으로 가는 걸 봤대. 설마… 그 괴물의 주인이 강하준 선배는 아니겠지?” 미나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야, 그건 너무 나갔잖아!” 설아는 미나의 상상력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하준은 늘 완벽하고 차가워 보였지만, 가끔 묘하게 어두운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그날 밤, 설아는 잠이 오지 않았다. 미나의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지팡이를 챙겼다.
‘아냐, 그냥 확인만 하는 거야. 혹시 강하준 선배가 위험에 처한 거라면…!’
(솔직히 말하면, 설아는 조금의 영웅 심리와 강하준 선배의 비밀을 엿보고 싶은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둠이 깔린 학원 복도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 소리 하나하나가 심장을 졸이게 했다. B-7 구역은 학원 본관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철문에는 큼지막하게 ‘접근 금지’ 마법 봉인 부적이 붙어 있었다.
설아는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댔다.
안에서…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덜그럭… 덜그럭….’ 그리고… 달콤한 향기?
피 냄새라더니, 이건 마치… 갓 구운 빵 냄새 같았다. 설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때였다.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설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림자 속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강하준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고, 그가 늘 지니고 다니는 은빛 지팡이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서, 선배…! 저, 저는 그게…” 설아는 말을 더듬었다. 딱 걸렸다.
강하준은 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여긴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다.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아, 아니 그게… 저는 선배가 혹시… 위험한 일이라도 하는 건가 해서…” 설아가 얼떨결에 속마음을 내비쳤다.
강하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위험한 일?”
“네! 그, 그게… 지하에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선배가 자꾸 이 근처에 계시니까…” 설아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강하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설아의 눈동자에 꽂혔고, 설아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지금 자신을 비웃을까? 아니면 경고할까?
“하아…” 강하준에게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끔찍한 금기가 뭔지 궁금해서 직접 보러 온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를 도우려고…”
“도와? 뭘 말이지?”
설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강하준의 눈빛은 마치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다음 날부터 설아는 강하준을 피해 다니려 했지만, 학원은 생각보다 좁았다. 강하준은 언제나 설아의 시야에 들어왔고, 그가 지하 구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분명히 뭔가 있어!’
미나와 설아는 은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선배가 마법 재료를 구하러 나가는 걸 봤어. 근데 그게… 이상한 밀가루 포대랑… 초콜릿 박스였대!” 미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밀가루? 초콜릿? 마법 재료 치고는 너무 평범한데…”
“그러니까! 마법으로 위장한 독극물일지도 몰라!”
설아는 미나의 과장된 추리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며칠 전 지하에서 맡았던 달콤한 향기가 다시 떠올랐다.

결국 참지 못한 설아는 다시 한번 지하 구역에 잠입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엔 좀 더 치밀하게 준비했다. 마법 은신 주문을 외우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학원 비상용 순간 이동 부적도 챙겼다.
어둠 속에서 철문 앞까지 다가갔다. 어제와 똑같은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피 냄새는커녕… 이건 너무 맛있잖아!’
설아는 조심스럽게 마법 봉인 부적을 해제하고 철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오래된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설아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설아는 얼어붙었다.

지하 구역은 어둡고 습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화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온갖 종류의 베이킹 도구와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하얀 앞치마를 두른 강하준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거품기가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밀가루가 살짝 묻어 있었다.
“어어… 음… 선배?” 설아의 목소리가 삑사리를 냈다.
강하준은 설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윤설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의 얼굴은 경악과 당황함, 그리고 약간의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설아는 눈앞의 풍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끔찍한 금기? 괴물? 피 냄새? 전부 착각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의 정체는… 바로 갓 구운 빵 냄새였다!

