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아득했다.
두 명의 인영이 봉인된 하늘문(天空門)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수천 년간 누구도 열지 못했던,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었던 태고의 문. 그 문은 이제 그들의 손끝에서 떨리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류진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정수를 쥐어짜냈다. 온몸의 경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친구 천무도 옆에서 비슷한 고통을 감내하는 듯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류진! 조금만 더! 거의 다 왔어!” 천무의 목소리는 격려하듯 들렸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류진은 그 미세한 틈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 순간만을 위해 수백 년을 함께 수련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서로의 등을 지켜왔다. 이제, 마침내,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황금빛 정수가 하늘문을 뒤덮고, 고대 문양들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거대한 문이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아득한 태고의 기운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류진은 환희에 찬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어깨를 감싸 안았던 천무의 손이 갑자기 싸늘한 칼날처럼 변했다. 류진의 등 뒤에서 느껴진 것은 친구의 온기가 아닌, 심장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크억!” 류진은 숨을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황망하게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피에 물든 천무의 얼굴이 있었다. 평소의 선량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잔혹한 냉기만이 서려 있었다. 천무의 손에는 류진의 심장을 꿰뚫었던 검은 단도가 들려 있었다. 그 단도는 류진의 정수를 빨아들이는 듯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천… 무…?” 류진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갈라졌다. 믿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악몽이기를 바랐다.
천무는 싸늘하게 웃었다. “아쉽지만, 하늘문은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지. 너와 나, 둘 다는 안 돼. 게다가… 너의 그 무한한 잠재력은, 나에게는 언제나 부담이었다. 결국,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법.”
그의 말이 류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수백 년의 우정, 함께 나눴던 꿈, 서로에게 보였던 신뢰…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잔인한 진실이 그의 심장을 찢어 발겼다. 천무의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류진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그의 영근(靈根)을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고통은 방금 전의 심장통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존재의 근원이 뿌리 뽑히는 듯한 절망적인 아픔이었다.
“네놈… 감히…!” 류진은 마지막 힘을 짜내 천무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그의 시야는 암전되고 있었다. 영근이 파괴되자 그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봉인된 하늘문은 다시 서서히 닫히고 있었고, 그 앞에서 천무는 비웃듯 류진의 몸을 발로 차내었다.
“안녕이다, 나의 오랜 친구. 네 희생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게 되었군.”
류진의 몸은 열린 하늘문 앞의 낭떠러지 아래로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만년심연(萬年深淵) 속으로,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동안 그의 몸은 바위에 부딪히고 찢겨 나갔다. 이미 파괴된 영근은 미약한 생명력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끝없는 추락의 끝에 류진의 몸은 차가운 물웅덩이에 처박혔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부서진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주위는 완전한 어둠이었고, 차가운 습기와 함께 기분 나쁜 탁기(濁氣)가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이곳은 만년심연. 세상의 모든 오염과 사악한 기운이 모여든다는 죽음의 장소였다.
‘내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생각이 희미해졌다. 천무의 싸늘한 얼굴, 그의 잔혹한 웃음,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배신의 말들이 파편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함께 이루자고 약속했던 꿈은 한낱 사악한 계획의 미끼였을 뿐이라는 절망이 그를 덮쳤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바로 그 믿음의 배신이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격렬한 감정이었다. 죽어가는 육신 속에서, 파괴된 영근의 잔해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증오였다. 천무를 향한, 자신을 유린한 세상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였다.
‘죽지 않아… 절대로 죽지 않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만년심연의 탁기가 그의 부서진 경맥을 타고 흘러들었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그 즉시 미쳐버리거나 육신이 썩어 문드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류진은 달랐다. 그의 파괴된 영근이,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그 탁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온몸의 세포가 녹아내리는 듯한, 그러면서도 다시 태어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영근의 잔해가 탁기와 뒤섞여 검은 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영근이 아니었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사악하고도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심장이었다.
흑마령근(黑魔靈根).
만년심연의 어둠 속에서, 류진은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과거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지옥보다 깊은 복수심과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차가운 살기만이 가득했다. 천무… 반드시 네놈에게 이 고통을 되갚아 주리라.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어둠 속에서, 류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복수는 이제 시작될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