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심연 위로 수놓아진 은하의 별빛은, 그 어떤 화려한 보석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거대 가스 행성 베라돈의 가장 큰 위성, 엘도니아. 그 푸른빛 대기권을 뚫고 솟아오른 아스트랄 마법 우주 아카데미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수정궁이었다. 수백 개의 탑이 우주를 향해 뻗어 있었고, 그 사이를 잇는 마법 통로는 별의 흐름처럼 유려하게 휘감겨 있었다. 옅은 마력 보호막이 행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 가스와 소행성 파편을 막아내며, 아카데미는 그 이름처럼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젊은 마법사들의 요람이자 성지였다.
서은율은 천상의 창문이라 불리는 돔 형태의 휴게실에 앉아, 아래로 펼쳐진 베라돈의 거대한 고리와 그 너머를 스쳐 지나가는 은하 함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마법 이론서 대신 낡고 헤진 우주 개척 시대의 서적이 들려 있었지만, 펼쳐진 페이지는 한참 전부터 고정되어 있었다. 이곳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대부분 우주 연합을 이끄는 명문가 자제들이었고, 그들의 피 속에는 흐르는 마나만큼이나 진한 특권 의식이 배어 있었다. 은율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는 순전히 자신의 재능, 그중에서도 드물게 강력한 공간 왜곡 마법 능력으로 이 엘리트의 성에 입성했다.
“서은율, 또 딴생각이야?”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꽉 조인 제복을 입은 사감 드보르가 불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은율에게 의심의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드보르 사감님.” 은율은 태연히 책을 덮었다. “우주를 감상하는 것도 아카데미 교육의 일부 아닙니까?”
“우스운 소리. 네 전공은 공간 왜곡이지, 우주 유영이 아니야. 자습 시간에 고작 이런 고서나 뒤적이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미흡한 논리 마법 과목이나 복습하렴.” 드보르는 차가운 시선으로 은율이 덮은 책을 훑었다. “그 쓰잘데없는 호기심이 너를 망칠 거다, 서은율.”
드보르는 언제나 은율의 비정상적인 호기심을 경계했다. 일반적인 마법 이론이나 연합의 역사 대신, 그는 언제나 금기시된 고대 마법이나 잊혀진 문명에 대한 자료를 탐했다. 특히 아카데미 지하에 묻힌 미지의 영역에 대한 소문이 돌 때면, 은율의 눈은 유난히 빛났다.
“명심하겠습니다, 사감님.” 은율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은율은 드보르의 말을 곱씹었다. ‘쓰잘데없는 호기심.’ 그는 이 아카데미에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느껴지는 거대한 이질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수정궁 같은 건물 아래에,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기에 그토록 완벽한 아카데미의 관리 시스템조차도 지하 구역만큼은 극도로 제한하는 걸까.
오늘 아침, 고대 마법사 문명사에 대한 칼레스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칼레스 교수는 연합 내에서도 손꼽히는 원로 학자였지만, 아카데미의 역사에 대해 설명할 때만큼은 유독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아카데미가 엘도니아에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의 기록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이곳 엘도니아는 고대부터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교차하던 성지였으며, 아카데미는 그 흐름을 연구하고 활용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상투적인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은율은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가 단순한 마나의 성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설에 따르면, 엘도니아 깊숙한 곳에는 미지의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카데미가 그 위에 세워졌다는 은밀한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암암리에 떠돌았다. 특히 ‘제7 봉인 구역’이라 불리는, 지하 심층부에 위치한 절대 출입 금지 구역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가십거리였다. 공식적으로는 마나 증폭 장치의 핵심부가 위치한 곳이라고 설명되었지만, 그곳을 탐험하려다 영구 제명되거나 실종된 선배들의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공포와 동시에 묘한 동경을 안겨주었다.
은율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룸메이트는 아직 훈련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침대 아래 숨겨둔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향했다. 프로젝터에서 투사된 이미지는 아카데미의 설계 도면이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도면이 아니었다. 그는 해킹을 통해 구 연합의 보관소에서 겨우 찾아낸 초기 설계 도면을 입수했다. 공식 도면에서는 지하 3층까지만 표시되어 있었지만, 이 도면에는 지하 7층,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미등록 구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 구역은 ‘엘도니아 코어’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통하는 입구는 현재 ‘제7 봉인 구역’이라 불리는 곳과 일치했다. 무엇인가 거대한 에너지가 도면을 따라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마나와는 다른, 이질적이고 끔찍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그 순간, 홀로그램 도면의 가장 깊은 곳, ‘엘도니아 코어’의 중심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진동이 방 전체를 흔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도면을 넘어 현실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은율의 직감이 속삭였다. *움직여야 해. 지금이야.*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낡은 서적에서 찾았던 고대 문명의 문양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기묘한 마법진의 흔적. 그 기운은 ‘엘도니아 코어’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겹쳐졌다.
은율은 자신의 마법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그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교칙에 어긋나는 방식의 공간 왜곡 마법을 떠올렸다. 마법 실기 수업에서 교수는 늘 말했다. “무리한 공간 왜곡은 마나 흐름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최악의 경우 시공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은율은 알고 있었다. 이 균열이야말로 금지된 진실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그의 눈이 섬광처럼 빛났다. 마나를 끌어올리자 주변 공간이 일렁였다. 공기 중에 날카로운 파동이 퍼져나갔다. 은율은 홀로그램 도면의 ‘제7 봉인 구역’ 입구를 머릿속에 정확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섬광처럼 사라졌다.
***
차가운 금속 냄새와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은율은 예상대로 ‘제7 봉인 구역’의 입구 바로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공식적인 아카데미의 시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방공호 같은 분위기였다. 두터운 강철 문에는 빛바랜 마법 봉인진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로는 오래된 이끼가 덮여 있었다. 강력한 마력장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일반적인 순간 이동 마법은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은율의 공간 왜곡 마법은 ‘통과’가 아닌 ‘이동’이었기에 가능했다.
봉인진은 은율의 마법에 미세하게 반응하며 옅은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렸다. 은율은 조심스럽게 강철 문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과 함께, 문 너머에서 불길한 기운이 밀려왔다. 단순한 마나 흐름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존재가 잠들어 있는 듯한, 거대한 악의 기운이었다.
그때, 봉인진의 틈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은율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빛을 따라갔다. 빛은 봉인진의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내려, 바닥에 새겨진 작은 틈새로 스며들었다. 그 틈새는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은율은 그 틈새에 귀를 바싹 대었다.
그리고 들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기이한 소리를.
그것은 바람 소리도 아니었고, 기계음도 아니었다.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영혼이 동시에 흐느끼는 듯한, 혹은 거대한 짐승이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은율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곳은 단순한 마나 증폭 장치의 핵심부가 아니었다.
이곳 지하에는, 아스트랄 마법 우주 아카데미의 화려한 외양 아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금기가, 지금 막 깨어나고 있었다.