테이블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보이는 크루아상, 설탕 가루가 뿌려진 시나몬 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초콜릿 타르트까지.
강하준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예요…?” 설아가 멍하니 물었다.
“그… 보다시피… 빵이다.” 강하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빵이요? 그럼 그 소문은요? 끔찍한 금기, 괴물, 피 냄새…?”
강하준은 이마를 짚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그리고… 저번에 들었던 소리들은 내가 반죽을 칠 때 나는 소리였을 거고… 삑사리 나는 기계음은 오븐 소리였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피 냄새는… 어쩌다 흘린 딸기잼이었겠지. 누군가 착각했나 보군.”

“그럼 선배가 여기서 몰래 빵을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설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강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뺨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우리 학원은 마법의 순수함을 강조해서… 이런 ‘하찮은’ 취미는 금지하고 있다. 특히 수석인 내가 이런 걸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 학원장님께서 기절하실 거야.”
“수석이… 빵을 만든다고요?” 설아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르카나 학원은 마법 이외의 모든 것을 ‘잡기(雜技)’ 취급했다. 특히 강하준 같은 엘리트가 오븐 앞에서 밀가루를 주무르는 것은 학원의 명성에 먹칠하는 행위로 간주될 터였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끔찍한 금기’였던 것이다!
설아는 푸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하준은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웃지 마! 이거 나름대로 진지한 취미란 말이야.”
“아니, 비웃는 게 아니라… 너무 귀여워서요!” 설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 그 크루아상 하나만 먹어봐도 돼요?”
강하준은 잠시 망설이더니, 한숨을 쉬며 따뜻한 크루아상 하나를 건넸다.
설아는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빵 속에서 버터와 설탕의 향기가 터져 나왔다. 이건…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맛이었다!
“와… 선배! 이거 진짜 맛있어요! 학원에서 파는 빵보다 훨씬 더요!”
설아의 진심 어린 감탄에 강하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렇겠지. 이건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강하준은 설아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마법만 배우느라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 그러다 우연히 제빵을 접했는데… 빵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평화로웠거든. 그래서 몰래 시작하게 된 거야.”
“아… 그랬구나…”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보이는 강하준에게도 이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니,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건가?” 강하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에요! 이 맛있는 빵을 만드는 선배를 누가 고자질해요? 저… 저도 여기서 빵 만드는 거 도와드려도 돼요?”
강하준은 설아의 제안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었다.
“도와준다고? 너 아까 그 크루아상 먹으면서 흘린 밀가루나 닦아.”
설아는 자신의 입가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내며 씨익 웃었다.
“그럼 다음엔 시나몬 롤 만들 때 도와드릴게요!”

그날 이후, 아르카나 학원의 지하 B-7 구역은 설아와 강하준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끔찍한 금기는 사실 갓 구운 빵의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찬 그들만의 작은 베이커리였던 것이다.
강하준은 여전히 차가운 엘리트 수석이었지만, 지하에서는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헤헤거리는 어설픈 제빵사로 변했다. 설아는 그런 그의 이중생활을 돕고, 가끔은 반죽을 망치거나 설탕을 엎지르며 강하준의 한숨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설아에게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서툰 도움을 받으며 싱겁게 웃을 때가 많아졌다.

“선배, 이 빵에는 마법의 재료가 들어간 것 같아요.” 설아가 갓 구운 스콘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무슨 마법?” 강하준이 무심하게 물었다.
“음… ‘행복 마법’이요! 선배가 만든 빵을 먹으면 행복해지는 마법이요!”
강하준은 잠시 설아를 바라보더니, 스콘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었다.
“그 마법은 네가 옆에 있어서 발동되는 마법인 것 같은데.”
설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하 오븐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강하준의 말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학원 순찰 마법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쉬잇! 선배, 저쪽으로 숨어요!”
두 사람은 황급히 화덕 뒤에 몸을 숨겼다. 좁은 공간에서 강하준의 단단한 어깨와 설아의 등이 맞닿았다. 달콤한 빵 냄새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들 사이의 비밀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끔찍한 금기는 그들에게 가장 달콤한 로맨스를 선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